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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재~댓재 백두대간 1박2일 구간 종주산행

문성식 2011. 12. 16. 10:47
[르포 2제] 피재~댓재 백두대간 1박2일 구간 종주산행
붉은빛으로 빛나는 대간의 새해 아침
용광로 안의 끓는 쇳물이 산등성이 위로 올라섰다.

백두대간 피재~댓재 구간의 한가운데 위치한 덕항산(德項山·1,072.5m) 정상에서 맞은 아침은 남달랐다. 동해는 구름으로 꽉 차 있고, 구름 아래로 밤바다를 수놓던 어선 불빛이 희뿌옇게 새어나왔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영롱한 붉은빛이 구름바다에 색을 입히고, 쇳물이 끓는 듯 새빨간 해가 새알만 한 크기로 고개를 살짝 내밀더니 서서히 커지면서 산릉 위로 솟아올랐다.

▲ ◀따스한 오후 햇살 아래 백두대간 능선까지 타고 올라온 목장 풀밭을 걷는 겨울 나그네들. 푯대봉과 구부시령 사이 안부.

산릉이 아닌 고원 걷는 느낌

“야, 이거 바람이 쌩 불어대면 얼굴이 팍 일그러진 채로 출발할 텐데. 모두 운도 좋아. 눈도 내렸고 말이야.”

태백 산악인 김부래씨는 눈이 희끗희끗 덮여 있는 피재(三水嶺·920m)에 도착하자마자 취재팀이 복 많은 사람들이라 추켜주며 고개 이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피재는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이기도 하지만 그 바로 남서쪽 무명봉에서 낙동정맥이 갈라지기 때문에 등산인들에게는 낙동정맥 산행의 기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피재라 불리는 게 맞아요. 삼수령은 이 고개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한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은 낙동강, 그리고 동쪽은 오십천을 이루는 등 3개 물줄기를 형성한다는 데에서 이름지어졌지만, 옛날 삼척 주민들이 난을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황지(黃池)로 가기 위해 넘던 고개라 하여 ‘피재’라 불렸대요.”

피재 고갯마루 부근은 얼음이 꽝꽝 얼어 있지만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흰 눈이 반겨주고 곧 콘크리트 도로로 올라선다. 가파른 산비탈에 있다 하여 된각(敦角)마을, 흙에서 붉은빛이 돈다 하여 적각(赤角)이라 불리는 오지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한때 마을을 방문한 최고위층 인사가 태백우체국장이었다 할 만큼 태백에서도 먼 오지 마을이었어요. 지금은 달라요. 고랭지 채소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는 마을이에요.”

얼음이 살짝 얼어붙은 콘크리트길을 400m쯤 따르다 노루가 뛰다가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는 ‘노루메기’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건의령 5.7km).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낙엽송이 빼곡한 숲길은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으면서 기묘한 형태로 세월을 음미하고 있는 듯한 소나무들은 절로 탄성을 지르게 했다. 김부래씨는 이 일대의 소나무들은 금강송 중에서도 형질이 뛰어나 ‘태백송’으로 불린다고 알려준다.

▲ 1 35번 국도가 가로지르는 피재. 삼수령이라고도 불린다. 2 피재를 출발해 호젓한 낙엽송 숲길을 따른다. 3 백두대간 산행객들이 남긴 수많은 흔적들.

“지금 걷는 산을 삼척 쪽에서 보면 봉우리가 9개 이어져 있다고 하여 구봉산이라 불러요. 정상이 어느 봉인지는 불분명해요. 아무튼 늪이 8개 있는 구봉산은 후손 중 8판서가 탄생케 할 만큼 좋은 산소 자리가 숨어 있다는 산이에요. 8판서가 아니더라도 지금 산기슭 주민들이 고랭지 채소 재배로 고소득을 올리는 걸 보면 좋긴 좋은 곳인가 봐요.”

