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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평야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손씨 문중 건물로 이 마을에서 이씨 문중 서당인 강학당(중요민속자료 제83호)과 쌍벽을 이루는 서당이다. 조선 영조 52년(1776)경에 지었다고 하며 마을로 들어서는 동구 동쪽 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동리 어귀 바른편 산중턱에 위치하는 손씨문중(孫氏門中) 서당(書堂)이다. 양동(良洞)에는 원래 손씨와 이씨가 각기 자문(自門)의 서당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씨 문중에서는 근래 북촌의 산등성이에 경산서당(景山書堂)을 이축해서 2개의 서당을 갖게되어 모두 3개의 서당이 된 셈이다. 이씨 문중의 원래 강학당(講學堂)은 남촌(南村) 심수정(心水亭) 윗편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손씨 문중의 안락정(安樂亭) 서당은 동구(洞口)에서 약 300m나 전방인 양동과 인동(仁洞)의 분기점에 면해 있으며 그 산허리에서는 서남방으로 안강평야(安康平野)를 조망할 수 있다. 문중의 소전(所傳)에 의하면 1776년(영조(英祖)52년)경에 세워졌다고 하며 지금 손문(孫門)의 종손인 동만씨(東滿氏)도 이 서당에서 수학하였다고 한다.

정(亭)(서당)은 서출(西出)한 산줄기의 남쪽 중허리를 평정한 위에 세우고 방정(方整)한 담장을 둘렀으며 담장의 동변과 남변에 각기 문을 내었다. 담장안 마당에는 백일홍, 감나무, 향나무를 심었으며 연못을 축조하여 산중정취를 돋구었다. 정은 정면 5간, 측면 1간에 전퇴(前退)를 둔 一자집이며 중앙 3간은 대청이고 양단(兩端) 각 1간씩이 온돌방이다. 온돌방은 각기 후면에 달아낸 벽장을 두었고, 대청(大廳)쪽으로는 각 3짝씩의 불발기 창을 달았다.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을 썼으나 온돌방 전면 양주(兩柱)만은 방주(方柱)를 썼다. 어귀에 행랑 (초가) 1동과 방앗간 한채가 부설되어 서당의 뒷바라지를 맡아 왔었다. 행랑집은 방 2간에 부엌 1간의 삼간초가(三間草家)이며 초가마당 동변에 앉힌 방앗간채는 판마루 고방 1간과 디딜방아가 설치된 방아실이 1간인 2간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