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그리고 성

등 돌린 부부여, 이젠 얼굴을 마주 보라

문성식 2019. 1. 15. 08:57
등 돌린 부부여, 이젠 얼굴을 마주 보라

 남자들은 챔피언도 아닌데, ‘의무방어전’을 갖는다. 아니, 의무방어전이라도 갖는 남자라면 다행이다. 농담처럼 흘리지만, 사실 굉장히 슬픈 얘기가 뒤따른다. “마누라쟁이 얼굴 보면 도대체 서질 않는데, 섹스는 무슨 얼어죽을 섹스냐!” 그건 여자들도 마찬가지다.‘속만 썩이는 저 화상’을 보면, 도무지 ‘할 맛’이 나지 않는다. 한때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로 시들해진 부부 사이. 그들의 등진 어깨를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세월이 병인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성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긴 서로에게 안달이 나 있던 연애 때나 신혼 초기와 어찌 감히 비교나 할 수 있겠는가. 특히 결혼 5∼10년차 부부의 경우 급격히 부부관계가 소원해지는 이른바 ‘권태기’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래서인가 이 시기의 이혼율이 제법 높은 수치를 기록한다.
부부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은 대개 일정한 코스를 밟게 된다. 남편은 직장 생활에 스트레스와 피로가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아내는 아이 키우랴 ‘먹고사는’ 문제 신경 쓰랴, 도무지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관심은 덜해지고, 더구나 애정표현이나 섹스에 있어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부부 생활에서 가슴이 벌렁거릴 까닭은 만무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성적 매력도 성적 욕구도 상실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성적 환상과 성행위 욕구가 없어지는 것을 ‘성욕 저하 장애(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 라고 부른다. 상대에 대한 성적인 관심이 떨어지므로 ‘성적 각성’이나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한 정서적 압박감은 결국 우울증과 결혼 생활에 갈등과 불만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대개 ‘성욕 저하 장애’는 정상적인 성적 욕구가 있다가, 심리적 압박감, 스트레스가 많은 사건, 또는 대인관계의 문제를 겪는 어른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문제는 ‘성욕 저하 장애’가 전체적으로 성욕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한 파트너, 더 노골적으로 지목하자면 자신의 남편, 혹은 아내에게만 나타난다는 데 있다. 굳이 자신을 병자로까지 내몰진 않더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라. 나에게 있어 지금 아내가, 혹은 남편이 어떤 지경인가를.

8할의 실패, 비디오 학습
무간나락으로 떨어진 성욕을 되살리기 위해, 그리하여 시들해진 부부관계에 자극을 주기 위해, 제법 건실한 남편들은 주로 아내와 함께 포르노를 시청하려 한다. 쉽게 말해 비디오를 보면서 함께 흥분하고 공부도 하자는 얘긴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 듯하다.
킨제이연구소에 의하면 대개 남편의 권유로 포르노를 볼 때 아내들은, 남편이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해 포르노에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기분과는 관계없이 억지로 흥분시키려 압력을 넣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남자는 (비디오와 같은) 시각적 자극으로 흥분하지만, 여자의 경우는 접촉 등의 자극에 의해 흥분하기 쉽다는 외국의 어느 연구 결과 보고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얘기도 있다. 포르노가 연출하는, 지나친 성적 매력을 지닌 배우들의 과장된 성교를 일반화해서 받아들일 경우, 오히려 잠재의식은 자신의 정상적인 성적 매력을 불안정하고 낮게 평가하는 거부반응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

연구에 따르면 성의 표현이 연애 관계의 범위에 한정된 비디오와, 사랑이나 애정 없이 곧장 섹스에 직행하는 비디오 중 선택을 요구받았을 때 여성들의 거의 대부분은 연애 비디오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굳이 시청각 학습을 해야겠다면, 포르노가 아니라 ‘멜로 영화’를 권하고 싶다. 물론 남편을 위해 ‘베드씬’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비디오라면 더욱 좋겠고. 시들한 부부관계에서 성적인 자극과 흥분을 회복하겠다는 일념은 종종 뻔뻔한 남자들에게 바깥 길(외도)을 걷게 만들기도 한다. 즉 젊은 피를 수혈해 성생활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가정에 매진(?)하겠다는 것인데, 한 마디로 전혀 말도 안 되는 계산이다. 별별 거 다 연구한 킨제이연구소는 1,000쌍의 부부를 통해 이미 외도 가정의 말로가 어떤지에 대한 자백을 받아낸 바 있다. 가정 파탄 아니면 부부 친밀도 파괴. 좋은 쪽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몇몇 남자들은 ‘뭐, 여자들은 바람 안 피냐’, ‘여자들은 낯선 남자가 콕 찌르면 헤까닥 하는 게 정설’이라고 반박하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 다만 여성들의 인격을 은근히 폄하하고자 하는 ‘마초’한국의 편견과 음모일 뿐이다. 이는 통계로도 잘 나와 있는데, 한국성의학연구소의 ‘한국인의 성의식’ 조사에 따르면 혼외정사의 경험이 남성들은 73%인 반면 여성들은 15%에 불과했고, 혼외 정사의 욕구도 남자들은 82%나 느낀 반면 여자들은 고작 25% 정도였다. 이미 언급했듯, 주로 남자는 섹스를 중심으로, 여자는 사랑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섹스는 생활의 일부분
그렇다면 시들해진 부부가 성적 자극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어떤 것이 적당한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는 섹스를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봐야 옳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지 않는다’거나 남편의 암시에 ‘반응이 오지 않는 것’은 뇌와 척수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 한 마디로 ‘마음이 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섹스가 시들해진 것은 실은 섹스 자체에 흥미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의 갈등이며 혹은 상대방의 노여움의 표현이라는 얘기.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신뢰감을 회복해야만 섹스도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 욕구의 문제를 치료하는 데 정해진 공식이나 유효한 방법이 증명되지 않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성욕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일상생활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환경, 혹은 상대방과의 환경에서 생긴 문제를 정확하게 해명하는 것이 성욕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정신이 건강하고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즐거워야 마음도 동한다는 당연한 이치. 하지만 섹스가 남녀 상호간의 유희. 그래서 한 사람만의 관계 회복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먼저 생활을 다그쳐 바로잡은 후에는 과감하게 상대방도 다그쳐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성적 매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자극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강요가 된다면 상대방의 성욕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길. 아울러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섹스를 위한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준비한다던가, 로맨틱한 전시 효과를 연출한다던가, 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체위를 시도하는 등 성적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것 또한 성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섹스는 유희이기에 앞서 소통이다. 그러므로 이미 언급했거니와, 독립적인 문제가 아니라 커다란 사회적 관계의 상징이다. 일시적인 자극에는 내성이 생기게 마련. 때문에 어떤 충격 요법보다도 사랑의 힘이 더 위력적인 법이다. 사람 사는 모든 일이 모두 그러하듯이 섹스 또한 그러하다. 섹스가 생활의 일부분인 까닭이다.

도움말/이윤수 명동 비뇨기과 원장, 이근후 열린마음클리닉 원장
미디어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