구봉산 산릉을 따르는 사이 오른쪽으로 적각마을이 예쁘게 바라보이고, 그 위쪽 가파른 산사면에 자리 잡은 된각마을도 눈에 들어온다. 능선 왼쪽 뒤편으로 ‘하늘 봉’이라는 매봉 정상 천의봉(天儀奉·1,303.1m) 일원에서는 풍차가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산릉이 아닌 고원을 걷는 느낌이다. 1,300m대 높이의 산릉이 예서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대간이 이미 해발 900m를 넘어섰고, 바로 옆으로 내려다보이는 도로 또한 800m 전후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평균고도가 높아진 탓이다.
“요즘도 북방계 식물이 간혹 발견되곤 해요. 산꾼이라면 비상시에 대비해 어느 정도 수종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피재에서 덕항산까지는 백두대간에서도 식생이 잘 보존된 구간으로 꼽힌다. 숲해설가로 활동하면서 금대봉·대덕산 자연생태경관보존지역을 모니터링해온 김부래씨는 10여 종에 이르는 참나무 종류를 알려주며, 특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불을 피울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물박달나무를 알려준다.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나무 껍질에 기름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불이 잘 붙는다며 시범까지 보여준다.

▲ 1 ▲▲▲ 노루메기 북쪽 945m봉에서 내려다본 35번 국도. 수채화 같은 분위기다. 2 태백 산악인 김부래씨가 창죽동과 상사미동 일원을 가리키고 있다. 3 대간에서 살짝 비켜나간 지점에 솟아 있는 푯대봉. 금대봉 일원의 조망이 뛰어나다.

“이젠 정말 길이 잘 나 있네요. 1990년대 초만 해도 지형도와 나침반이 없이는 길을 제대로 찾아 나아가는 게 거의 불가능했는데 말이에요.”

대간은 길만 잘 나 있는 게 아니라 지자체뿐 아니라 한국전력에서도 안내판을 곳곳에 세워 놓아 어둠 속이 아니라면 길을 잃을 일이 거의 없을 듯싶다. 예전엔 목장에서 설치한 철사를 따라 꺾어야 하는 지점에는 ‘345kV 울태송전로 25호→0.2km’라 적힌 안내판이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길잡이를 해주고 있다.

빼곡한 숲길을 따르는 사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능선은 눈이 겨우 희끗희끗 묻어 있는 정도지만 북사면으로 접어들면 발목이 빠져들 만큼 눈이 깊어지고, 그럴 때면 40대나 60대나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한다. 겨울 산은 사람의 심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가 보다.

건의령을 0.5km 남겨놓은 아늑한 안부 풀밭에서 라면을 끓이는 사이 이영석씨와 허재성 기자가 마을로 내려선다. 5분 거리인 샘에서 모자랄 듯싶은 식수를 보충하고 아예 35번 국도변 상사미동마을에서 먹을거리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댓재로 향하다 지치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는 무조건 서쪽으로 내려서야 해요. 동쪽으로 잘못 내려서면 깊은 골짜기나 긴 능선으로 접어들어 엄청 고생해요.”

떡을 푸짐하게 곁들여 끓인 라면으로 배를 든든히 불린 뒤 12시 반이 넘어 다시 산행에 나선다. 6개월 전 노총각 딱지를 뗀 허재성 기자는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늘 힘겨워하는 표정에 다리도 무겁게 느껴졌으나 오늘은 맨 앞에 서서 쭉쭉 빼는 바람에 나머지 사람들이 뒤따르느라 허겁지겁한다. 특히 발목 인대를 다쳐 망설이다 산행에 참가한 이영석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표정이 일그러진다.

▲ 1 아침 햇살을 받으며 활짝 웃고 있는 취재팀. 2 고즈넉한 분위기의 낙엽송 숲길. 3 고원평원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광동댐 이주단지를 지나고 있다. 4 환선봉 정상석. 푯말이 정상 조금 못 미처에 세워져 있다.
“내년에도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도록 해주십시오.”

“왜 그리도 힘이 넘치는 거야?”
“사랑 먹고 살다보니 힘이 넘치는가 봐요.”

허 기자의 사랑 타령에 장익진 선배가 “아침밥 먹고 다녀 좋겠다” 하자 최고참인 김부래 선배는 “칠십 돼 봐. 밥도 직접 차려 먹어야 해”라며 받아친다. 대간 길은 껌 종이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하지만 등산인들은 기록 남기기를 좋아하는지 눈에 잘 띄는 나뭇가지다 싶으면 수십 개 리본이 매달려 있곤 했다.

