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교마을~태화산 정상~태화산성~고씨굴
고요한 산에 눈꽃
피어 참말로 좋은날
글 노규엽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근년 들어 눈이 자주 오지 않는다는 말도, 눈이 와도 많이 오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 무색하게 하룻밤 사이 내린 눈이 온통 영월을 뒤덮은 날이었다. 덩달아 한껏 추워진 날씨와 미끄러운 길 위로 차도 사람도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야 했지만, 12월부터 눈 덮인 겨울 산을 누빌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마음이 급했지만 우선 산길을 안내해 줄 현지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영월군청 방재산림과에서 등산안내인으로 소개해준 류인용씨와 숲해설가를 하고 있다는 민영혁씨였다. 먼저 류인용씨를 만나 능선을 따라 이동하는 경로로 산행을 하자는 뜻을 말했더니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취재팀을 긴장케 했다. 허나 그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이내 동의를 하고 산행기점으로 향했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취재팀도 빙판길에서 최대한 속도를 내어 그들을 따랐다. 눈이 하얗게 덮인 태화산을 빨리 오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상까지 가장 가까운 산행기점
영월읍 흥월리의 안쪽에 있는 흥교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흥교마을은 흥교사라는 절이 있던 곳으로 마을 저수지를 파다가 금불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절이 있었다는 마을 뒤편의 평평한 농경지를 지나면 태화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한 농장의 뒤편으로 길이 있는데 이정표 등의 표지가 전혀 없어 길을 아는 사람과 동행하지 않으면 입구를 찾기 힘들다. 이번이 그런 경우라 초반부터 영월군에서 소개해준 등산안내인 덕을 톡톡히 봤다. “원래 이쪽에 길이 있었는데 농장 주인의 민원으로 길을 바꿨으니 저쪽으로 가야 한다”며 앞장선다. 그렇게 길을 찾아 태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행이 시작되는 영월읍 흥월리의 흥교마을. 등산로를 알려주는 표지가 없어 길찾기가 어렵다.
바로 정상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라 초반부터 가파르게 시작한다. 거기에 밤새 내린 눈이 덮여있어 가끔 나뭇가지에 걸린 산악회들의 표식이 없으면 등산로와 등산로 아닌 곳의 차이를 찾을 수 없다. 자연히 산행 경험이 많은 류인용씨가 앞장서서 올라가고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형태로 산행이 진행되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어가니 발 밑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는 것은 썩 기분이 좋지만, 기본적으로 가파른 등산로다 보니 금세 숨을 헐떡이게 된다. 민영혁씨의 말에 따르면 “영월의 산들이 모두 능선에 오르기까지는 가파르다”며 지금 오르는 길만 가파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준다. 이 말은 능선까지만 오르면 길이 편해진다는 것이니 약간 힘들더라도 기대감을 가지고 오를 수 있는 게 영월 산들의 특징이라는 뜻이 된다.
40분 정도를 올랐을까. 등산로 왼쪽의 사면이 훤하게 뚫리며 영월읍 방면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원래 전망대 역할을 하는 지점은 아니고 얼마 전에 벌목을 한 덕분에 조망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눈이 온 뒤 한껏 파란 빛을 띤 하늘과 하얀 산의 조화가 아주 멋지다. 조망지점을 지나자 이번에는 눈꽃이 한가득 핀 겨울 숲에 들어섰다. 연이어지는 멋진 경관에 발걸음이 조금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홀로 길을 뚫고 가던 류인용씨는 “눈꽃 떨어질까봐 급하게 올라왔는데 다행히 남아있네요”라면서 급하게 올라갔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한 배려 덕에 거의 첫눈이 내린 시기부터 겨울 산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 안내인들의 배려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눈꽃 숲을 지나 소나무 숲길에 접어들자 민영혁씨가 “이곳이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며 화전민을 이주시킨 후 소나무를 심은 거라는 설명을 해준다. 여러 산을 다니면서도 화전민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산에서 그 흔적을 찾기 힘들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숲을 지나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정상 능선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태화산의 첫 이정표를 볼 수 있었는데, 안내인들은 “흥교마을에서 오르는 길은 찾기 어렵지만, 능선에만 오르면 이정표가 많이 있다”고 말한다. 이곳부터 한동안은 단양군과의 경계로 서남쪽(올라온 방향으로 오른쪽 전방)으로 단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산 사면에 덮였던 신설을 밟는 것도 좋았지만 부드러운 능선에 쌓인 눈 위로 첫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더욱 기분 좋은 일이다. 힘겹게 올랐던 길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편하게 10분 정도만 걸으면 태화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태화산 정상은 제법 평평한 공터에 크지 않은 정상석이 2개 세워져 있는데, 검정색은 단양, 회색은 영월에서 세워놓은 것이다. 허나 조망 위치로는 썩 적합하지 않으므로 오래 쉬어갈 곳은 못된다. 정상을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나오는 무덤 옆에 나무 벤치가 2개 있으니 휴식을 하려면 이곳이 더 좋다. 또한 이 쉼터를 지나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면 곧 단양군과의 경계는 끝이 나고 영월군의 영역인 태화산 주능선을 걷게 된다.
