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95.jpg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6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계형식(多包系形式)의 우진각지붕건물.

 

일명 동대문(東大門)이라고도 하는데, 서울 도성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397년(태조 5) 도성을 쌓을 때 함께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세워졌다. 1452년(단종 1)에 중수가 있었으며, 조선 말기까지 존속되어 오다가 1869년(고종 6)에 이르러 전반적인 개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의 기부(基部)는 화강암의 대석(臺石)을 잘 다듬어 무사석(武砂石 : 네모 반듯한 돌로 쌓아올린 축석)을 이루고 중앙에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어 출입구를 삼았으며 기부 위에 목조의 2층 누각을 세웠다.

문의 바깥쪽에는 무사석 한쪽에서부터 반원형의 평면을 이룬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쳐서 적을 방어하는 작은 성)을 쌓아 적에 대한 방비를 견고히 하였는데, 도성 내의 여덟 개의 성문 중 옹성을 갖춘 것은 이 문뿐이다. 이 옹성 역시 창건될 때부터 마련된 것이며 고종 때 다시 개축되었다.

옹성의 벽은 두껍게 화강석 마름돌을 앞뒤로 쌓은 위에 내외 겹으로 여장(女墻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돌리고 여장에는 총안(銃眼)을 만들었으며 옹성 위로는 파수꾼이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무사석 위 주변에는 누각을 둘러막은 여장을 벽돌로 쌓고 양측에는 작은 일각문 형식의 협문을 하나씩 두어 누각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가구(架構)는 중앙에 고주(高柱)를 일렬로 배치하고 상하층의 대량(大樑)은 모두 이 고주에서 양분되고 맞끼어져 연결되었으며, 안쪽 네 귀퉁이에 고주를 세운 것이 그대로 연장되어 상층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이룬다. 상층의 변주는 하층 대량 위 중간쯤에 세워졌다.

바닥은 하층에는 중앙에만 마루를 깔고 상층은 전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벽의 하층은 모두 개방하고 상층은 사방에 판문(板門)을 달았다. 천장은 연등천장〔椽背天障〕이고 처마는 겹처마이며 지붕의 각 마루에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을 배치하였다.

이 문은 같은 도성 내의 숭례문(崇禮門 : 남대문)과 비교하여 건물의 규모나 형태는 거의 비슷하나, 남대문에 없는 옹성을 갖추고 있는 점이 주목되며, 남대문이 조선 초기의 양식적 특성을 갖추고 있는 데 비하여,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시대적 변천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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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루의 공포와 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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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의 옹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