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그리스도인의 삶.
▶ 제 1 부 인간의 소명: 성령 안의 삶.
▶ 제 1 장 인간의 존엄성.
▶ 제2절 참행복에 부름 받은 우리의 소명.
▶ 제3절 인간의 자유.
제2절 참행복에 부름 받은 우리의 소명.
I. 참행복.
1716 ‘참행복’은 예수님께서 하신 설교의 핵심이다. 행복 선언은 바로 아브라함 이후 선택된 민족에게 주신 약속을 반복하신 것이다. 이 약속들은 더 이상 지상에서 누리는 기쁨에 그치지 않고 하늘 나라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완성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3-12).
1717 참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묘사하고 그분의 사랑을 표현한다. 참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소명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태도를 밝혀 준다. 참행복은 고난 가운데에서 희망을 북돋아 주는 역설적인 약속들이다. 참행복은 희미하긴 하지만 이미 제자들이 받은 축복과 약속들을 선포하며, 그것은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의 삶에서 실현되기 시작했다.
II. 행복에 대한 인간의 갈망.
1718 참행복은 행복에 대한 인간 본성의 갈망에 부응한다. 이 갈망의 근원은 하느님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당신께 이끌기 위해 그 마음 안에 이 갈망을 심어 주셨으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갈망을 채워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표현되기 전이라고 해도,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16)
주님, 어떻게 당신을 찾아야 합니까- 당신을 찾는 것이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오니, 제 영혼이 살도록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제 육체는 제 영혼으로 말미암아 살고 제 영혼은 당신으로 말미암아 살기 때문입니다.17)
하느님께서만 만족을 주실 수 있다.18)
1719 참행복은 인간 존재의 목적과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표를 드러내 보인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행복으로 부르신다. 이 소명에 각자가 개별적으로 부름 받고 있지만, ‘약속’을 받고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 전체도 같은 부름을 받고 있다.
III. 그리스도인의 행복.
1720 신약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행복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곧, 하느님 나라의 도래,19)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20) 하고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을 보는 것, 주님의 기쁨에 참여함,21)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감22) 등으로 표현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안식하며 볼 것이고, 보고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찬미할 것입니다. 마침내 끝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끝이 없을 나라에 다다르는 것 말고 무슨 다른 목적을 가지겠습니까-23)
1721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상에 두신 것은 당신을 알고 당신을 섬기고 사랑하여 천국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참행복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고”(2베드 1,4)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24) 참행복과 더불어 인간은 그리스도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며25) 삼위께서 누리시는 생명의 기쁨에 들어가게 된다.
1722 이러한 행복은 인간의 지성과 능력을 넘어선다. 이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의 기쁨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은총과 같이, 참행복은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불린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물론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하느님의 형언할 수 없는 영광 때문에 “하느님을 뵙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성부는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자하심과 전능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뵙는 특권을 주기까지 하신다.……“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도 하느님께는 가능하기 때문이다.”26)
1723 참행복에 대한 약속으로 우리는 결정적인 도덕적 선택 앞에 서게 된다. 참행복은 우리 마음에 있는 악한 본능을 정화하고, 무엇보다 우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권유한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부나 안락에 있지 않고, 인간적인 영예나 권력에도 있지 않으며, 제아무리 유용해도 과학이나 기술, 예술 등 인간 업적에도 있지 않으며, 어떤 피조물 안에도 있지 않고 오로지 모든 선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만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에는 부가 가장 큰 우상입니다. 군중이, 인간 대중 전체가 부를 본능적으로 섬깁니다. 사람들은 재산으로 행복을 재고 또 재산으로 명예를 저울질합니다.……이 모든 것은 재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오늘날 하나의 우상이며 명성은 또 다른 우상입니다.……명성, 곧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최상의 선인 양, 그리고 참된 숭배의 대상인 양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여론에 의한 명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27)
1724 십계명과 산상 설교와 사도들의 가르침은 하늘 나라로 인도하는 길을 말해 준다. 우리는 성령의 은총으로 지탱되는 일상의 행위들로써 한 걸음 한 걸음 그 길로 걸어 들어간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요롭게 되어 교회 안에서 서서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된다.28)
간추림.
1725 참행복은 아브라함 이후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들을 한데 모으며 완성하고, 하늘 나라를 향하게 한다. 참행복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넣어 주신 행복에 대한 갈망에 부응한다.
