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락산
상선암주차장~형봉~도락산~형봉~흔들바위~상선암주차장
내딛는 걸음마다 깨달음의
미소 번질 지어다
글 노규엽 객원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사전 조사와 준비가 반드시 필요한 산
산행에 앞서 준비해야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식수다. 도락산은 연이어지는 암봉 능선이 아름다운 반면에 물은 찾기 힘든 산이라, 자신의 평소 물 소비량을 떠올려 미리 넉넉하게 물통을 채워놓는 것이 좋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산은 더운 여름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겠으나 바위산이다 보니 겨울이나 비오는 날 같은 표면이 미끄러울 때는 피해야하고, 날씨가 좋은 날을 고르면 더위를 극복하기 위해 물이 필요하고, 물을 많이 챙기자니 짐이 무거워 땀이 더 많이 배출되는 아이러니를 지닌 산이다. 그래서 선선한 가을이 가장 찾기 좋은 때라고 한다. 산행 계획은 상선암휴게소에서 시작하여 도락산의 암릉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잡았다. 이곳에서 시작하면 초반부터 가파른 길을 지나 암릉에 올라서야 하지만 상선암휴게소가 해발 300m 정도에 있어 정상까지 600여m만 오르면 되기 때문에 그리 힘들게 여겨지는 코스는 아니다.
도락산 산행을 위해 상선암휴게소에 도착해보면 정작 단양팔경 중 하나인 상선암은 눈앞에 흐르는 계곡물을 거슬러 바라봐야 보일락 말락 한 지점에 있다. 굳이 보려고 한다면 걸어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니 산행보다 앞서든 뒤서든 마음이 내키는 때에 찾아가면 된다. 자가운전으로 이곳을 찾았을 경우에는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더 도락산 쪽으로 들어가 절경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찰 상선암 앞의 식당 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료를 아낄 수 있다. 그 대가로 밥 한 끼를 해결하는 성의를 보여야할 수도 있지만, 이 부근의 식당 주인들이 대부분 마을 토박이라 산행에 앞서 미리 정보를 얻는 지혜를 발휘할 수도 있다.
물 많은 시기에만 흐르는 작은 계곡을 지나면 산행이 종료되는 지점이다.
사실 원점회귀 산행을 하기로 정한 이유는 조금 더 힘들더라도 암릉을 고루 둘러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내를 맡아준 단양군청산악회 소속의 최진호씨가 “원래 산길이 다양한 방면으로 있었으나 월악산국립공원 사무소에서 탐방로 제한을 한 이후 대부분 원점회귀 산행을 하다 보니 다른 길들에는 수풀이 가득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많던 산길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은 안타까우나 가장 좋다는 길이 남아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상황인 것이다. 원점회귀 산길의 탄생비화를 들으면 안타까운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된다. 산길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선암가든 주인의 말에 따르면 “25년 전 내가 마을 이장을 맡고 있을 적에 도락산의 원점회귀 산길이 만들어졌다”고 하며,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군청에서 비용을 받아 원점회귀 산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단양군 전체의 경지면적이 11% 정도 밖에 안 되다보니 산 귀퉁이에 만든 텃밭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산길이 생기면서 민박을 겸한 식당도 생기고 마을 사람들의 사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이야기. 산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 산으로 먹고 사는 윈-윈 전략이 25년 전부터 생겼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듣고 나니 원점회귀 산행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이유야 어쨌든 길은 정해졌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떤 깨달음이 찾아오고 어떤 즐거움이 뒤따를 지는 이제부터 찾아볼 일이다.
