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2_0081.jpg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높이 424㎝.

 

쓰러져 방치된 것을 조선 말 익산군수로 부임해 온 최종석(崔鍾奭)이 현재의 위치에 세웠다 하며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이 불상은 사다리꼴 돌기둥에 옷자락 무늬뿐 아니라 대좌(臺座)나 신체의 부분 등을 겨우 나타내고 있다.

 

머리에는 파주용미리석불입상(坡州龍尾里石佛立像, 보물 제93호)과 같은 사각형의 높은 관(冠)을 쓰고, 그 위에는 한 겹의 사각형 보개(寶蓋)가 있다. 얼굴의 기본 형태도 사각형인데, 볼은 약간 둥글며, 조금 튀어나온 턱이 목 대신 몸통과 얼굴을 구분해 주고 있다.

거의 평면에 가까운 안면에 가는 눈과 눈썹 그리고 짧은 코와 작은 입을 음각선으로 나타내었다. 괴량감은 없지만 퍽 차분하고 웃음기 머금은 인상적인 상호(相好)임을 느낄 수 있다. 극히 단순하고 형식적인 형태의 귀가 길게 묘사되어 있다. 몸통은 사다리꼴의 사면체 석주(石柱)에 불과할 뿐이다.

 

옷은 통견(通肩)으로 양어깨에서부터 평행선을 이루며 내려와 발목에서 좌우로 갈라져 양 측면까지 이어졌다. 옷주름이 신체보다 약간 도드라지게 되어 있으나 무늬는 전혀 없다.

앞으로 모아 배에 붙인 손과 팔의 일부가 음각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를 밟고 선 발도 형식적인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대좌는 신체보다 약간 커서 앞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있으나 역시 아무런 무늬가 없다.

 

20090902_0085.jpg 일직선에 가까운 사다리꼴 석주 같은 자세라든지, 극히 단순화된 비사실적 표현 수법, 특히 도포 같은 옷을 걸치고 봉분처럼 쌓아 올린 흙더미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분묘의 문관석인상(文官石人像)과 흡사하다. 그래서 불상이라기보다는 마을을 수호하는 무속적 성격을 띤 석상인 듯도 하다.

 

이 상은 조각 수법이 지극히 단순하고 소극적이어서 세부적인 고찰은 어렵지만, 높은 관을 쓴 점이라든지 그 위에 보개를 올려놓은 점 등은 이웃하고 있는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灌燭寺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제218호)과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大鳥寺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제217호)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조성 시기는 훨씬 뒤인 고려시대 말엽으로 짐작된다.

 

이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 해일(亥日) 자시(子時)에 두 상이 만나 일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상이라는 풍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어, 성격과 배치 방법이 특이한 주목되는 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