건의령으로 내려서기 전 35번 국도 일원이 분지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발아래 보이는 상사미동은 고려 때 곡창지대로 식량 창고까지 있을 만큼 풍요로운 곳이었다. 그러고 보면 백두대간은 단순히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향해 뻗어내리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뿌리 내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포근히 감싸주고 있었다.

건의령에는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불어대고 있었다. 태백 상사미동과 삼척 도계읍을 잇는 이 고갯길은 삼척 육백산 기슭에 유배된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을 배알하고 돌아가던 고려 충신들이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겠다며 복건(巾)과 관복(衣)을 벗었다 해서 건의령(巾衣嶺)이란 이름이 붙여진 고개다. 백인교군자당(百人敎君子堂)이라는 산신각이 세워져 있으나 오랜 세월 관리되지 않아 지붕과 벽이 무너지고 현판이 떨어지는 등 폐허로 변해 있는 것을 최근 널빤지를 이용해 새롭게 산신각을 지어놓았으나 엉성하기 그지없다.

“고려 말 삼척으로 유배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 충신들이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 다짐하며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넘었다는 얘기도 전하는 고개예요.”

김부래씨가 “마을 주민들 말대로 이름 지었지만 실제로는 ‘건의봉’이나 ‘건의산’이 맞는 이름일 것”이라는 푯대봉(1,009.2m) 직전 갈림목(푯대봉 0.1km, 구부시령 5.7km, 한의령 1.1km)에서 산길은 오른쪽으로 90도 꺾이면서 뚝 떨어진다.

푯대봉 정상에서 임원과 호산 앞바다를 바라본 뒤 푯대봉 직전 갈림목으로 되돌아와 가파른 내리막길로 내려서자 능선이 한층 좁아지고 한결 오지 깊숙이 들어서는 기분이다. 능선길이 또다시 왼쪽으로 급격히 꺾어진 다음 널찍한 안부에 올라서자 찬 바람 대신 훈풍이 얼굴을 어루만져준다. 대간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방향을 틀어 허리길을 따르노라면 깊은 눈이 발목까지 빠져들며 한겨울 깊숙이 들어선 듯하고, 그러다 너른 풀밭 위에 올라앉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어 따스한 봄날 같다. 대간은 이렇듯 변화무쌍해 누구든 걷고 또 걷는 것일 게다.

▲ 바람을 피해 구부시령 아래서 맞이한 겨울 막영.

목장을 넓히기 위해 능선까지 풀밭이 조성된 쉼터를 지나면서 산길이 한결 가팔라진다. 능선마루에 올라서자 좌로 금대봉(1,418.1m) 산릉이 하늘을 떠받든 지붕처럼 웅장하게 치솟는 반면 오후 햇살은 한풀 꺾이며 기온도 덩달아 내려간다. 997.4m봉을 넘어서자 한결 깊어진 눈과 낙엽이 뒤섞여 걸음걸음을 힘겹게 하고 산은 그늘이 스며들면서 몸도 차가워진다.

1,055m봉을 넘어서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널찍한 안부. 갈등이 인다. 곧 어둠이 밀려올 것이고, 절뚝거리느라 뒤처져 오는 이영석씨와 함께 덕항산(德項山·1,072.5m) 정상까지 가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걸릴 게 분명하다. 정상에 야영할 만한 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다.

좁은 능선길을 따라 300m쯤 더 나아가자 구부시령(九夫侍嶺) 고갯마루. 일몰시각을 5분여 남겨놓은 오후 5시. 어둠이 급속도로 몰려오고, 찬 바람이 얼굴을 후려친다. 이영석씨를 비롯한 김부래·장익진 선배들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짐을 다 정리한 다음에야 나머지 일행이 도착하고, 내일 모래면 일흔의 적잖은 나이임에도 청년과도 같은 체력과 열정을 과시하며 길을 안내해준 김부래씨는 “나이 먹은 사람은 찬 데서 자면 몸 상한다”며 태백 후배 산꾼이 차를 몰고 올라오기로 한 예수원을 향해 어둠이 몰려드는 골짜기로 내려선다.

