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2.jpg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3.3m.

 

도리사는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질 당시 전설에 나오는 아도(阿度)화상과 관련이 있는 절이다. 아도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 한다. 정확하게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 없으나 신라 최초의 절이라고 전한다.

극락전의 앞뜰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일반 석탑과는 전혀 그 형태를 달리하는 특이한 모습이다.

석탑의 기본형은 방형으로서 방형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기단(基壇)이 놓이고 그 위에 탑신부(塔身部)와 상륜(相輪) 등이 중첩되었다.

지대석은 10매의 장대석으로 짜여졌는데, 상면에는 한 단의 각형 굄을 새겨서 그 위에 기단부를 받치고 있다. 기단부는 네 구석에 방주(方柱)를 세우고 그 사이의 각 면에 장방형의 판석을 여러 장씩 세워서 마치 병풍처럼 돌려진 측면을 이루고 있는데, 북면만 7매석이고 다른 면은 모두 6매석으로 남면 중앙부에는 길이로 장방형의 문비(門扉)가 오목새김되어 있다.

 

기단의 갑석(甲石)도 네 귀에 장대한 판석(板石 : 넓고 얄팍한 돌)을 놓고 그 사이를 여러 장의 돌로 짰는데, 각 면이 똑같이 3매석씩이다. 갑석 윗면에는 별다른 구조가 없이 평평한 위에 탑신이 놓였고, 각 층이 10개의 크고 작은 석재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치 모전석탑(模塼石塔)의 구조와도 같은 일면을 보이고 있다.

 

탑신은 3층으로 초층은 각 면 장방형 석재를 삼중으로 쌓아 이루었는데, 동면은 15매석이고 남면은 13매석이다. 그 위의 옥개는 일반형 석탑의 옥개석 형태와는 달리 지붕형의 옥개가 아니어서 받침이 없고 그 위에 낙수면도 없으며, 전탑이나 모전석탑에서와 같이 상면에 몇 단의 층단이 마련되어 있다.

 

각 층단은 기단부 갑석과 같이 네 귀에 장대석을 배치하고 그 사이를 몇 장의 장방형 석재로 결구(結構)하였고, 그 위에 2단의 층단을 놓았는데 그 층단은 상하층 동면이 같이 4매석으로 구성되었으며 남면은 하층이 5매석, 상층은 4매석이다.

2층 옥신은 면마다 2층으로 장방형 석재를 겹쳐 조립하였는데, 동면은 7매석이고 남면은 8매석이다. 남면에는 중앙에 양 문비형을 모각한 판석을 끼우고 그 위에 옥개석의 갑석형은 네 귀에 장대석을 배치하고 면마다 그 사이를 장방형 석재로 메웠는데, 동면은 2매석이고 남면은 3매의 작은 석재가 보인다. 그 위의 층단받침은 3단이다.

 

3층옥신과 옥개는 각각 한 개의 돌로 조성되었고 밑에 각형 1단의 받침이 있으며, 낙수면에는 2단으로 굄을 만들어 그 위에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석주(石柱), 연화가 조각된 원형의 앙화(仰花)와 보주(寶珠)가 각각 놓였다.

이 석탑은 구조상 옥개 낙수면부에 층단을 이루고 있는 점이라든지 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 결구하여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오히려 모전석탑의 계열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 탑을 현지에서는 ‘화엄석탑(華嚴石塔)’이라 일컫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건조연대는 남면 상하부에 모각된 양 문비형의 양식과 상륜부의 조각을 비롯한 각 부재를 다룬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