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스님 어록

병상에서 배우다

문성식 2015. 7. 26. 07:24

 
      병상에서 배우다 평소 병원을 멀리하고 지냈는데 지난겨울 한 철 병원 신세를 졌다. 병원에는 친지들이 입원해 있을 때 더러 병문안을 가곤했는데 막상 내 자신이 환자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모든 일에는 그 때가 있는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때 그 때 삶의 매듭들이 지어진다. 그런 매듭을 통해서 사람이 안으로 여물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이 육신이 내 몸인 줄 알고 지내는데 병이 들어 앓게 되면 내 몸이 아님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내 몸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앓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와 따뜻한 손길이 따르는 것을 보면 결코 자신만의 몸이 아니라는 걸알 수 있다. 앓을 때는 병자 혼자서만 앓는 것이 아니라 친지들도 친분의 농도만큼 함께 앓는다. ‘이웃이 앓기 때문에 나도 앓는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병을 치료하면서 나는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인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지나온 내 삶의 자취를 돌이켜보니 건성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주어진 남은 세월을 보다 알차고 참되게 살고 싶다. 이웃에 필요한 존재로 채워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앓게 되면 철이 드는지 뻔히 알면서도 새삼스럽게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나를 에워싼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으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임을 뒤늦게 알아 차렸다. 병원 대기실에서는 많은 인내력이 따라야 한다. 미리 예약된 시간에 서둘러 도착해도 자신의 이름 부르기를 끝없이 기다려야 하는 때가 많다. 더러는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환자가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느 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도 환자에게는 치유가 되겠다는 생각. 우리들의 성급하고 조급한 마음을 어디 가서 고치겠는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이런 병원이야말로 성급하고 조급한 생각도 함께 치료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 뒤부터는 기다리는 일이 결코 지루하거나 무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시간에 화두삼매에 들 수 있고 염불로써 평온한 마음을 지닐 수도 있다. 병상에서 줄곧 생각한 일인데 생로병사란 순차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자연사의 경우는 생로병사를 순차적으로 겪지만 뜻밖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차례를 거치지 않고 생에서 사로 비약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삶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인생을 하직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언제 어디서나 삶은 어차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순간들을 뜻있게 살면 된다. 삶이란 순간순간의 존재다. 사람은 자기를 자기 자신 위에 세워서 최초의 나와 최후의 나로 이어져야 한다. 2008 ㅡ 법정 스님글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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