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산[강원도 홍천군 동면, 화촌면
공작고개~공작산 정상~안공작재~약수봉~수타사계곡~수타사
숨은 새가
들려주는 산행지사
새옹지마
글 노규엽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바뀐 등산로에 대한 대비 필수
산행 종료 지점을 수타사계곡으로 하기 위해 동쪽에서 서쪽을 가로질러 종주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홍천군청 산림과에 등산로를 문의해보니 “정상을 오를 때까지 길이 험해 2시간 정도 걸리고, 총 등산시간은 6시간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하루를 온전히 산행에 집중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공작산 동쪽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은 공작골과 공작고개. 기존에는 공작골에서 문바위골을 따라 정상을 향하거나 안쪽의 공작골자연휴양림에서 산행을 시작해 안공작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 등이 있었는데, 이곳 땅주인이 사유지임을 주장하여 길을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었다고 하니 이 방면에서 산행을 시작할 예정이라면 최신 정보와 지도를 구하는 것이 좋다.
406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가 고갯마루 부근에서 주차장이 보이면 그곳이 공작고개 산행 기점이다. 작은 주차공간과 함께 화장실, 탐방안내소가 보이는데,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정보를 얻을까 하여 탐방안내소로 향했더니 ‘오늘 휴무합니다’라는 글귀만 붙어있다. “직원이 있으면서 항상 안내를 하고 있다”던 산림과 직원의 말과는 다른 현실에 ‘하필 이런 날에 걸릴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는 수 없이 등산로 입구 앞에 적힌 안내 글귀만 읽어보고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폐쇄된 등산로와 새로운 등산로에 관한 설명이라 적당히 훑어보고 가려는데, 현 위치가 해발 500m 지점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400m만 올라가면 정상이야?”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들은 사람도 웃고 말한 사람도 미소를 머금는다. 이어 예상보다 산행시간을 줄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산길에 들어선다.
초반부는 기대를 들어 줄 것 같은 산길이었다. 고도를 높이는 산길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가파르진 않았던 것이다. “(등산이 힘들다는) 정보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 편하게 걸었으나 어느새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계속 오르기만 하는 길의 경사도가 조금씩 높아지니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종종 나오는 이정표에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문의해보지만 300~500m 정도씩 밖에 줄어들지 않아 숨을 몰아쉬게 만든다. 이정표들에는 폐쇄된 줄 알았던 문바위골과 안골 등의 등산로 표시도 있어 의아해지는데, 이정표에 명시된 길들은 새롭게 만든 정규탐방로라고 한다.
살짝 붉어진 단풍과 아직 파란 잎이 합쳐진 신구(新舊)의 조화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힘들기는 하지만 날씬하게 몸을 세운 소나무가 많아 기분을 들뜨게 해준다. 또한 아주 가끔씩 물이 들기 시작한 단풍들이 눈에 띄어, ‘오르다보면 물 오른 단풍들을 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기대를 품은 채 한 걸음씩 옮기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그마한 골짜기 사이로 노랗게 물든 단풍이 빽빽이 모여 빛을 발하고 있다. 잠시 멈춰 서서 단풍을 즐기고 있는데 정상 방향에서 “정상 다 왔어요. 거의 다 와놓고 거기서 뭐해? 아, 사진 찍으시는구나”라는 소리가 들린다.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른 등산객이 벌써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모양이다. 정상이 가깝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준 것에 반갑게 화답을 하고 슬쩍 물어본다.
“혹시 어디서부터 오르셨어요?”
“지금 이 길로 올라갔다가 그대로 내려가는 거예요.”
어쩐지 다른 방향에서 오르기 시작했다면 벌써 하산하기 힘들 터인데, 그냥 공작고개에서 시작해 같은 길로 왕복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등산로 폐쇄로 인해 다른 길로 원점회귀 하는 것이 불가능해져서 이 코스를 잡았나보다. 가볍게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눈 후 조심히 내려가시라는 말을 전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간다. 한 고비만 오르자 바로 정상 갈림길에 이르렀다. 정상까지 ‘0.12km’ 남았다는 반가운 이정표가 있다. 쉴 것도 없이 바로 정상으로 향한다. 공작산의 정상부는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오를 때 주의를 요한다. 정상은 좁긴 하지만 바위들이 의자를 만들어주고 있어 적은 인원이 올랐을 때는 좋은 쉼터가 되어준다. 보통 사람 키의 반 정도 되는 정상석이 있는데 땅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배낭이나 몸을 기대는 것은 위험하니 피하는 게 좋다. 사방이 열려있고 특히 홍천 읍내 방향으로 시야가 확보되어 있어 조망하기 좋으나, 아쉽게도 이날은 안개가 짙어 뿌연 윤곽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시간이었지만 끝내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도도한 공작새는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조망이 시원치 않으니 괜히 정상에 오래 머무르며 체온을 빼앗길 필요가 없었다. 오르느라 가빠졌던 숨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 바로 하산을 하기로 했다. 정상까지 오른 시간은 산림과 직원의 정보대로 2시간 정도였다. 수타사까지의 하산길이 길이가 긴만큼 완만한 능선일 것으로 예상하고, “하산시간을 3시간으로 줄여보자”는 다짐을 하며 내려간다. 하지만 이 다짐은 10분도 안되어 수포가 되었다. 정상 갈림길로 되돌아와 수타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는데 어마어마하게 가파른 길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바위로 이루어진 길에 낙엽까지 덮여있어 미끄럽기까지 했다. 속도를 내기는커녕 낙상을 막기 위해 조심스러운 한 걸음을 내딛기에 급급하다. ‘조금만 내려가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우선은 몸을 지키는 데 온정신을 쏟았다.
