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불화,탱화

완산, 모악산 대원사

문성식 2019. 5. 4. 12:25


완산, 모악산 대원사





모악산 대원사

대한불교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670년(신라 문무왕 10) 일승(ㅡ乘)이 심정(心正)·대원(大原) 등과 함께 창건하였다. 일승 등은 고구려 보장왕(재위: 642∼668) 때 백제에 귀화한 보덕(普德)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열반종의 교리를 익힌 뒤 보덕이 머물고 있는 고대산(孤大山) 경복사(景福寺)가 보이는 곳에 절을 짓고 대원사(大原寺)라 하였다. 한때는 대원사(大圓寺)로 표기하였으나, 현재는 대원사(大院寺)라고 한다. 1066년(고려 문종 20) 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嚴: 1090∼1141)이 중창하였는데, 이 때를 창건한 때로 보기도 한다. 1374년(공민왕 23)에는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중창하였고, 1415년(태종 15)에도 중창하였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606년(선조 39) 진묵(震默) 일옥(一玉)이 중창하였고, 1733년(영조 9) 동명(東明) 천조(千照)가, 1886년(고종 23)에는 건봉사(乾鳳寺) 승려 금곡(錦谷)이 중창하였다. 금곡은 함수산(咸水山) 거사와 함께 대웅전과 명부전을 중건하였으며, 칠성각을 짓고 산내 암자인 내원암(內院庵)에 있던 염불당을 옮겨왔다. 조선 말기 종교사상가로 유명했던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이 이 절에서 도를 깨우쳤다. 1950년 6.25전쟁으로 불에 탔으며, 1959년 덕운이 요사를 다시 세우며 불사를 일으켜 1960년 칠성각, 1962년 산신각을 세웠다. 1993년에는 칠성각을 헐어 요사채를 짓고 1990년 장마로 무너진 산신각을 삼성각으로 다시 세웠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나한전·응향각·삼성각·봉익루·범종각·구요사·객실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아미타불약사불이 협시하는 삼존불이 있다. 불상 뒤에는 삼신후불탱화와 칠성탱화·신중탱화가 있으며, 탱화 옆에는 진묵대사 일옥진영이 걸려 있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887년(고종 24) 금곡과 수산거사가 세웠다. 내부에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무독귀왕의 지장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판관·녹사·사자·인왕·동자지장보살 권속이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2기의 오층석탑과 6기의 부도 등이 있다. 오층석탑은 대웅전 앞과 뒤에 각 1기씩 서 있다. 뒤에 있는 석탑은 높이 238cm로 고려 시대 유물이고,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은 높이 420cm로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부도는 모두 9기 있었으나 대웅전 남쪽 아래에 있던 3기는 소재가 불분명하다. 남아 있는 6기의 부도 중 가장 뛰어난 유물은 고려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각(龍刻) 부도이다. 옥개석 가운데에 두 마리의 용이 뒤엉켜 여의주를 잡으려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 높이 187cm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대웅전 안에 있던 목각사자상은 1606년 이 절을 중창한 일옥이 만든 것으로, 북을 올려놓는 북대이다.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되었다가 도난되면서 지정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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