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7.jpg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건물은 서애 유성룡 선생(1542∼1607)이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것으로, 자신이 병이 났을 때 요양하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선조 6년(1573)에 지었다고 하며 북촌의 북쪽에 강을 향해 정사와 누정이 자리잡고 있다.

북촌(北村)의 북쪽에 임강(臨江)으로 앉혀진 정사(精舍)와 누정(樓亭)의 2동(二棟) 목조(木造)건물이다. 강안(江岸)의 송림(松林)과 강저편의 부용대(芙蓉臺), 옥연정(玉淵亭)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다. 정사는 동편에, 누정은 서편에 나란히 세워져 모두 북향하고 있다.

정사는 길이 3간, 너비 간반의 홑처마 맞배집이며 합각에서 풍판(風板)을 달았다. 동쪽이 1간의 마루이고 서쪽은 2간의 온돌(溫突)인데 전퇴(前退)를 두었고 전열주(前列柱)는 모두 원주(圓柱)를 썼다. 마루에는 전면에 사분합(四分閤)들문, 후면에는 쌍여닫이 판문(板門)을 달아 마루방을 꾸몄는데 강안의 풍한(風寒)을 대비한 것으로 생각된다. 온돌은 각간(各間) 전면에 띠살분합을 달았고 후면에는 각 띠살외여닫이를 달았다. 기단(基壇)은 잡석난적(雜石亂積)이고 전면 중심에 간략한 3단의 석계(石階)가 부설되어 있다. 누정은 이름이 “연자루(燕子累) ”이며 길이와 너비가 모두 2간씩이지만 너비의 주간(柱間)을 좁혀서 장방평면(長方平面)의 정자가 되었다. 장대기단(長臺基壇)을 두었고 누하주(樓下柱)는 약간 굵되 자귀다듬으로 그친 다각주(多角柱)를 썼으나 누상주는 대패질한 원주(圓柱)를 사용했다. 2층 원주의 기둥머리에는 주두(柱頭)를 얹고 익공(翼工)을 끼웠으며 굴도리에 장혀 ·창방 사이에는 접시 받침을 고였다. 누마루의 4면에는 계자각(鷄子脚) 난간(欄干)을 둘렀고 오르내리는 목계(木階)를 부설하였다. 각간(各間)은 모두 개방이고 홑처마에 팔작(八作)지붕이다.

이 정사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34세시에 한때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할 때에 자주 쓰던 별서(別墅)이며 또 득병시(得病時)에도 요양하던 유서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 집이 정사인만큼 성격상 그러한 이용외에도 학문고구나 수양에도 이용되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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