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9.jpg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불상. 신체 높이(머리 제외) 156cm, 광배(光背) 높이 326㎝.

 

화강암 불좌상으로, 머리는 최근에 만들어 붙인 것으로 원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이 석불좌상은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구부려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중지와 무명지를 구부려 다리에 올려놓은 특이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머리라든가 곳곳에 원형을 상실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태안마애불이나 서산마애불의 뒤를 이어 나타난 완전 입체적 석불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거대한 신체의 어깨는 넓고 당당해서 묵직한 체구에 둥근 느낌을 주는 태안마애불이나 서산마애불의 어깨와 비교된다.

강건한 어깨와 두 발이 드러나지 않은 결가부좌한 견고한 다리는 안정감 있는 자세이다. 이러한 불신(佛身)을 휘감은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서산마애불처럼 두껍지 않고 얇아서 몸에 밀착된 것이다.

주름 역시 凸형으로 바뀐 데다가 가슴에는 승각기가 비스듬히 흐르고, 승각기를 묶은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서산마애불과는 다른 새로운 수법을 보이고 있다.

두 다리에서 형성된 U자형의 옷주름이 4각형 대좌(臺座)로 흘러내려 상현좌(裳懸座 : 불상의 옷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 앞자락의 옷주름도 U자형을 이룬다. 그리고 좌우로 Ω자형의 주름이 대칭으로 2단씩 표현되었지만 군수리석불좌상의 것처럼 활달하지는 않다.

주형 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의 중앙에 원형 두광을 凸선으로 따로 마련하였다. 이 안에는 16엽(葉)의 연꽃무늬가 새겨졌으며, 둘레는 방사선으로 퍼진 특징적인 두광이다. 이같이 연꽃 둘레로 방사선이 퍼진 두광은 626∼650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신인사탑곡사방불좌상의 것과 비교할 수 있겠다.

신광(身光)도 凸선으로 구획하고 바깥 부분에는 장식적인 불꽃무늬〔火焰文〕를 배경으로 7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은 광배는 삼국시대 금동삼존불의 광배와 유사한 것으로, 7세기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서산마애불의 뒤를 이은 입체적인 불좌상으로 머리 부분은 파손된 채 옆에 놓여 있지만 광배와 대좌를 갖춘 완전한 단독불상으로 큰 의의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두 손이 여전히 신체와 붙어 있고 허리의 표현이 없으며 강직한 어깨, 견고한 다리 등에서 고식(古式)을 보이는 장대한 골격의 체구임을 알 수 있다. 손 모양도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이 아니라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을 다리 위에 얹고 중지와 무명지를 구부린 특이한 모양이다.

법의는 얇아서 몸에 밀착되어 두꺼운 법의와는 차이가 나지만 승각기와 띠 매듭 표현, 상현좌의 옷주름 선은 고식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6세기 금동불에 흔히 있는 광배 형식으로 두광(頭光) 둘레로 방사선이 퍼져 도안화된 점, 장식적인 불꽃무늬, 3∼5화불 대신 7화불이 묘사된 점은 강건한 신체 묘사와 함께 서산마애불에서 발달된 것으로 7세기의 1/4 분기 작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백제의 단독석불로서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