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 정보

연인산에서 하룻밤 보내며 해맞이 하고 명지산까지 설릉 종주

문성식 2011. 12. 16. 10:49
[르포 2제] 연인산에서 하룻밤 보내며 해맞이 하고 명지산까지 설릉 종주
운이 좋다면, 구름이 부리는 재주에 웃을 수 있다

새들도 걸어다닐 정도로 짙은 안개가 연인산(戀人山·1,068.2m)을 뒤덮었다. 일출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 잠시 발아래로 가라앉았던 구름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분무기로 뿌린 듯한 이슬비까지 산천을 적셨다. 질척거리는 땅에 텐트를 칠 수 없어 먼지 가득한 무인대피소로 쫓겨 들어갔다. 백색의 어둠이 희미한 창밖을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는 밤이다.


“형! 날씨가 이래 가지고 일출 보기는 틀렸는데요.”


“일기예보는 좋아진다고 하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구먼.”


휴대전화로 가평 지역의 날씨를 확인했다. 수화기 너머로 ‘구름 조금’이라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저녁 무렵에 봤던 깨끗한 운해가 다시 나타나며 해가 떠오르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정반대였다. 도무지 앞일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늦은 밤까지 기다렸지만 구름은 우리 주변에 머물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산줄기를 넘나드는 구름이 만들어낸 몽환적인 산길 분위기.

침상을 더듬던 생쥐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새벽녘에 깊은 잠에 빠졌다. 일출시각 전에 일어나려고 휴대전화 알람을 맞춰뒀는데 감감 무소식이다.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며 죽어버린 것이다. 창밖이 희뿌옇게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난 시각이 오전 7시경. 날은 밝았지만 안개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어젯밤보다 더욱 짙어져 주변 사물을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일찌감치 정상에 오르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일출을 보기 위해 다시 이곳에 올라올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무거운 배낭에 숨을 헐떡이며 연인산으로 오르던 어제 오후의 악몽이 떠올랐다. 게다가 구름이 계속 산등성이에 머문다면 오늘 산행도 엉망이 될 것이 자명했다. 취재를 나온 우리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안개 걷히며 거짓말처럼 해 솟아


▲ 연인산에서 명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상고대가 활짝 폈다.

“어! 저기 좀 봐. 해 뜬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저 멀리 산줄기에서 서광이 비췄다. 거짓말처럼 해가 뜨고 있었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돌발 상황에 김승완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둘러메고 뛰기 시작했다. 주변 능선의 윤곽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세상에 빛이 쏟아졌다.


천지가 개벽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산정을 감쌌던 안개가 떠오르는 해에 밀려 골짜기 밑으로 숨을 죽였다. 구름 위로 드러난 봉우리들이 바다 위의 섬처럼 솟았다. 회오리 치는 구름이 이 작은 섬들을 삼켰다 뱉으며 흔들고 있다. 너무도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모든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확실하고 또렷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긴 고민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가벼운 차림으로 연인산 정상으로 올랐다. 격동의 운해가 펼쳐지던 남쪽의 풍광과 달리 북사면은 고요했다. 대신 보석처럼 찬란한 상고대의 바다가 펼쳐졌다. 나무마다 매달린 날카로운 얼음 결정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운해의 고요함도 인상적이었다. 연인산은 하루를 기다린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줬다.


▲ 명지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에서 GPS로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배낭을 메고 가벼운 마음으로 명지산으로 향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미 80% 이상 취재를 마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운해와 상고대를 동시에 구경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연인산은 우리에게 전해줄 또 다른 선물을 숨기고 있었다.


운해에 잠긴 세상을 발아래 두고 걷는 재미는 확실히 남달랐다. 해발 1,000m가 간신히 넘는 산이지만 구름이 깔리며 고도감이 증폭됐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바로 아래 마을과 논밭이 있음이 분명하지만 보이지 않으니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오히려 명지산에서 화악산으로 이어진 고봉들의 릴레이가 더욱 돋보였다.


▲ 상고대와 눈 그리고 운해.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며 환상적인 풍경이 드러났다(위). 상고대가 얇은 얼음처럼 달라붙어 있는 나뭇가지.


안개 속에서 즐긴 몽환적인 능선 종주


오늘은 연인산을 넘어 명지3봉과 2봉을 거쳐 백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갈 예정이다. 무거운 짐과 부실한 체력에 걱정이 앞서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구름을 밟고 산을 넘는 신선놀음의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가기로 하고 발길을 옮겼다.


연인산을 넘어서면 산길은 내리막으로 변해 차분히 파도를 치며 아재비고개까지 이어진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어 부담이 적은 구간이다. 날씨까지 푸근해 12월이지만 긴팔 티셔츠 차림이다. 하지만 북사면에 형성된 상고대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상고대를 이렇게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게다가 수시로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은 모든 사물을 몽롱한 모습으로 변하게 했다. 태양마저 하얀 빛덩어리로 바꿔버리는 자연의 마술에 기분이 묘해졌다.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도중에 아재비고개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휴일을 맞아 연인산에 오르는 사람들이다. 하얀 안개 속에서 사람을 보니 더욱 반갑다. 덕담으로 인사를 나누고 계속 산행을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가자 등산객이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다. 멀리서 보니 명지3봉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명지산의 인기는 역시 대단했다.


