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국보 제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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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계유명삼존천불비상(癸酉銘三尊千佛碑像) |
분 류 | 유물 / 불교조각/ 석조/ 불상 |
수량/면적 | 1기 |
지정(등록)일 | 1962.12.20 |
소 재 지 | 충남 공주시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
시 대 | 통일신라 |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 국립공주박물관 |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서광암(瑞光庵)에서 발견된 작품으로, 비석 모양의 돌에 불상과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 사각형의 돌 전체에 불상을 새겼는데, 앞면의 삼존불(三尊佛)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글이 새겨져 있고, 그 나머지 면에는 작은 불상을 가득 새겨 놓았다. 삼존불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반원형의 기단 위에 조각되어 있는데, 4각형의 대좌(臺座)에 앉아 있는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 옆에 협시보살이 서 있는 모습이다. 본존불은 옷을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상체가 많이 닳아서 세부 모습을 알아볼 수 없다. 특징적인 것은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이 무릎 아래로 길게 흘러 내려와 대좌까지 덮고 있다는 점이다. 양 옆의 협시보살도 손상이 많아 세부 모습을 살피기는 어렵지만, 무릎 부분에서 옷자락이 X자형으로 교차되고 있어 삼국시대 보살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들의 머리 주위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조각된 머리광배가 다른 부분에 비해 파손이 덜 된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삼존불상 외에도 사각형의 돌 전체에 일정한 크기의 작은 불상들이 규칙적으로 새겨져 있는데, 깨진 부분에 있었을 불상들까지 감안한다면 천불(千佛)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이들 작은 불상들은 모두 머리광배를 지니고 있으며,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다. 이 작품은 삼존불 좌우에 새겨져 있는 글을 통해 볼 때 신라 문무왕 13년( 673)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 유민들이 망국의 한과 선조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작품이란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비상은 충남 연기지방(燕岐地方)에서 발견된 비상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큰 작품이다. 낮은 기단(基壇) 위에 직사각형의 비신(碑身)이 세워져 있고, 비신 위에는 지붕돌이 올려져 있는 전형적인 비상 형태이다. 비신부는 4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면 하단부 중앙에 큼직한 삼존좌불상(三尊坐佛像)을 새겼으며, 협시보살(脇侍菩薩) 좌우로 비상을 조성한 조성기(造成記)를 새겼고, 머리 위로는 작은 불좌상(佛坐像)들을 9단에 나누어 촘촘히 나타내었다. 이 작은 불상들은 좌우측면과 뒷면 그리고 지붕돌에까지 표현되었는데 깨어진 지붕돌의 수까지 계산한다면 900여 구가 넘는 불상이어서 천불(千佛)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앞면의 삼존불좌상은 비상의 주존불(主尊佛)인데 본존불은 상현좌(裳縣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 있으며, 좌우보살상은 입상(立像)으로 삼각형구도를 보여 준다. 모두 연꽃대좌(臺座)와 보주형광배(寶珠形光背)를 나타내었으며, 본존불의 다소 딱딱해진 정면성(正面性)과 협시상들의 고졸성(古拙性) 등은 삼국시대(三國時代) 백제불양식(百濟佛樣式)이 짙게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명문(銘文)에 보이듯이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3년(673)에 백제유민(百濟流民)들이 그들의 선조를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 비상의 역사적 의의를 잘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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