구부시령은 옛날 고갯마루 아래 살던 여인이 남편을 얻기만 하면 죽고 또 죽어 아홉 명이나 되는 남편과 살았다는 얘기가 전하는 능선마루다. 하지만 고갯마루의 전설과 달리 산 밖으로 도계읍 일원 민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너무도 따스하게 느껴지고 동해의 고기잡이배에서 반짝이는 불빛은 희망이 넘친다.

▲ (위) 아홉 지아비를 모신 아녀자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구부시령. (아래) 겨울 산의 낭만에 젖어 눈길을 걷는 장익진씨.
새벽 4시. 라면을 끓여 찬밥을 말아 먹고 일출을 맞으러 덕항산 정상으로 향한다. 어제에 비할 수 없이 빠른 속도다. 2리터들이 생수 두세 통에 먹거리를 잔뜩 넣고 걸을 때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지만 하룻밤 새 배낭이 홀쭉해지자 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된비알을 올려친 다음 새목처럼 부드럽고 바람 한 점 없는 새목이 안부(덕항산 0.6km, 구부시령 0.5km)를 지나 덕항산 정상에 올라서자 동쪽이 트여 있고, 한쪽에 산불감시초소 탑이 세워져 있다. 피재 출발 이후 나무 한 그루 없이 동쪽을 바라보는 게 처음이다 싶을 만큼 조망이 좋은 곳이다.

삼척시내든 도계 일원이든 반짝이는 불빛은 산골마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처럼 정겹다. 밤새 바다를 밝힌 고기잡이배는 구름바다 아래서 바람 앞의 촛불처럼 불안한 불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산릉은 꼿꼿하게 몸을 곧추세운 채 새날을 맞고 있었다. 구름바다에 무지갯빛 서광이 드리워지고 곧 이어 산릉 뒤에서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새빨간 불덩이가 새알만 한 크기로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곧 거대한 태양으로 변해갔고 산릉을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 온 세상이 환한 새날을 맞았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에도 밥 세 끼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도록 해주십시오.”

장익진씨는 “이렇게 맑게 떠오르는 해는 60년 만에 처음”이라며  “함백산 정상에서 부적 파는 사람도 봤다” 하고, 이영석씨는 공학자답게 “저기 보이는 태양의 표면 온도는 6000℃이고, 지구에 오는 건 복사에너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 1 구부시령에 설치한 텐트 안에서 저녁식사 중인 취재팀. 2 덕항산 정상에서 바라본 삼척 앞바다. 3 정라진 삼척항.

일출 맞이에 많은 것 배우고 깨우친 우보 산행


아침 햇살이 깃드는 덕항산 동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그 절벽 속으로 환선굴과 대금굴이 뚫려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의 또 다른 모습이다. 덕항산과 지각산(환선봉·1,081m)을 지나 자암재(장암재)로 내려서는 사이 귀네미골 고랭지 채소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1990년 산악회 선후배들의 지원을 받으며 40여일 만에 백두대간을 종주해낸 바 있는 최준회씨는 “예전에 종주할 때 저 마을에 들러 밥 한 끼 얻어먹고 낮잠도 잤다”며 옛 추억을 더듬자 이영석씨는 오늘도 시도해보자고 한다.

대간을 벗어나 내려선 지네미골은 조선조 말엽부터 이상향을 찾아 이북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살다가 떠나가곤 했던 곳으로 23년 전 광동댐 수몰 지역 주민들이 이주해 새롭게 삶의 터전을 일군 곳이다. 당시 37가구가 현재 27가구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배추와 무, 산나물 같은 고랭지 채소 농사로 소득이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리들 오세요. 한 상 차려주겠대요.”

마을 진입로 한쪽 양지바른 곳에서 라면을 끓이려고 물을 버너에 올려놓고 있는 사이 고랭지 배추로 담근 김치나 얻어볼까 하는 생각에 민가를 두리번대던 이영석씨가 싱글벙글하며 일행을 불러댄다.

아들딸 도시로 보내고 지네미골에서 살고 있는 60 전후의 부부는 난생 처음 봤는데도 흔쾌히 집안으로 불러들여 청국장과 가자미식해에 김치가 놓인 정 넘치는 점심상을 차려주었다. 우리는 게눈 감추듯 밥상의 음식을 후딱 먹어치웠다.
 