계단이 놓인 능선을 따라 오르는데 또다시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쪽에서 밀려오는 맑은 바람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주능선을 경계로 동쪽에는 맑은 하늘이 펼쳐졌고, 서쪽은 새하얀 구름이 휘몰아치고 있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신비로운 분위기다. 자연이 주는 놀라운 선물에 감탄하며 산정으로 올랐다.


▲ 연인산 오르는 길의 울창한 잣나무 숲.

명지3봉 정상은 투명한 얼음으로 변한 상고대의 천국이었다. 바위 봉우리와 함께 어우러진 상고대의 장관은 무거운 배낭의 고통도 잠시 잊게 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 곳이다. 귀목고개와 아재비고개, 명지산 정상으로 갈린 삼거리이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사람과 올라가는 등산객이 교차하며 인사를 나눈다. 명지3봉은 깊은 산속의 만남의 광장이었다.


바위 위에서 주변을 조망하며 쉬다가 능선을 타고 명지2봉으로 이동했다. 높은 산의 주능선답게 산길에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늘진 곳에는 바람에 떨어지는 상고대까지 수북이 쌓여 발목까지 등산화가 빠져들어갔다. 떨어지는 얼음덩어리가 옷깃을 파고들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 바람이 없어 큰 추위는 느끼지 못했다. 진정한 겨울이 살아 있는 능선길이었다.


▲ 명지3봉의 바위 봉우리를 하얗게 핀 상고대가 포위했다(위). 운해가 펼쳐지며 연인산 주변의 세상이 구름 속에 잠겼다.


주능선 벗어나면 평범한 겨울 풍경


명지2봉은 주능선에서 오른쪽으로 30m 가량 떨어진 곳에 솟아 있는 조그마한 암봉이다. 명지산이 정면으로 보이지만 조망은 제한적이라 큰 인기는 없다. 하지만 이 봉우리를 거쳐 서쪽으로 백둔봉(974m)으로 지능선이 연결된다. 백둔리로 원점회귀하기 위해서는 이 능선길을 이용해야 한다.


▲ 능선에 남은 눈이 바람과 태양의 흔적을 그려냈다.

명지2봉에서 백둔봉으로 연결된 산길은 주능선과 달리 이정표가 빈약하다. 게다가 능선의 연결이 또렷하지 못한 곳이 제법 있어 길을 헷갈릴 위험도 있다. 특히 2봉 정상에서 10여 분 거리의 첫 번째 팻말이 가장 혼돈스럽다. 백둔리 방향이 오른쪽으로, 명지폭포가 왼쪽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백둔리로 향한다고 오른쪽 길을 선택하면 곧바로 계곡으로 떨어지게 된다.


명지폭포 방면의 왼쪽 길을 따라 진행하면 잠시 사면을 타고 고도를 낮췄다가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 산길은 다시 15분 후에 만나는 이정표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번에는 백둔리 방향으로 표기된 오른쪽 길을 따라야 한다. 철제 이정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둔봉→’이라고 쓰인 글씨가 보인다.


명지2봉에서 백둔봉 방면으로 접어들면 고도가 낮아지며 풍광이 변한다. 고산지대 특유의 설릉은 사라지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능선길이 나타나는 것이다. 조망 역시 그다지 시원치 않아 산행의 재미가 반감된다. 명지2봉에서 숲길을 따라 1시간30분 정도 내려서면 펑퍼짐한 숲 속의 안부에 도착한다.


▲ 구름과 파란 하늘이 한판 대결을 펼치고 있는 명지산 주능선.

벽처럼 솟아 있는 백둔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다. 이 안부와 백둔봉과의 고도차는 약 100m. 오후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각이라 백둔리로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대형 배낭을 메고 하루 종일 걷느라 무릎이 욱신거렸다. 안부에서 백둔리로 내려서는 길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간간이 표지 리본이 보이지만 뚜렷한 길을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경사가 그다지 급하지 않아 탈출로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안부에서 계곡을 타고 40분 정도 내려서면 목조주택이 보이는 임도와 만난다. 낙엽송과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속에 조성된 건물은 분위기가 일품이다. 건물의 배치와 형태가 자연휴양림과 유사하지만, 알고 보니 이곳은 전원주택단지인 연인마을로 모두 사유지였다.


마을 가운데로 난 도로를 따라 버스 종점이 있는 죽터로 내려섰다. 실질적인 산행은 이곳에서 끝났다. 하지만 산행을 시작한 백둔리 삼거리의 폐교 터까지는 아직도 2km 더 걸어 내려가야 했다.


