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경

경주 교촌 한옥 마을 풍경

문성식 2019. 6. 20. 10:28


경주 교촌 한옥 마을 풍경



 

경주교동 법주

경주시 교동의 일명 '경주 최부자네'집안에서만 이어져 내려온 법주로 배영신(裵永信)이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시키고 있다.

배영신은 현재 50여 년째 이 술을 만들어오고 있다. 경주의 만석꾼 최씨네 집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게만 전수시켜온 독특한 술로 연한 갈색의 감미로운 맛과 향기, 마시고 난 뒤의 깨끗한 뒤끝으로 정평이 나 있다. 궁중술이라고도 부르며 최씨네 선대가 궁중 내 간장·된장 등 염장을 감독하는 사옹원의 관리로 있으면서 임금이 마시는 곡주의 제조법을 집안에 전승시켜 시작되었다.

재료로는 찹쌀, 밀누룩, 집뜰의 우물물이 쓰이며, 최씨네 집안의 뛰어난 물맛이 술의 질을 좌우했다. 제조 방법은 먼저 술쌀의 1/10에 해당되는 찹쌀죽을 쑤어서 누룩과 배합, 5~10일 발효시킨 후 모주를 만들고, 여기에다가 다시 쪄서 말린 찹쌀 고두밥을 배합시킨다. 그뒤 숙성과정을 거쳐 100일 정도가 지나면 법주가 된다. 술의 발효와 숙성정도가 술의 질을 판가름하기 때문에 매우 섬세한 수공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밀주조금지법에 따라 맥이 끊길 뻔 했으나, 지금은 국세청의 허가를 받아 시판도 한다. 알코올 도수가 16도이며 지금도 가내사업으로 여전히 전수되고 있다.




경주 교촌 마을

중요민속자료 제27호인 경주최씨고택과 중요무형문화재 제86-다호인 경주교동법주가 자리잡고 있는 교촌마을은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한 경주 최부자의 얼이 서린 곳이다.
특히 최부자집에서 가훈처럼 내려온 원칙인 “벼슬은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곳에는 원효대사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은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며, 부근에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려 있는 계림과 내물왕릉, 경주향교, 김유신 장군이 살았던 재매정이 있다.
































경주 교동 한옥마을 최부자집의 최씨고택이 있고

법주로 유명한 교동 법주 제조장이 있는 한옥마을

한옥의 아름다운 멋을 느낄수 있는 경주 교동 한옥마을 풍경입니다.


경주 최씨 고택


의견설화

〈개무덤설화〉라고도 한다. 개가 주인에게 은혜를 갚는 양상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유형으로 개가 불을 꺼서 주인을 구하는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주인이 기르던 개를 데리고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술이 취해 풀섶에서 잠이 들었는데 산불(들불)이 났다. 주인이 불이 난 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자 개는 자기 몸뚱이에 물을 묻혀 주인 옆의 풀섶에 뿌려서 주인에게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막았다. 한참 뒤 서늘한 밤공기에 주인이 잠을 깨어보니 개는 지쳐 쓰러져 죽어 있었다. 전후사정을 알게 된 주인은 깊이 감동하여 죽은 개의 충정을 기려서 개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다른 유형으로는 주인이 없는 사이에 어미 개가 주인의 어린아기에게 젖을 먹여 배고픔에서 구해주기도 하고, 주인이 호랑이나 여우 독수리 등에게 공격을 받아 곤경에 빠졌을 때 구해주기도 한다. 이때 개는 개의 형상 그대로 싸우기도 하고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서 물리치기도 한다. 또다른 유형으로는 개가 글이나 옷섶을 물고 와서 주인의 위급함을 식구들에게 알리고, 주인의 시체를 찾게 하며, 주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서 관가에 고발하기도 한다. 또는 개가 죽으면서 주인의 집안을 위해 명당자리를 잡아주기도 하고 주인을 따라 죽는 경우도 있다.

