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49)씨는 여름이 되고 날이 조금 덥다 싶으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붉게 달아올라 사람들을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심할 때는 불안한 마음이 생겨 가슴도 두근거리고 조그만 일에도 쉽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대학생인 아들이 방학했다고 늦잠 자는 꼴이 보기 싫어서 또 한바탕했더니 남편까지 밥 먹던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그냥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분명 이게 아닌데..’ 스스로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실망스러워서 혼자 씨근거리다가 결국 이씨는 본원을 찾아왔다. 이 씨의 병명은 갱년기 증후군.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거쳐야 할 증상이다. 여성의 갱년기 증상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며 머리가 어지럽고 두통이 생긴다. 둘째, 안면홍조 증상과 함께 쉽게 짜증이 나고 혹은 우울해진다. 셋째, 건망증도 자주 나타나고 후기로 가면 골다공증이나 순환기장애가 오기 쉽다. 이씨의 얼굴이 화끈거리고 붉게 달아오르는 증상은 여성호르몬을 만드는 과정에서 체온조절중추가 함께 자극받아 체온이 순간적으로 오르면서 생기는 전형적인 갱년기 증상이다.
폐경과 함께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들
나무도 나이가 들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껍질은 마르면서 거칠어진다. 또한 잎도 윤기가 없어지고 시들어 버리는데, 사람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갱년기란 여성이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넘어가는 경계를 이르는 것으로 여성이 보통 40∼50대 사이에 난소기능이 생리적으로 감소되는 기간을 말한다. 한의학에서는 49세가 되면 태충맥, 임맥이라 하는 난소의 기능이 쇠퇴하여 여성생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월경이 정지되고 심신 양면에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남성은 기(氣)를, 여성을 피(血)을 그 근원으로 살아가는데 월경을 통해 한 달에 한 번씩 소모해 나가다가 이제 그 피의 창고가 고갈되어 더 이상 내보낼 피가 없어진 것이 바로 폐경이다. 몸 속의 피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한의학에서는 혈허, 음허라고 하는데 이때는 식은땀이 나고, 허열이 얼굴에 떠올라 화끈거리며, 눈과 입이 마르며, 가슴이 자주 두근거리며, 질이 건조해지는 등의 증세가 생기는 것이다.
갱년기의 현명한 관리는 건강한 노년을 위한 필수조건!
여성은 일생의 약 3분의 1 이상을 폐경 이후에 영위해야 하므로 갱년기를 현명하게 보내야 한다. 적절한 관리를 하지 아니하면 여러 가지 만성 합병증(피로, 무기력, 어지러움, 수면장애, 우울증, 의기소침, 두통, 허혈성 심장질환, 고혈압, 여성암 뇌졸중, 당뇨)이 생길 수 있다. 갱년기의 기본적인 치료 방향은 부족해진 혈액과 진액을 보하면서, 머리로 떠 오른 허열과 화를 식혀야 한다. 특히, 갱년기 이후 골다공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을 병행하면 더 좋으며, 빠르게 걷기, 수영, 에어로빅 등의 유산소운동은 심장과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 여기에 요가, 스트레칭 등도 기혈의 순환을 촉진시키고 유연성을 길러주는데 좋은 운동이다. 저녁에 명상과 반신욕을 하는 것도 마음을 이완시키고 순환상태를 개선시켜준다. 한방에서는 한약요법, 심부온열치료요법, 불부항요법, 침치료요법, 간섭파치료요법, 간해독요법 등을 이용해 갱년기 증상을 다스리게 된다.
갱년기는 여성들이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자신의 몸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해준다. 갱년기를 잘 보내는 지혜가 노년기의 삶의 질까지 좌우하게 되므로 적절한 치료와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갱년기가 왔다고 당장 큰일이 난 것처럼 우울해 할 필요는 없다. 우선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서 벗어나 새롭게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는 게 좋다. 갱년기를 다른 말로 ‘제2의 사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긍정적인 가능성도 많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