가파른 바위길을 내려서자 완만한 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등산로 폐쇄’ 표지가 세워져있는 안공작재에 이른다. 이 길이 폐쇄되지 않았다면 공작산자연휴양림 쪽으로 내려가 원점회귀를 할 수 있던 지점이다. 종주를 계획한 취재팀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공작산 정상만을 오르내리려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린 등산로 폐쇄이다. 허나 개인의 사유지라니 불만을 토로할 방법도 없고 상황에 맞춰 산행 계획을 짜는 수밖에 없겠다.
안공작재를 지난 시점부터는 완만한 능선을 기대했건만, 여전히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 반복되면서 종종 정상 근처와 비슷한 위험한 바위길이 나와 계속 긴장을 하며 산행을 이어가야 했다. 게다가 산이 너무 적막했다. 이 정도로 깊은 강원도의 산이면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대체 이 산의 새들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그나마 정상을 넘은 후에는 붉게 물든 단풍들이 제법 모습을 드러내어 무료함을 달래주곤 했다. 작은 헬기장을 지나 고개 하나를 넘으면 수리봉에 도착하지만, 워낙 좁고 잡목이 무성해 쉬어갈만한 곳은 못된다. 그리고 이후부터 상당히 가파르게 내려가는 바위길이 나타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한다.
정상 아래에서 만난 첫 물 단풍. 반가운 가을색의 예고였다.
꽤 길게 이어지는 바위길을 힘들게 내려서면 신봉리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안부삼거리에 도착한다. 허나 어차피 약수봉이 목표니 신경 쓰지 않고 직진을 선택한다. 안부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눈앞으로 높이 솟은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설마 저길 올라가야 약수봉인 건 아니겠지?”라고 걱정을 해보는데, 길이 이어지는 품새로 보아 걱정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내려가는 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444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임도를 만나고, 약수봉 가는 길은 임도를 가로질러 앞서 말한 봉우리로 연결된다. 정상이후 계속 오르내리는 길을 걸으며 하반신이 지칠 때로 지쳤던 터라 한숨이 먼저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 봉우리만 오르면 물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약수봉은 그 이름에 맞게 봉우리 아래에 약수가 나와서 약수봉이라 한다. 원래는 이름 없는 무명봉이었는데 수타사와 연결되는 2~3시간짜리 등산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름이 없는 채로 두는 것은 이상할 것 같아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른 봉우리를 아무리 둘러봐도 물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산로 방면에 있나 싶어 수타사 쪽 길을 조금 내려가 보지만 낌새조차 없다. 후에 확인해보니 계곡 쪽으로 내려가다가 동봉사 쪽으로 가다보면 약수가 있는 것이라 한다. 아쉽긴 하나 수통의 물은 충분했으므로 약수봉 이정표에 달린 지도를 주목했다. 내려갈 하산로를 둘러봤더니 수타사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고개를 1~2개 정도 더 넘을 것 같은데, 소 방면의 길은 바로 수타사계곡으로 내려간 후 완만한 길을 따라 수타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산행로를 바꾸기로 한다. 어차피 수타사에 내려서더라도 수타사계곡을 한번 둘러봐야 할 터, 이왕이면 산행과 연결하여 계곡을 보는 것이 일석이조일 거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그리하여 산행 끝 무렵에 계획을 수정하여 계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행 미션 끝마치면 절정의 비경 기다려
“길 차~암 밉다 미워.”
마지막까지 쉽게 보내주지 않는 공작산의 산자락에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정표에 따르면 1.5km만 내려서면 끝날 구간임에도 내려가는 내내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100대 명산이건만 안전장치나 계단 등의 설치물이 거의 없어 산행 내내 온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내려가야 하는 구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설치물이 더덕더덕 설치된 산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산이 더 좋기는 하지만, 공작산은 군립공원이기까지 한데 너무 위험을 방치해두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도 든다. 확실한 것은 그런 안전구조물이 설치되기 전에는 초심자나 자녀를 데리고 가족단위의 산행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가다 보니 물소리가 가까워지며 계곡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끝까지 조심성을 잃지 않으며 마지막 내리막을 내려서자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힘찬 물살이 흐르는 게 보인다. 드디어 수타사계곡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곳에 있다는 소는 소여물통을 닮은 소(沼)를 뜻한다. 이란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나 말의 여물통을 뜻하는 황해도, 강원도 사투리라고 한다. 세차게 흐르는 물결 속에서 소 찾아보기가 끝났으면 수타사 방면의 완만한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은 강원도가 만든 ‘산소길’이라는 걷기코스와 겹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얕은 굴곡은 있지만 작은 고개를 넘어가듯이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계곡으로 잠시 내려설 수 있는 암반에서 손도 담가보고, 조망이 좋은 곳에서 공기도 흠뻑 들이키며 걷다보면 어느덧 수타사에 이른다. 총 6시간의 산행. 예상 이상으로 산이 험한 탓에 군청 산림과 직원의 정보에서 조금도 시간을 줄이지 못했지만 마지막에 멋진 계곡을 만나서인지 산행 도중 쌓였던 스트레스는 확 풀어졌다. 덧붙여 공작산 생태숲의 이정표들이 늘어서 있으니 시간이 있다면 잠시 둘러보는 것도 좋다. 물론 수타사에서 고요한 사찰의 정취를 즐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다. 산행을 하는 내내 어려운 산길로 고생을 시키더니 마지막에 이르면 온갖 호강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공작산은 이상한 산이다. ⓜ
공작산은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지만 부분적으로 단풍이 섞여있어, 완연한 단풍철에는 명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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