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4.jpg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7.15m.

 

일선교 사거리에서 해평 쪽으로 약 3㎞ 떨어진 낙산리의 동남쪽 논 가운데 서 있는 탑으로, 주변에는 이 석탑 이외에 아무런 유구(遺構)도 없으나 일대의 경작지에서 연화문 막새기와를 비롯하여 많은 기와조각과 토기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부근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탑은 현재 약간의 석재가 결실되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신라시대의 전형적 양식인 2층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탑신을 건립하였다. 장대한 지대석(地臺石) 위의 하층기단 면석(面石)은 8매석으로 구성되었는데, 2매의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3주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모각(模刻)되어 있다.

 

하층기단 갑석(甲石)은 6, 7매로 구성되었고, 네 귀퉁이에는 각 면의 합각(合閣)이 뚜렷하며, 상면에는 4분원의 몰딩(moulding : 테두리장식)과 낮은 각형(角形) 1단받침으로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각각 2개씩 정연히 각출되었으며, 각 면의 부재는 동서면이 3석으로 구성되었고 남면이 1석, 북면이 2석으로 이루어졌다. 상층 갑석은 4매석으로 결구되었으며, 하면에는 부연(副椽)이 조각되고 상면에는 둥근 몰딩과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으로 탑신을 받고 있다. 그런데 탑신 바로 밑에도 다듬어진 장대석받침 2석을 겹쳐놓은 점이 특이하다.

초층탑신 남쪽에는 감실(龕室)이 조영되었고, 감실 입구에는 문을 달았던 원공(圓孔)이 남아 있다. 초층탑신은 네 귀퉁이에 석주(石柱)를 세우고 그 사이에 1매씩의 면석을 세웠고, 남면만은 감실로 인하여 상하에 1석씩을 놓아 조립하였는데, 탑신에는 우주가 각출되지 않았다.

 

옥개석(屋蓋石)은 여러 장의 돌로써 구성되었으며, 낙수면은 각 층 모두 전탑(塼塔)과 같이 여러 단의 층단을 이루고 있다. 2층 이상의 탑신과 옥개석 역시 여러 매의 돌로써 구성되었으며, 탑신에 우주가 모각되지 않은 점이나 옥개석 낙수면에 층단이 표현된 점 등은 모두 초층탑신 및 옥개석과 동일하다.

3층옥개석 정상에는 1석으로 된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이 놓였는데, 노반 상면에는 각형 1단의 받침이 있고 그 꼭대기에 복발(覆鉢 : 탑의 노반 위에 놓는, 엎은 주발 모양의 장식) 받침인 원형받침 1단이 각출되었으며, 그 중앙에는 찰주원공(擦柱圓孔)이 관통되어 3층옥개석 중심에까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석탑의 각 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초층과 2층의 옥개석 전각(轉角) 상면에는 낙수골이 뚜렷이 오목새김되었는데, 3층옥개석 전각 상면에는 낙수골은 없으나 합각의 표현만은 뚜렷하다.

 

그리고 각 층의 옥개석받침이 직각이 아니고 약간씩 사선을 이루고 있어, 마치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국보 제9호)의 받침부에서 보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즉 기단부의 양식에서도 특히 하층기단 면석에 3주의 탱주가 각출된 것은 초기적인 양식이라 할 수 있는데, 탑신부와 옥개석의 구성방법은 다소 시대가 떨어지는 면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이 탑의 양식은 선산죽장동오층석탑(善山竹杖洞五層石塔, 국보 제130호)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일종의 모전석탑(模塼石塔) 계열에 속하는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 석탑재의 다듬기수법이나 기단부의 구조 및 탑신석·옥개석의 양식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