1726 참행복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최종 목적을 가르쳐 준다. 그 목적은 하늘 나라, 하느님을 뵈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자녀가 됨,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이다.
1727 영원한 생명의 행복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은총과 마찬가지로 참행복도 초자연적인 것이다.
1728 참행복은 우리를 지상의 행복에 대한 결정적인 선택 앞에 서게 한다. 참행복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여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친다.
1729 천상 행복은 이 세상 재화를 하느님의 법에 맞게 쓰는 식별의 기준을 결정한다.
제3절 인간의 자유.
1730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창조하시어 인간에게 자발성과 자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위를 다스릴 수 있는 인격의 존엄성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고자’(집회 15,14) 하셨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 의지로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 그분을 따르며 자유로이 충만하고 복된 완전성에 이르도록 바라신 것이다.”29)
인간은 이성을 지녔으며, 이 때문에 하느님과 비슷합니다. 그는 자유롭고 자신의 행위를 자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30)
I. 자유와 책임.
1731 자유는 이성과 의지에 바탕을 둔,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며, 이것을 하거나 또는 저것을 하는 능력이고, 이처럼 스스로 숙고해서 행동하는 능력이다. 각 사람은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이루어 나간다. 인간은 진리와 선 안에서 자유를 통하여 성장하고 성숙한다. 자유는 우리의 행복이신 하느님을 향할 때 완전하게 된다.
1732 자유는 그 최종 선이신 하느님께 결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선과 악 사이의 선택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완덕을 향해 성장할 수도 있고 퇴보하여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자유는 인간 행위의 고유한 특징이다. 자유는 칭찬이나 비난, 공로나 허물의 근거가 된다.
1733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진다. 선과 정의를 위해 봉사할 때에만 참자유를 얻는다. 불순명과 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 남용이며 “죄의 종”이31) 되게 한다.
1734 자유는 인간이 행위의 자발성에 따라 자기 행동에 대하여 책임지도록 한다. 덕의 진보와 선에 대한 인식과 금욕적 삶의 진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지의 통제력을 성장시킨다.
1735 어떤 행동에 대한 인책성(引責性)과 책임은 무지, 부주의, 폭력, 공포, 습관, 무절제한 감정과 그 외에 정신적 사회적인 요인들 때문에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
1736 직접 원해서 행한 모든 행위는 그 행위자에게 책임이 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주님께서는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창세 3,13) 하고 물으시며, 카인에게도 그렇게 물으신다.32) 그리고 예언자 나탄도, 우리야의 아내와 간통하고 우리야를 죽인 다윗 임금에게 그렇게 묻는다.33)
사람들이 알았거나 했어야 할 것을 소홀히 한 결과로 저질러진 행위는 간접적인 고의에 따른 행위일 수 있다. 교통 법규에 대한 무지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가 그러한 예이다.
1737 어떠한 결과가 행위자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났을 경우에는 용인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병든 자식을 간호하다가 그 어머니가 죽을 지경이 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가 죽게 되는 경우처럼, 나쁜 결과가 행위의 목적으로든 수단으로든 의도된 것이 아니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면 술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던 사람이 저지르게 되는 살인처럼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행위자가 그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경우라야 한다.
1738 자유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행사된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타고난 권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러한 권리를 존중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도덕적,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34) 국가는 공동선과 공공질서의 범위 안에서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35)
II. 구원 경륜에서 본 인간의 자유.
1739 자유와 죄. 인간의 자유는 유한하며, 잘못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은 잘못을 저질렀다. 자유로이 죄를 지은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을 거부하여 스스로 자기를 배신하고 죄의 노예가 되었다. 이 최초의 소외는 다른 많은 소외를 초래하였다. 시초부터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오용한 결과로 인간의 마음에 일어난 불행과 억압을 증언하고 있다.
1740 자유에 대한 위협. 자유의 행사는 무엇이든 말하고 행할 권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 주체인 인간은 지상의 재화를 즐길 때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목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36)는 주장은 잘못이다. 한편 자유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데에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분야의 조건들이 너무도 자주 무시되고 침해되고 있다. 이러한 맹목적이고 불의한 상황들은 도덕적 삶을 짓누르며, 사랑을 어기고 죄를 짓도록 강자와 약자를 모두 유혹한다. 인간은 윤리적 규범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손상시키고, 자신을 속박하며, 이웃에 대한 우애를 파괴하고, 하느님의 진리를 거역하게 된다.