능선만 따라 걸어가는 산행의 지겨움
계속 능선을 따라 가는 산행이 이어지는데 아까 들은 말대로 이정표를 많이 마주칠 수 있다. 딱히 갈림길이 없는 곳임에도 계속 세워져 있어 너무 남발한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드는 터다. 매우 험한 구간은 없지만 흙길과 자갈길이 섞여 있어 눈이나 낙엽이 쌓여있는 시기에는 발목 부상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간간이 미끄러운 바위 구간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가파른 사면을 올라 정상 능선에 이르면 부드럽게 굴곡진 길이 이어진다.
정상을 지나 600m 정도 이동하면 큰골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큰골은 영월읍에서 찾아가는 기준으로 흥교마을보다 조금 더 앞선 달지마을로 내려가는 길인데, 등산객들이 보통 하산로로 이용하는 곳이라 한다. 갈림길을 지나 다시 조금만 더 가면 U자로 굽은 남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이것이 능선을 따라가는 산행의 좋은 점이라 할 수 있다. 이후로도 조망처가 몇 군데 더 있으므로, 지친 다리를 쉬고 싶을 때쯤이면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쉴 수 있다.
이후로는 딱히 특이할만한 갈림길이 나오지 않는다. 오르내리는 능선을 따라 길을 이어가다 보면 제법 넓은 공터가 나온다. 취재 시에는 눈이 덮여있어 바로 알 수 없었지만 이곳이 헬기장이다. 이곳을 지나면 조금 급하게 내려가다가 안부에 도달한다. 이정표가 하나 세워져있지만 여전히 갈림길은 없는 곳이다. 산행을 시작한 이래 거의 말이 없이 앞장서 가던 류인용씨가 여기서 입을 연다.
“앞에 보이는 언덕을 넘어가면 바로 고씨굴로 가는 길이고, 태화산성을 보고 가려면 왼쪽으로 빠져야하는데 어쩌실래요?”
“태화산성이 능선 상에 있는 게 아니라 옆쪽으로 빠져 있나요?”
“예, 멀진 않아요. 왕복하는 데 20분 정도면 충분할 거에요.”
“그럼 산성에 들렀다 가죠.”
이렇게 또 안내인의 도움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태화산성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하나도 없어 아무 정보도 없이 길만 따라갔다간 자칫 태화산성은 구경도 못할 뻔 했다. 안부를 지나 조금 올라가다보면 왼쪽으로 얄팍한 등산로가 있는데, 그 쪽으로 이동해야 태화산성으로 갈 수 있다. 산 사면을 따라 조심히 내려가면 오그란이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며 그제야 태화산성 이정표도 볼 수 있다.