연인산에서 시작해 명지3, 2봉을 거쳐 백둔리까지 거리는 12km가 넘었다. 생각보다 강행군이었다. 어깨가 뻐근하고 다리가 풀릴 정도였다. 하지만 포근한 날씨에 운해와 안개, 상고대, 눈길까지 하루에 모두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행운이 따라준 산행이었다.



[산행 길잡이] 연인산 정상 부근에 샘터와 무인대피소 있어


연인산이 일출 막영산행지로 적합한 것은 정상부에 물이 많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등행길로 선택한 백둔리 소망능선 상단의 장수샘과 무인대피소인 연인산장 바로 옆의 연인샘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수량도 비교적 풍부해 물 걱정 없이 야영할 수 있는 곳이다. 악천후에 대비해 만들어 둔 연인산장은 숙박지뿐 아니라 일출 조망처로도 그만이다.


물론 해가 뜨는 것이 제일 잘 보이는 장소는 연인산 정상이다. 하지만 장소가 협소해 이곳에서 막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 산장 주변이나 바로 위의 능선, 아니면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의 헬기장이 야영에 알맞은 장소다.


연인산으로 접근하는 가장 가까운 길은 백둔리에서 소망능선~879m봉을 타고 오르는 코스다. 능선으로 오는 구간의 잣나무 숲 부근의 산길이 가파르긴 하지만 총 거리 4km 남짓으로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짙은 안개가 낀 연인산장 앞에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기자(위). 취재팀이 하룻밤을 머문 무인대피소 연인산장. 날씨가 나쁠 때 잘 곳으로는 이곳이 제격이다.

연인산에서 북쪽의 아재비고개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는 순한 능선길이다. 아재비고개는 명지산을 오르기 전에 백둔리로 하산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로다. 고갯마루를 지나면 명지3봉과 명지2봉을 거쳐야 백둔리로 다시 돌아내려오는 길이 나온다.


명지2봉까지는 전형적인 주능선길로 정비가 잘되어 있어 뚜렷하다. 경사가 가파른 구간에는 계단을 설치해 쉽게 오갈 수 있게 해두었다. 하지만 명지2봉에서 백둔봉 사이의 산길은 거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손을 거의 보지 않아 갈림길에 이정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명지2봉에서 동쪽으로 10분 거리의 팻말(좌표 N 37 55 54.2 E 127 25 55.5)이 가장 혼돈스러운데, 왼쪽의 명지폭포 방향으로 진행해야 능선길을 탈 수 있다. 오른쪽 백둔리 방향은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첫 번째 팻말에서 15분 거리의 이정표(N 37 55 53.7, E 127 26 05.2)에서는 명지폭포 방향과 반대로 진행해야 백둔봉 방향으로 올바로 가는 것이다.


취재팀이 하산길 기점으로 삼았던 백둔봉 직전의 안부(N 37 55 34.7, E 127 26 44.9)는 아무런 이정표가 없다. 하지만 내리막이 끝나고 긴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이라 시야만 좋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안부에서 남쪽 백둔리 연인마을까지는 약 40분이면 하산이 가능하다. 안부에서 계속해 백둔봉에 올라 산행을 이어갈 수도 있다.


교통


자가운전 서울에서 46번 국도를 이용해 구리→남양주→청평→가평으로 간다. 이곳에서 시내를 통과해 75번 국도를 이용, 북면을 경유해 백둔리로 들어간다. 백둔교 앞 연인산 표지에서 좌회전해 백둔계곡을 타고 들어가면 나오는 연인교에서 좌회전, 연인산 매점 앞에 차를 세울 수 있다.


서울→가평 동서울종합터미널(전철 2호선 강변역)에서 1일 직행 61회(06:00~21: 45), 직통 44회(06:15~22:00), 상봉터미널에서 청평~가평 경유편이 28회(06:00~21: 30) 운행. 1시간20분 소요.


열차편 청량리역에서 1일 19회(06:15~ 21:30) 운행하는 남춘천행 이용, 가평역 하차.


가평→백둔리 군내버스가 매일 4회(09:45~19:30) 운행. 약 30분 소요. 택시 가평~백둔리 3만 원. 가평~용추 종점 1만 원 안팎. 가평개인택시  031-582-3091, 581-5385.


숙식


백둔리 산행 기점의 연인산 매점(031-582-0720)에서 민박과 식사가 가능하다. 백둔리의 연인교에서 자연학교 사이에 숙식할 곳이 아주 많다. 연인벨리(031-582-6568), 별을 헤는 마을(582-9569), 샘터유원지(582-4184), 연인산 민박(582-0653), 고인돌산장(582-7871), 연인제일산장(582-8240) 등이 있다.


승안리 용추계곡에도 연인산농원(582-4888), 하늘맑은집(582-7007), 황토방민박(582-9004), 용추밸리하우스(582-5116), 용추자연휴양림민박(582-9068), 가래나무민박(581-7733) 등 숙식할 곳이 많다. 민박료는 8만~12만 원. 연인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주민이 운영하는 연인산 홈페이지(www.yeoninsan.com) 참조.


/ 글 김기환 차장
  사진 김승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