1741 자유와 구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십자가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성취하셨다. 그분은 인류를 노예로 만든 죄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와37) 일치한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고,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2코린 3,17). 이미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38) 누린다.
1742 자유와 은총. 우리의 자유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진리와 선을 분별하는 능력과 맞을 때, 그리스도의 은총은 우리의 자유와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으로는 특히 기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은총의 작용에 온순히 따르면 따를수록, 시련 가운데 또 외적 억압과 속박 앞에서 우리의 내적 자유와 확신은 더욱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은총의 작용으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자유를 가르쳐 주시어 교회와 세상 안에서 당신 일의 자유로운 협력자가 되게 하신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에 해로운 모든 것을 멀리 물리쳐 주시어 저희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하시고 자유로이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39)
간추림.
1743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시기를”(집회 15,14) 원하셨고, 창조주를 자유로이 따름으로써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신다.40)
1744 자유는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능력이며, 따라서 스스로 의도하여 행동하는 능력이다. 자유는 최고선이신 하느님을 향할 때 그 행위의 완전함에 이른다.
1745 자유는 인간 행위의 고유한 특징이다. 자유는 인간에게 자신이 행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 숙고한 후의 행위는 그 자신의 것이다.
1746 무지, 폭력, 공포나 그 밖의 정신적 또는 사회적 요인들은 어떤 행위에 대한 인책성이나 책임을 줄이거나 없앨 수도 있다.
1747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도덕적,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자유의 행사에는 무엇이든지 행하고 말할 거짓 권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1748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
▶ 제 1 부 인간의 소명: 성령 안의 삶.
▶ 제 1 장 인간의 존엄성.
▶ 제2절 참행복에 부름 받은 우리의 소명.
▶ 제3절 인간의 자유.
제2절 참행복에 부름 받은 우리의 소명.
I. 참행복.
1716 ‘참행복’은 예수님께서 하신 설교의 핵심이다. 행복 선언은 바로 아브라함 이후 선택된 민족에게 주신 약속을 반복하신 것이다. 이 약속들은 더 이상 지상에서 누리는 기쁨에 그치지 않고 하늘 나라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완성된다.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3-12).
1717 참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묘사하고 그분의 사랑을 표현한다. 참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소명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태도를 밝혀 준다. 참행복은 고난 가운데에서 희망을 북돋아 주는 역설적인 약속들이다. 참행복은 희미하긴 하지만 이미 제자들이 받은 축복과 약속들을 선포하며, 그것은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의 삶에서 실현되기 시작했다.
II. 행복에 대한 인간의 갈망.
1718 참행복은 행복에 대한 인간 본성의 갈망에 부응한다. 이 갈망의 근원은 하느님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당신께 이끌기 위해 그 마음 안에 이 갈망을 심어 주셨으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갈망을 채워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표현되기 전이라고 해도,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16)
주님, 어떻게 당신을 찾아야 합니까- 당신을 찾는 것이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오니, 제 영혼이 살도록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제 육체는 제 영혼으로 말미암아 살고 제 영혼은 당신으로 말미암아 살기 때문입니다.17) 하느님께서만 만족을 주실 수 있다.18)
1719 참행복은 인간 존재의 목적과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표를 드러내 보인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행복으로 부르신다. 이 소명에 각자가 개별적으로 부름 받고 있지만, ‘약속’을 받고 그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 전체도 같은 부름을 받고 있다.
III. 그리스도인의 행복.
1720 신약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행복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곧, 하느님 나라의 도래,19)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20) 하고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을 보는 것, 주님의 기쁨에 참여함,21)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감22) 등으로 표현한다.그곳에서 우리는 안식하며 볼 것이고, 보고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찬미할 것입니다. 마침내 끝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끝이 없을 나라에 다다르는 것 말고 무슨 다른 목적을 가지겠습니까-23)
1721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상에 두신 것은 당신을 알고 당신을 섬기고 사랑하여 천국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참행복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고”(2베드 1,4)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24) 참행복과 더불어 인간은 그리스도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며25) 삼위께서 누리시는 생명의 기쁨에 들어가게 된다.