사찰 상선암을 스쳐지나 접어드는 산길 초입에는 흙으로 뒤덮인 길을 마주하게 된다. 능이버섯과 송이버섯이 많이 나는 산이라는 정보에 발밑을 주시하며 걸어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달 전 스치고 지나갔던 태풍들 탓에 너무 이르게 떨어져버린 밤송이들만이 눈에 띌 뿐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발을 모아 밤송이를 열어봐도 미처 살을 불리지 못한 초라한 모습들이라 안타까움을 더한다. 허나 밤송이들의 시련보다 더 절실히 다가온 것은 산행시작 30여분 만에 찾아온 도락산이 주는 시련이다. 갑자기 길이 된비알로 변하는 탓에 금세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숨이 턱 끝에 차오른다. 아직은 더운 날씨가 보태져 산행은 금세 육체적 고통으로 바뀐다. 어느새 손이 물통을 향하고 ‘꿀꺽꿀꺽’ 마시게 되니 “도락산 산행은 가을이 가장 좋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 미리 정보를 얻고 물을 넉넉히 준비했기에 초반임에도 부담 없이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또 한 가지 좋은 것은 그렇게 애를 써 오른 바위에서 시원한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송시열 선생이 얘기한 도락의 의미는 ‘힘든 길을 걸어 땀을 흘리면 좋은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었던 걸까? 그러나 그것은 여느 산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닌가. 산행 초반에 떠오르는 작은 불만(?)이지만 아직 도락산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바위 위에서의 경치는 즐거움을 주는 반면에 그 바윗길을 오르는 행위는 즐거움과 거리가 멀다. 딛고 오를 돌 하나하나의 크기가 만만치 않아 제법 날카롭게 깎인 바위를 마주칠 때면 두 다리만으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손을 이용하여 바위를 집을 때마다 ‘초보자에게는 조금 버거울 수 있다’는 사전 정보도 이해가 된다. 두 번째로 산 아래 조망이 가능한 바위에 오르면 상선암이 내려다보이는데 이곳이 전망대바위다. 경치가 좋으니 마음이 풀리는 듯싶었지만, “아직 암릉은 시작도 안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뒷일이 살짝 두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도전에는 늘 두려움이 뒤따르는 법. 도락산에서 얻는 깨달음과 즐거움이 뭔지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넘어야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암릉길 들기에 앞서 신발끈 다시 질끈!
이제 능선에 올랐다는 확신이 듦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암릉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의문에 대해 최진호씨는 “능선 내내 이런 암릉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는 답을 내놓는다. 공룡 등짝 같이 연이어지는 암릉길을 상상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현실을 마주하니 살짝 힘이 빠지기도 한다. 도락산에 실망을 느낄 순간이지만 도락산삼거리를 지나 이내 신선봉에 이르면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널따란 하나의 암반으로 이뤄진 이 봉우리는 도락산의 암봉들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라 순식간에 사방의 조망이 트인다. 가까운 황정산, 수리봉, 용두산 등의 연봉을 볼 수 있고, 멀리로는 월악산 영봉과 소백산 천문대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산림청의 100대 명산에 도락산이 선정된 이유인 ‘소백산과 월악산의 중간에 위치하며, 단양팔경인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과 사인암이 산재해있는 바위산으로 경관이 수려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는 이야기가 수긍이 가는 지점이다. 또한 신선봉의 한 편에는 직경 1m 정도의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1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바위산에서 마주치는 신기한 광경이지만, 외관상으로도 절대 마실 수 있는 수준의 물은 아니라서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신선봉에 있는 직경 1m 정도의 물웅덩이. 이곳의 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신선봉을 지나면 금세 도락산 정상이다. 힘든 길을 극복하고 정상에 도착했건만 넓지도 않은데다가 잡목이 우거져 가슴이 찡해지는 조망도 없고 단지 잘 만든 정상석 하나와 앉아 쉴만한 의자 몇 개가 있을 뿐이다. 최진호씨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돌로 쌓아올린 석탑이 있었는데 무너뜨렸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도 좁은 정상 자리를 조금이나마 넓히고자 함인지, 폭우 시 낙석의 위험을 피하고자 함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어느 쪽도 밋밋한 정상이라는 점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듯하다. 다만 잡목이 만든 그늘이 있어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는 장소는 된다.
원점회귀 산행을 하려면 일단 도락산삼거리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한 번 신선봉을 지나며 정상에서 부족했던 조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도락산삼거리로 돌아오면 채운봉 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이 길로 접어들면 도락산의 ‘즐거운(?) 암릉길’이 시작된다. 지금까지와 비슷하게 암릉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고개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위봉우리 하나를 오르는 형국이다. 또한 그 하나하나가 쉽게 볼 수 없는 가파른 경사를 지닌 터라 난이도가 더 어려워지니 여태까지의 산길에서 이미 한계를 느꼈다면 삼거리에서 다른 길을 택하는 걸 고려해봐야 한다. 반면에 오를 체력만 남아있다면 하나의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성취감과 멋진 경치가 보장되니 자신의 상태를 잘 파악하여 길을 잡을 것.