“배추가 무르익을 때 한 번 오라”는 집주인 김용택씨의 인사를 받은 뒤 콘크리트길을 따라 산릉으로 오르는 사이 넓디넓은 고랭지 채소밭이 눈길을 붙잡는다. 대간은 멋스러움만 지닌 게 아니라 사람에게 먹거리까지 주고 있다. 대간에서 살짝 비껴나간 능선이기는 하지만 조만간 풍력발전소가 들어선다 하니 곧 전기까지 공급하는 생명의 젖줄인 셈이다.

임도로 들어서자 이제 두타산(1,355.2m)이 기와지붕처럼 한눈에 들어오고, 큰재(황장산 4.4km, 댓재 5km)에서 임도와 헤어져 잡목숲을 가로지르노라니 준경묘 갈림목에 다다라 동쪽 삼척 미로면과 신기면 일원이 훤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동해도 거침없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신기면 일원의 산봉과 산릉들이 마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하다. 동해의 노도를 옮겨놓은 듯 넓은 산덩어리가 통째로 움직이고 있다.

산이 크고 높다는 것은 그만큼 산자락을 사방팔방 멀리 뻗고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대간이 그 전형이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피재~댓재 능선은 지형도에는 남북으로만 곧게 뻗어 나아가는 듯하지만 서쪽으로는 태백과 삼척의 고원을 형성하고, 동으로는 동해와 맞닿을 때까지 수많은 가닥을 펼치며 그 안에 많은 부락과 삶을 품고 있는 것이다.

“어~, 눈이 내리네. 정말 복 받았나봐. 멋진 일출 모습도 보고 하산 길에 눈까지 맞으니. 새해에는 좋은 일 많겠지?”

큰재를 지나면서 하늘이 잔뜩 찌푸리더니 황장산(975m)에 올라설 즈음 눈발이 날린다. 그런데도 두타산과 청옥산은 당당하게 앞장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어제 하루 꼬박 걷고 오늘도 새벽부터 움직여 걷고 걸어 산죽밭 사잇길을 따라 댓재로 내려서는데 누군가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오늘 아침 6시 반쯤 피재를 출발한 광양제철 백두산악회 회원 김문섭씨였다. 우리가 우보(牛步) 산행의 전형이라면 산노루처럼 가볍게 껑충껑충 걷는 김문섭씨는 준족의 전형이었다. 그래도 부럽지 않았다. 우리는 우보 산행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우친 데다 일출까지 맛보았기 때문이다. 

[ 명소 ]

신비의 한강 발원지 검룡소
하루 5000톤 물 솟는 심연


▲ 한강 발원지 검룡소.
태백시 창죽동에 위치한 검룡소(劍龍沼)는 둘레 20m 안팎의 작은 연못이지만 514km 길이의 한강의 발원지이자 전설의 명소다.

서해의 이무기가 한강과 동강에 이어 골지천을 거슬러 올라와 골짜기 깊숙이 숨어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바람에 형성되었다는 좁은 바윗골 위쪽에 위치한 검룡소는 우선 하루 5000톤의 물이 샘솟는다는 게 신비롭다. 검룡소 아래 바윗골은 봄·여름·가을에는 천년의 이끼가 덮여 아름답고, 한겨울에는 이끼 대신 하얀 눈이 덮여 또 아름답고 신비스런 곳이다. 입장료 없음.

피재를 출발해 삼척 하장 방면으로 3km 가면 검룡소 입구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 포장도로를 따라 8km 들어서면 검룡소 주차장과 관리소가 나오고, 이어 계곡 길을 접어들다가 개울을 건너 호젓한 전나무숲길을 따르노라면 정자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다. 계곡이 끝나는 듯한 곳에서 좁은 바윗골을 끼고 오르면 자그마한 연못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한강 발원지 검룡소다.

[ 명소 ]

‘석회석동굴나라’ 대이리 군립공원
강원 전통 가옥 너와집과 굴피집도 보존

덕항산(1,072.5m)과 지각산(환선봉·1,081m) 동쪽에 위치한 대이리군립공원(大耳里郡立公園)은 환선굴·대금굴과 같은 5억여 년 전에 생성된 석회석동굴로 이름난 관광지다.

