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묵 | 보물 제4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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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
소재지 |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1기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보령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성주리 성주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4m.
성주사지에서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뒤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탑 중 가장 서쪽에 있는 석탑이다. 성주사는 구체적 유래는 전하고 있지 않지만 백제 땅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그 배치구조가 특이하며 이외에도 또 다른 3기의 탑과 석비, 귀부, 석축, 초석 등 많은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세운 탑으로서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지대석(地臺石)은 성주사지중앙삼층석탑(보물 제20호)같이 4매의 장대석으로 구성하였는데 전면과 후면의 장대석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지대석으로 이어 맞추었다. 지대석 위의 지복석(地覆石) 또한 4매의 장대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앞뒷면의 장대석 사이에 좌우 장대석을 삽입하여 방형으로 결구(結構)하였다.
이들 장대석 상면에는 1단의 기단면석 받침을 각출(刻出)하였다. 전면과 뒷면의 장대석에는 중앙에 탱주(撑柱 : 받침기둥)만을 새겼으며, 좌우 장대석에는 양 우주(隅柱)와 탱주를 중앙에 설치한 부재 사이에 전후부재를 삽입하도록 하였다.
하층기단 갑석(甲石) 또한 4매의 판석으로서 상면은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안쪽에는 몰딩(moulding : 테두리장식)과 각형(角形)받침을 갖추었다. 2층기단의 면석은 4매의 판석을 세워 맞춘 것으로, 전후판석 중에 각각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조합하였는데 밑에는 1단의 부연(副椽)을 갖추고 있으며, 윗면에는 하층갑석과 같이 경사를 이루었고 안쪽에는 2단의 받침을 각출하였다. 갑석과 탑신 사이에는 탑신굄대를 갖추고 있는데, 굄대 밑에는 내곡(內曲)된 굽형〔小累形〕을 이루고 있으며 윗면에는 3단의 받침이 각출되었다. 상하단은 각형이며 중단은 몰딩받침을 두었다.
1층탑신은 정방형으로 전면과 뒷면에는 문틀과 문비(門扉)를 표현한 중앙에 자물쇠와 문고리장식이 돋을새김되었다. 옥개석은 너비에 비하여 낮으며 넓고 얇다. 밑에는 4단의 받침이 있고 낙수면은 완만하나 양 전각(轉角)에 이르면서 약간의 반전(反轉)을 보여 경쾌한 느낌을 준다. 윗면에는 역시 2단의 각형 탑신받침을 새겼다.
2층·3층의 탑신 또한 높이에 비하여 너비가 넓으며, 옥개석은 1층옥개석과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다. 3층옥개석 상면 중앙에는 원형의 찰주공(擦柱孔)이 뚫려 있다. 탑의 정상부에는 방형의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이 남아 있는데, 위에 1단의 부연을 갖춘 낮은 대를 갖추고 있다.
1971년 해체 ·수리 당시 1층 몸돌에서 네모난 사리공을 발견하였으나 그 안에 향나무 썩은 가루와 먼지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함께 위치한 다른 두 탑에 비해 너비가 넓어 장중한 느낌이 드는 탑으로, 기단이나 지붕돌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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