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8.jpg 북촌의 서북편, 국민학교 서쪽 대지에 위치한다. 원지정사(遠志精舍)와 동 ·서로 상거(相距)해 있고 약간의 거리가 있으므로 송림(松林)과 강류(江流)를 굽어보게 됨은 물론 그 너머로 겸암정(謙菴亭)과 부용대(芙蓉臺)를 조망할 수 있는 승구(勝區)를 형성한다.

집은 길이가 3간에 겹집(양통(兩通))이며 동쪽 2간이 온돌(溫突)이고 서쪽 4간이 대청(大廳)이다. 온돌은 사방에 문호가 달렸으며 대청쪽에는 불발기 분합들문, 전면에 띠살분합, 측면, 후면은 각간(各間) 외짝 여닫이를 달았다. 대청의 전면 2간은 문호없이 개방되고 옆면과 뒷면 각간에는 판장분합이 달려 있다. 기둥은 모두 방주(方柱)이나 대청 전면 중심주만은 원주(圓柱)여서 원지정사의 경우보다 전면 치장은 덜한 셈이다. 주간(柱間)은 대청이 7척, 온돌이 8척으로 온돌간이 좀더 넓게 잡혀 있다. 그러나 이 집이 대청에 비중을 크게 둔 것은 원지정사의 경우와는 반대이다. 홑처마에 지붕은 팔작이고 사주(四周)에 불방정(不方整)의 토담을 돌렸다.

이 집도 정사인 점에서 원지정사와 같은 목적에서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지만 창건자가 서애(西厓)인지는 알수 없으며 건축시기도 상세히 전하지 않고 있다. 역시 서애의 직계손의 소유이므로 서애나 서애 이후의 학풍전수와 관련된 유적이 아닌가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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