의견설화는 개무덤이라는 증거물을 수반하는 점에서 전설이기도 한데 대표적으로는 경주최씨 최부자집에 얽힌 개무덤전설이 있다. 최부자네는 복을 받게 된 연유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는데 특히 기르던 개가 은혜를 갚아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개가 최씨집 웃대에 한 어른을 불을 꺼서 구해주기도 하고 변신해서 귀신을 물리쳐주기도 했지만 특히 보살핌을 받은 개가 죽으면서 명당자리를 가르쳐주어서 거기다 조상의 묘를 쓴 이래로 재산이 크게 일어나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손진태는 〈한국민족 설화의 연구〉에서 〈보한집 補閑集〉·〈청구야담 靑邱野談〉 등에 수록된 〈의구전설〉을 소개하면서 이야기가 중국의 〈수신기 授神記〉에 실린 〈의구전설〉과 일치하므로 중국의 기록에서 전파되었으리라고 주장했으나 국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의견설화는 〈까치와 종소리 설화〉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동물보은담으로, 후자가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데 비해 현실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최씨고택 안채


 

진주에 사는 이만석꾼과 의령 만석꾼이 만나서 경주 최부자 집에 놀러 갔다. 최부자는 12대 만석꾼에 10대 진사라 학자 집안이었다. 진주 부자는 최부자 집에 놀러 가는 길에 지팡이가 많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사서 최부자 집 마루에 세워 두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니 마루에 지팡이가 없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부지깽이를 했다고 한다. 최씨 집안의 아들이 부자들에게 농사를 지어서 얼마나 받느냐고 물었다. 다른 부자들은 논에 따라 각각 한 섬, 반 섬 정도씩 받아 만 석, 이만 석이 된다고 대답했다. 최부자 집 아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소작인들이 어려우면 명년(明年)에 받든지 안 받든지 신경 쓰지 않으며, 그렇게 해도 만 석이 된다고 했다. 이 만석하는 진주 부자가 생각해보니 그런 식으로 하면 자신은 만 석도 안 될 것 같았다. 다 같이 솔 숲 구경을 나갔는데, 솔밭이 삼 십리 정도 되었다. 최부자는 자신의 재산을 소나무 하나마다 걸면 이 원 정도씩 걸 수 있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보니 자신들의 재산을 걸면 일 원도 안 될 것 같아 속으로 상대할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부자들이 처음 최부자 집에 올 때 지팡이를 골라 왔는데, 최부자가 그것을 보니 그 사람들의 재산은 원래 삼백 석, 오백 석도 안 되어 보였다. 따라서 사람은 항상 똑같이 사는 것이 아니므로 평소 없는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모티브 분석]
이야기에 등장하는 최부자에 대한 전승자들의 감정은 대단히 우호적이며 긍정적이다. 10대 진사, 12대 만석꾼 등으로 묘사되고, 만석지기 이상의 땅을 소작 주어도 소작료는 더 받지 않아 소작인들의 덕이 되게 했으므로 모든 소작인이 최부자가 땅을 더 사기를 바랐다는 이야기는 여러 다른 자료에도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민중의 부자에 대한 감정은 부정적인데, 최부자에 관한 한 그 반대다. 최부자의 실제 모습은 확인할 길 없으나, 최부자는 설화 속에서 민중이 바라던 이상적 부자형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부자 삼대를 못 간다”는 일반의 통념은 몇 대나 지속되는 최부자 집의 세습적인 부에 대하여 의혹과 놀라움을 가지게 되고, 그 의혹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다양한 내용을 가진 자료들이 전승되는데, 여타 지역의 전설에서는 이러한 설명을 풍수 설화 등과 연결시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허구적으로 과장하거나 비약해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지역 설화는 최부자의 큰 부를 진주 부자와 의령 부자의 치부(致富) 과정과 비교함으로써 스스로의 노력과 남을 돕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얻어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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