이정표에 따라 산 언덕을 하나 오르내리면 사람 머리만한 돌들이 이리저리 쌓여있는 길을 걷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태화산성이다. 태화산성은 석성과 토성이 혼합된 형식의 산성인데 모두 무너져 내린 형태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전설이 하나 전해지고 있다. 옛날 아들과 딸을 가진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성 쌓기 내기를 시켜 먼저 성을 쌓는 사람을 키우기로 했다. 아들에게는 돌성을 쌓게 하고 딸에게는 흙성을 쌓게 하였는데, 진행 상태를 보니 딸이 먼저 완성할 것 같았다. 내심 아들을 위하려고 했던 어머니가 위기감을 느껴 딸이 쌓던 흙성을 무너뜨렸고, 딸은 흙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다는 것. 딸이 쌓던 성이 바로 이 태화산성이라 산성이 무너져있다는 전설이다. 아들이 쌓은 성은 태화산의 북동쪽에 붙어있는 계족산의 정양산성인데, 영월에 있는 산성 중에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산성이라고 한다. 태화산성을 따라 절벽 끝에 이르면 건너편에 있는 정양산성을 볼 수 있는데, 보통 지형도에는 정양산성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영월 내에서는 왕검성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부른다. 굳건한 성벽 형태로 서있다는 왕검성의 자태는 태화산성 끝의 전망대에서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는데, 온통 하얗게 눈이 덮인 시기라 안내인이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허나 숲이 조금 우거져 색의 대비가 확실한 시기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태화산성을 밟아본 이후에는 다시 능선으로 돌아갔다. 태화산성으로 내려가기 전에 올랐던 능선 위에 다시 오르면 고씨굴까지 3.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후로도 그저 밋밋한 능선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데, 얼마 가지 않아 고씨굴로 내려가는 길이 오른편으로 꺾인다. 정면에 보이는 바위 방면으로 ‘전망대’라는 표지가 걸려있으나 정작 바위 위로 올라가 봐도 잡목에 가려 조망이 좋지 못하다. 걸어놓은 지 오래 된 것으로 생각되므로 애써 가보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
이제부터는 고씨굴을 향해 내려가는 지능선을 타게 된다. 류인용씨가 “험한 구간이 2~3곳 정도 나올 테니 긴장해야 한다”고 정보를 준다. 그 말처럼 하산길로 내려서자마자 미끄러운 바위 구간이라 저절로 다리에 힘을 줄 수밖에 없다. 조심스레 10분 정도만 내려가면 첫 번째 난코스를 통과할 수 있다. 이후 잠시동안 편한 능선을 이어가는데, 정상 능선과 비교해 좋은 조망처도 없고 길이 좁아져 지겨운 느낌이 든다. 류씨의 말로도 “여름철 수목이 우거졌을 때 놀러오기로나 좋을 뿐, 굳이 오르거나 내리기에는 적합지 않다”는 말을 한다. 조망 좋은 정상 능선을 걷고 하산길에 고씨굴을 들르기 위해 이 코스를 잡았으나 일반 산행을 즐기기에는 좋지 못한 코스임이 확실하다. 다만 고씨굴로 하산하는 것이 힘들긴 해도 좋은 점이 있다면, 관람료를 내지 않고 고씨굴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좁은 능선길을 따라 가면 어느 순간부터 가파른 하산길이 나타난다. 아예 바위구간인 곳도 있고 눈 속에 돌이 숨어있는 곳도 많아 발 디디기가 무척 까다로운 구간이다. 능선으로 오를 때의 가파름과 맞먹는 경사도를 지니고 있으니, 등산안내인과 취재팀 모두 한 번씩은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눈이 쌓인 겨울에는 고씨굴 입장료 3천원을 아끼기 위해 이 코스로 산행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라 판단된다.
급하게 내려가는 길이다 보니 산 아래 풍경들이 빠르게 가까워진다. 이내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는 장소가 나타나는데, 그 곳에 서면 고씨굴 관광촌과 남한강 물결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서 하산까지는 금방. 허나 전망데크를 돌아서면 바로 위험한 바위 구간이 조금 있으니 끝까지 긴장을 풀면 안된다. 짧은 바위 구간을 내려서서 계단이 나와야 안심할 수 있다. 이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고씨굴이 나오고 고씨굴을 관람한 후 다리를 건너면 산행이 종료된다. ⓜ
태화산 정상. 조금 넓은 공터이지만 조망이 그닥 좋지 않아 쉼터로는 부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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