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9.jpg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 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작천 유도관 선생이 이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작천고택이라고도 부르며, 하회마을 북촌의 서쪽 끝 강변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건축수법과 양식으로 미루어 조선중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래 2동이 있었으나 1934년 홍수로 현재 1동만 남아있다.

 

북촌의 서단 강안근접지에 위치한다. 전후면 모두 필요에 따라 고저를 두어 난적(亂積)한 막돌석축을 돌렸는데 전면의 석축은 좌단 부엌으로부터 우단의 사랑방에 이르면서 점차 높아져 있다. 우단의 사랑방을 제외한다면 방, 마루, 방, 부엌의 순으로 이루어지는 남부지방의 기본적이며 전형적인 4간 一자집이 된다. 여기서는 사랑방 1간이 더 증가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경우에 따라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러한 5간짜리 一자집도 지금은 남부지방 一자집의 한 기본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형 발원의 시기와 그 변화의 시기를 연계적으로 또는 거의 같은 시기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8398.jpg 이 집의 경우에는 작은 一자집이면서 안채 공간과 사랑방을 구별짓는 차면(遮面)담벽을 둔 것이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이 되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이 점은 사랑방을 따로 두게 되는 내외사상의 표현이기도 하며 그러한 점으로 소규모의 검소한 一자집에서 최소한의 설비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한 것은 대규모 가옥에 못지않은 기술적 지혜를 보이는 예라고 하겠다.

一자 5간의 중심간은 대청이고 그 양편 각 2간이 안방과 부엌 그리고 건넌방과 사랑방이다. 안방의 기본척수는 8척(尺) ×9척이나 건넌방과 사랑방, 부엌이 모두 다르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데 대청과 건넌방의 너비는 6척이고 사랑방은 7척이다. 길이도 각기 조금씩 다르게 조절되어 있는데 건넌방의 6척 ×7.6척방은 매우 좁은 간살이이다. 건넌방은 방이 작아진 대신 툇마루가 안방보다 약간 넓어져 있고 안방의 퇴마루는 그 반대로 작아지고 있는데 건넌방의 툇마루를 1척 남짓 더두어야 하는 이유가 이 툇마루에 사랑방 출입용 외여닫이가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척이라도 아껴야 했던 사정과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대목(大木)의 기술은 아마도 시기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이 집의 총규모는 너비 11척에 길이가 35척 이내에 든다고 할 수 있다. 8399.jpg 건넌방의 퇴마루앞에는 마루 밑을 막아서 퇴마루의 높이와 똑같은 높이의 반간 토방을 부설해 기능을 크게 확대하였는데 오르내리기는 대청앞 토방으로 한다. 부엌은 내부의 확대를 위해 양단기둥에서 외전(外轉)하는 온달벽을 막돌, 와편, 사기편 등으로 섞어 쌓았다. 부엌 천장은 고물반자를 단단히 짜서 안방에서 출입하는 다락으로 꾸몄고 부엌 인방(引枋)위와 측면 합각에 정자(井字)살 광창(光窓)을 두었다. 각주(角柱)에 홑처마 맞배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