채운봉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도락산 암릉길의 진수가 시작된다. 요즘 인터넷에 유행하는 문구인 ‘지금까지의 산길이 그냥 커피였다면 이제부터는 T.O.P야’라는 캔커피 광고의 패러디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온몸을 써야하는 힘든 구간이 이어진다. 삐쭉빼쭉 솟아오른 암봉들이 쉴 새 없이 나오는 길이라 위험한 구간도 종종 나타나니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는 것이 안전한 산행을 위한 일이다. 허나 긴장감에 눌려 앞만 보고 간다면 암봉들이 성벽처럼 둘러친 장면을 볼 수 없어 도락산 경치의 절반 이상을 놓치는 것이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쉬면서 여태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여유도 잊지 말아야한다. 머리 부분에 올랐을 때와는 달리 크고 늠름한 하나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신선봉 그리고 녹색 숲을 뚫고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마치 숲 사이로 하얀 바위꽃이 핀 듯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놓으니 놓치면 후회할 광경이다.
바위 틈틈이 소나무 등이 뿌리를 내린 도락산의 암릉은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경치는 좋지만 이 길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이름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단 하나, 검봉만은 이름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아래에 있는 흔들바위 덕분이다. 흔들바위를 찾는 방법은 제법 평평한 암반 위에 절벽 쪽으로 철제 난간이 설치된 바깥에 바위 하나가 보인다면 그것이 흔들바위다. 이런 기물이 있으면 반드시 건드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법. 바위를 미는 것보다는 아래로 누르는 게 손쉽게 흔들린다는 점을 미리 귀띔한다.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범바위, 큰 선바위, 작은 선바위들을 감상하며 지나다보면 층층계단이 흙길에 사뿐히 박힌 내리막이 나온다. 이후부터는 발걸음 가는 대로 죽죽 내려가면 된다. 내려가는 구간이 제법 길어 무릎을 조심하는 것이 좋다. 이내 작은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면 산행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이다. 여름에 비가 많이 왔을 때만 물이 흐르는 계곡이라 큰 시원함을 느낄 여지는 없고, 산행 종료를 알리는 표지 정도로 생각하는 게 낫다. 다리를 지나고 나면 나오는 마지막 이정표는 상선암주차장까지 0.7km 남았다고 전해주지만, 금방 마을로 접어들기 때문에 사실상의 산행은 종료다.
마을길을 걸으며 짧은 명상으로 도락산 산행을 마무리해 본다. 오늘 대체 무슨 깨달음을 얻었던가. 그리고 즐거움은 따라왔던가. 처음부터 하나하나 정리해보면 물을 넉넉히 준비해야한다는 사전 정보가 없었으면 고생할 수 있었다는 것과 산을 오르는 수고를 감수하면 멋진 경치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겠다. 흔하디 흔한 깨달음, 다른 산에서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깨달음에 불과하다. 혹시 이 단순한 사실을 복습하는 것이 송시열 선생이 일컬은 깨달음인가? 차를 주차해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생각을 이어봤지만 다른 결론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아 이것이 오늘 깨달음의 전부인 것 같다. 아마 다음에 다시 도락산을 찾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산행을 하는 사람들마다 깨닫는 것이 다 있을 터니 직접 찾아보고 느끼기를 바란다. 아차, 이것 또한 흔하디 흔한 깨달음이다. ⓜ
등산코스
- 상선암휴게소(10분/0.5㎞) → 상선암 사찰(40분/1.5㎞) → 제봉(60분/1.0㎞) → 능선분기점(40분/0.8㎞) → 도락산(30분/0.8㎞) → 능선분기점(40분/0.8㎞) → 검봉(50분/2.4㎞) → 상선암휴게소(원점 회기 산행)
도락산의 암릉길은 힘들지만 봉우리마다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할 때면 절로 피로가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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