▲ (좌) 모노레일을 이용하는 대금굴 탐승. (우) 강원도 전통 가옥인 굴피집 지붕. 나무껍질을 기와처럼 얹는다.

대이동굴이라고도 불리는 환선굴(幻仙窟·천연기념물 제178호)은 관음굴·제암풍혈 등과 함께 1996년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된 한국 최대의 석회동굴로, 10여 개의 크고 작은 동굴호수와 6개의 폭포가 있고, 특히 지름 40m의 거대한 중앙광장에는 고운 모래가 가득 깔려 있다. 바닥 대부분이 종유석이고, 곳곳에 기묘한 종유석군과 용식구·용식공이 발달해 있으며, 종유관·동굴진주·동굴산호 등 아름다운 동굴 생성물과 세차게 흘러내리는 동굴수(洞窟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환선장님좀딱정벌레 등 47종의 동굴동물이 발견되어 동굴동물의 생태를 거의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는 동굴로도 이름이 높다.

2003년 2월 25일 발견 후 모노레일 등의 시설물을 설치한 뒤인 2007년 6월 5일부터 개방한 대금굴(大金屈)은 열대 심해 속에 퇴적된 산호초 등의 지형이 지각변동으로 인해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고, 오랜 세월 침식으로 형성된 동굴이다.

인근의 환선굴이나 관음굴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금굴은 종유석 등 동굴 생성물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보존 또한 잘되어 있는 동굴자원으로 특히 지하에는 근원지를 알 수 없는 많은 양의 동굴수가 흐르고 있고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동굴호수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국내 최초 동굴 모노레일(610m)을 타고 동굴 내부 140m 지점까지 들어가는 이색적인 체험을 맛볼 수 있다.

굴 전체 길이 1,610m(주굴 730m, 지굴 880m) 중 793m(관람 동선 1,356m)만 개방되어 있는 대금굴은 홈페이지(samcheok.mainticket.co.kr)를 통해 인터넷 예매해야 관람이 가능하며, 집중호우시에는 관람이 불가하다. 관람소요시간 1시간30분. 모노레일 운행시각 동절기(11~2월) 09:00~14:00, 하절기 08:30~17:00이며, 매시 30분과 정각에 출발한다. 요금 어린이 6,000원, 청소년·군인 8,500원, 어른 1만2,000원. 오후 2시 이전 대금굴 관람자는 환선굴을 무료로 탐승할 수 있으며, 오후 2시 이후 입장자는 이튿날 오전까지 무료관람할 수 있다. 대이동굴관리소 033-541-7600.

삼척시는 지난해 5월 매표소를 조금 벗어난 공원 지점부터 환선굴 입구까지 402m 구간에 40인승 모노레일카 2대가 다닐 수 있도록 복선 모노레일을 설치하고 승하차장을 설치하는 공사에 착수, 현재 레일 설치 작업이 진행 중이다. 환선굴 모노레일카는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 예상 이용료는 초등학생 이하 왕복 3,000원, 편도 2,000원이며 만 13세 이상은 왕복 5,000원, 편도 3,000원이다.
 
삼척시는 신기면 대이리 환선굴을 중심으로 6.59㎢ 면적을 1996년 10월 25일 대이리군립공원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대이리군립공원은 석회석동굴뿐 아니라 산세와 계곡 풍광이 뛰어나고, 대이리 굴피집·너와집·통방아, 신리 너와마을 등 민속자료도 풍부해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 명소 ]

삼척 미로면 준경묘·영경묘
문화재 복원에 사용된 황장목이 숲 이뤄


황장산 동쪽,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위치한 준경묘(濬慶墓)와 하사전리에 있는 영경묘(永慶墓)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목조(穆祖)의 부모 묘로 인근의 소나무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준경묘의 황장목은 재질이 뛰어나 1961년 숭례문 해체 복원 때 가장 큰 소나무였던 ‘장수 솔’이 대들보로 사용되었고, 2008년 2월 방화로 완전 소실된 국보 제1호 숭례문의 복원을 위해 2008년 12월 10일 소나무 20그루가 준경묘에서 벌채되었다.

