<<로마식 자애>>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6.28 - 1640.5.30)
플랑드르의 화가, 독일 베스트팔렌의 지겐 출생,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지겐을 피해 있을때 그 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자 10세 때 가족과 함께 고향인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와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3년 뒤 14세에 랄랭 백작 부인의 시동이
되어 귀족사회의 습속을 익혔고, 화가가 될 뜻을 세웠다. 15세때 A.노르트(1562-1641), O.베니우스(1556-1629)등에게 그림을
배운 뒤 21세 때인 1598년 당당히 안트베르펜화가 조합에 등록되었고, 23세 때인 1600년에 이탈리아 유학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8년 동안 베네치아, 로마 등지에서 고대미술과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당시 이탈리아의 바로크화가인 카라바조와 카라치파의
영향을 받아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차차 명성을 얻는 한편, 만토바 공(公)의 인정을 받아 그의 사절로서 외교적 사명을 띠고 에스파냐로
여행하였다. 160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고 고향에 왔을때, 이미 어머니가 운명한 뒤였으나, 그는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로서 고향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1609년 플랑드르 총독 알브레호트 대공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10월에는 명문 집안의 딸 이사벨라 브란트와 결혼하였다.
그 뒤로는 날로 높아 가는 명성과 많은 제자들에게 둘러 싸여 루벤스 특유의 화려하고 장대한 예술을 펼쳐 나갔다. 역사화, 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제재를 작품화하였는데, 파리의 뤽상부르크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연작 대벽화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루벤스 예술의 모든 특질을 담고 있으며, 바로크 회화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현란하나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울려 생기가 넘친다. 외교관으로도 활약하였으며, 원만하고 따듯한 인품으로 말미암아 유럽 각국 왕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26년 아내 이사벨라가 죽은 후, 30년 16세의 엘레나 푸르망과 재혼하였다. 1640년 팔의 통풍이 심장에까지 번져 안트베르펜에서
죽었다.
루벤스는 북유럽 바로크의 주도적 인물로서 회화가로서 그의 영향력은 건축가 베르니니보다 훨씬 지대했다. 그는
플랑드르 어느 매너리스트에게 훈련받았고 고전, 르네상스 미술의 전통을 두루 섭렵하고 당대의 카라바지오, 카라치의 예술을 역시 흡수했다. 그는
생애에 모든 영예를 누리며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소장품도 최고의 것이었으며 때로는 외교사절로 활약하며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그의
이와 같은 배경의 자신감은 왕과 같은 품위를 지닌 [자화상]에서 반영되고 여유 있는 생활과 인품은 정신적인 면에서 휴머니즘과 평화를 주도하려는
한편 구체적 회화양식에서 풍요롭고 꽉 찬 구성과 아름답고 화려한 관능과 호사스러운 취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매우 다작이어서 그의 모사품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뿐 아니라 다양한 화풍과 주세를 망라하고 있다. 초기작들은 대체로 고전적이고 선적인 조심스러운 경향이 있으나
역동적이고 유기적 관계의 긴장감 있는 구성은 바로크의 특징적인 면이 드러난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는 강한 하이라이트가 예수의 신체에
집중되고 염려하는 인물들의 표정이 유기적 관계의 구성이다. 깊고 요동하는 대각선의 처형에 지친 인물과 주위의 고뇌 등은 그 표현에서 분명히
바로크적이라고 하겠다. [루시퍼스의 딸들의 능욕]은 그의 회화의 정수이자 찬란한 색채 효과, 관능성, 긴장되고 열린 공간으로서 그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백색의 여체와 구릿빛 남자의 근육의 대비, 반항하는 격렬한 몸짓과 울부짖는 말은 곡선적이고 꾸물거리는 선들이 그 특징이라고 하겠다.
[마르세이유에 도착한 마리 드 메디치]는 그녀의 일생의 연작 중 하나로 우와 같은 특징의 결정적이며 환락과 풍요 관능이 더하여 [사랑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방식은 수많은 이들이 그리면 그가 명암의 균형과 최종적인 구성에 주된 리듬과 악센트를 주는 방식으로
다작이 가능했으며 그는 자신의 생각을 빠른 속도로 스케치하여 아이디어를 담는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 이르러 그는 새로운 아름다운
부인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받아 신화적이고 육감적인 누드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노년의 눈으로 다채로운 풍경화를 그렸다. [스텐성]은 그의 화려한
필치가 살아 있는 자연 풍경에 주목하게 하고 명암법과 임파스토의 하늘은 멀리 터너를 예감케 하고 있다. 루벤스는 자신의 미술을 판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널리 전파시켰으며 판화의 보급에 영향을 미치고 이후 로코코의 와토, 게인즈보로, 낭만주의 들라크루아, 인상주의 르누아르까지 여러
작가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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