준경묘와 영경묘는 전주 이씨 실묘로는 남한에서 최고 시조묘이며 해마다 4월 20일 전주 이씨 문중 주관으로 제례를 지낸다. 1981년 8월 5일 강원도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었고, 1984년 8월에 삼척군(지금의 삼척시)에서 제각, 비각, 재실, 홍살문 등을 일제히 보수하였다.

삼척시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태백으로 향하는 길 초입의 하상전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들어서노라면 능재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 다리를 건너선 다음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면 소나무 숲 한가운데 위치한 영경묘에 이르고, 영경묘에서 하상전교 방향으로 내려서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오른쪽 아스팔트길을 따라 덩골재를 넘어선 다음 좌회전하면 도로변의 준경묘·영경묘 재실이 보이고, 마을길을 빠져나가기 직전 준경묘역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약 40분 거리.

[ 산행 길잡이 ]

새벽 일찍 댓재 출발하면 영경묘 갈림목에서 일출 맞이 가능

피재~댓재 구간은 어찌 보면 대간에서도 소외된 구간이다. 북으로 백두대간의 기운을 듬뿍 받은 두타산(1355.2m)과 청옥산(1,403.7m)이 솟구쳐 있고, 남으로 야생화 천국 금대봉(1,418.1m)이나 함백산(1,572.9m) 혹은 태백산(1,567m)처럼 웅장하면서도 기운찬 산봉들이 백두대간을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쪽으로나 서쪽으로 뻗은 대간 줄기에 비해 산세는 부족하지만 자연미는 한층 돋보이는 게 피재~댓재 구간이다. 게다가 숲 우거진 산릉 길은 구름 타고 하늘을 나는 듯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동쪽으로 펼쳐지는 동해 푸른 바다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때문에 경인년 새해 맞이 막영 일출 산행지로 적격인 것이다. 물론 하루 10시간 뽑는 산행에 자신 있는 이들이라면 새벽녘 산행을 시작해 산릉에서 일출을 맞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댓재에서 일출을 보고 출발하거나 혹은 산행 중 일출을 보도록 한다. 일출 맞이 장소로는 준경묘 갈림목(댓재에서 3.1km), 큰재(5km), 장암재 직전 고랭지 채소밭 일원 등지가 적당하다.

▲ 일출에 밝아오는 덕항산 정상.

1박2일 막영산행에 나설 경우에는 동쪽이 터져 있는 덕항산 정상 부근이 적당하다.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정상 가까이 북쪽으로 텐트 두 동을 칠 만한 공터가 있고, 남쪽 약 10분 거리인 새목이나 25분 거리인 구부시령은 텐트를 수십 동 칠 만큼 터가 넓다.
산행 시간은 경험과 체력이나 짐의 무게, 그리고 적설량에 따라 차이가 많다. 취재팀의 경우 댓재를 출발해 야영지인 구부시령까지 8시간 이상 걸렸지만 사진 촬영 때문에 걸린 시간이 많으므로 6시간 정도 잡으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부시령에서 덕항산 정상까지는 30분, 덕항산에서 댓재까지는 6시간 정도 걸린다.

단, 식수를 구할 만한 곳이 많지 않다. 건의령 남동쪽 안부 북쪽 약 5분 거리에 샘이 있고, 광동댐 이주단지인 귀네미골 민가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으나 능선에서 10분 정도 내려서야 한다. 따라서 아예 산행기점을 출발하기 전 식수를 준비하는 게 오히려 편할 수 있다. 물이 가능한 한 적게 들어가는 메뉴로 식단을 짜는 것도 요령이다.

● 교통

▲ 댓재휴게소.
대중교통편으로 피재에 가려면 태백을, 댓재로 가려면 삼척을 경유해야 한다.

서울→태백
동서울종합터미널(www.ti21.co.kr·446-8000)에서 06:00부터 23:00(심야)까지 20~60분 간격으로 영암운수 무정차·직행버스가 운행한다. 3시간10분, 2만1,300원(심야 2만3,500원). 청량리역에서 07:00, 09:00, 12:00, 14:00, 17:00, 21:50(금·토·일 운행), 22:00 출발하는 태백·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이용. 4시간30분 안팎. 1만5,600원.

삼척→태백 종합버스정류장(033-572-2085)에서 07:10~22:50 완행·직행버스가 1일 23회 운행. 1시간10분~1시간30분, 5,600원.

부산→태백 동부시외버스터미널(051-508-9966)에서 07:25~18:39 1일 6회 운행. 5시간, 2만9,600원.

대전→태백 동부시외버스터미널(042-624-4451)에서 07:10~16:20 1일 5회 운행. 직행 2만3,700원(3시간40분), 영주 경유 3만300원(6시간).

청주→태백 여객터미널(043-234-6543)에서 10:50, 17:10 출발. 3시간10분, 2만3,100원.

광주→태백 광천동 종합터미널(062-360-8114)에서 14:00 출발. 5시간50분, 3만4,900원.

삼척→댓재 시외버스터미널 07:30, 13:30, 16:30 1일 3회 출발하는 하장행 시외버스 이용. 요금 4,000원.

댓재→삼척 휴게소 앞에서 09:00, 15:00, 18:00 경유하는 하장 발 삼척행 시외버스 이용.

태백시에서 피재까지는 택시 이용. 태백시 산사랑회 개인택시 011-798-5064, 011-373-2463. 태백시내~피재 8,000원, 피재(시내)~댓재 3만 원, 태백시내~건의령 1만5,000원, 태백시내~예수원 2만 원, 태백시내~지네미골 2만5,000원. 화방재~태백시내 1만5,000원, 화방재~피재 2만 원, 화방재~댓재 5만 원, 화방재~도래기재는 5만 원, 싸리재~시내 1만5,000원, 싸리재~피재 2만 원, 싸리재~화방재 2만5,000원.

● 숙박

태백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태백민박촌(minbak.taebaek.go.kr·033-553-7440)은 개인형·가족형·단체형 등 15동 73실 규모의 콘도형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예약을 받으며, 이용료는 개인형(29.7㎡·2인 기준/비수기·성수기) 3만5,000원/4만5,000원, 가족형(49.5㎡·6인 기준) 5만5,000원·7만5,000원, 가족형(59.4㎡·6명 기준) 6만 원·8만 원, 단체형(105.6㎡·13명 기준) 9만 원·13만 원, 인원 추가시 1인당 5,000원이다. 가스레인지, 싱크대, 냉장고는 갖춰져 있으나 조리기구는 지참해야 한다.

피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검룡소 들머리에 민박집이 있다. 전통테마마을 검룡소 민박 552-7451, ‘식사 가능’ 민박 010-9705-4412.

댓재 고갯마루에 위치한 댓재휴게소(033-554-1123)에서는 민박(2~3인실 3만 원)도 받고 백반·김치찌개·된장찌개(각 5,000원) 등의 음식도 내놓으며, 피재까지 교통편(12인승 승합차 편도 3만 원)도 제공해준다.

● 맛집

▲ 백김치가 곁들여 나오는 부일막국수.
태백한우는 값에 비해 맛 좋기로 이름나 있다. 태백관광대학 정문 부근의 태백한우골(554-4599·200g)은 토박이 산꾼들이 권하는 한우 구이 전문음식점이다. 너와집(553-4669)은 너와지붕의 한옥에서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너와정식 1만7000~2만5,000원, 버섯전골·두부전골 1만5,000원.

태백시내 황지재래시장 순댓국집 거리는 반주를 곁들여 속을 단단히 불릴 수 있는 식당들이 여럿 모여 있다. 영화집 033-552-3147/2412. 순대국밥 5,000원, 쇠머리국밥 6,000원, 모듬순대 8,000~1만3,000원, 돼지머리 편육 8,000원, 쇠머리 편육 2만 원, 쇠머리 수육 2만~3만 원, 쇠머리 전골 2만~3만 원.

삼척시에서 태백 환선굴 방향으로 향하는 도로변에 위치한 부일막국수(강원도 삼척시 등봉동 1-1, 033-572-1277)는 사철 식도락가들이 줄을 잇는 막국수집이다. 백김치 맛도 일품이다. 물·비빔막국수 소 6,000원, 대 7,000원, 수육 소 2만원, 대 2만5,000원. 첫째 셋째 화요일은 정기휴일.



/ 글 한필석 차장 pshan@chosun.com
  사진 허재성 기자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