1722 이러한 행복은 인간의 지성과 능력을 넘어선다. 이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의 기쁨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은총과 같이, 참행복은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불린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물론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하느님의 형언할 수 없는 영광 때문에 “하느님을 뵙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성부는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자하심과 전능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뵙는 특권을 주기까지 하신다.……“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도 하느님께는 가능하기 때문이다.”26)
1723 참행복에 대한 약속으로 우리는 결정적인 도덕적 선택 앞에 서게 된다. 참행복은 우리 마음에 있는 악한 본능을 정화하고, 무엇보다 우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권유한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부나 안락에 있지 않고, 인간적인 영예나 권력에도 있지 않으며, 제아무리 유용해도 과학이나 기술, 예술 등 인간 업적에도 있지 않으며, 어떤 피조물 안에도 있지 않고 오로지 모든 선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만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에는 부가 가장 큰 우상입니다. 군중이, 인간 대중 전체가 부를 본능적으로 섬깁니다. 사람들은 재산으로 행복을 재고 또 재산으로 명예를 저울질합니다.……이 모든 것은 재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오늘날 하나의 우상이며 명성은 또 다른 우상입니다.……명성, 곧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최상의 선인 양, 그리고 참된 숭배의 대상인 양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여론에 의한 명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27)
1724 십계명과 산상 설교와 사도들의 가르침은 하늘 나라로 인도하는 길을 말해 준다. 우리는 성령의 은총으로 지탱되는 일상의 행위들로써 한 걸음 한 걸음 그 길로 걸어 들어간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풍요롭게 되어 교회 안에서 서서히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된다.28)
간추림.
1725 참행복은 아브라함 이후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들을 한데 모으며 완성하고, 하늘 나라를 향하게 한다. 참행복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넣어 주신 행복에 대한 갈망에 부응한다.1726 참행복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최종 목적을 가르쳐 준다. 그 목적은 하늘 나라, 하느님을 뵈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자녀가 됨,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이다.
1727 영원한 생명의 행복은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은총과 마찬가지로 참행복도 초자연적인 것이다.
1728 참행복은 우리를 지상의 행복에 대한 결정적인 선택 앞에 서게 한다. 참행복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여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친다.
1729 천상 행복은 이 세상 재화를 하느님의 법에 맞게 쓰는 식별의 기준을 결정한다.
제3절 인간의 자유.
1730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창조하시어 인간에게 자발성과 자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위를 다스릴 수 있는 인격의 존엄성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고자’(집회 15,14) 하셨다. 그것은 인간이 자유 의지로 자신의 창조주를 찾아 그분을 따르며 자유로이 충만하고 복된 완전성에 이르도록 바라신 것이다.”29)인간은 이성을 지녔으며, 이 때문에 하느님과 비슷합니다. 그는 자유롭고 자신의 행위를 자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30)
I. 자유와 책임.
1731 자유는 이성과 의지에 바탕을 둔,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며, 이것을 하거나 또는 저것을 하는 능력이고, 이처럼 스스로 숙고해서 행동하는 능력이다. 각 사람은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이루어 나간다. 인간은 진리와 선 안에서 자유를 통하여 성장하고 성숙한다. 자유는 우리의 행복이신 하느님을 향할 때 완전하게 된다.1732 자유는 그 최종 선이신 하느님께 결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선과 악 사이의 선택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완덕을 향해 성장할 수도 있고 퇴보하여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자유는 인간 행위의 고유한 특징이다. 자유는 칭찬이나 비난, 공로나 허물의 근거가 된다.
1733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진다. 선과 정의를 위해 봉사할 때에만 참자유를 얻는다. 불순명과 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 남용이며 “죄의 종”이31) 되게 한다.
1734 자유는 인간이 행위의 자발성에 따라 자기 행동에 대하여 책임지도록 한다. 덕의 진보와 선에 대한 인식과 금욕적 삶의 진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지의 통제력을 성장시킨다.
1735 어떤 행동에 대한 인책성(引責性)과 책임은 무지, 부주의, 폭력, 공포, 습관, 무절제한 감정과 그 외에 정신적 사회적인 요인들 때문에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
1736 직접 원해서 행한 모든 행위는 그 행위자에게 책임이 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주님께서는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창세 3,13) 하고 물으시며, 카인에게도 그렇게 물으신다.32) 그리고 예언자 나탄도, 우리야의 아내와 간통하고 우리야를 죽인 다윗 임금에게 그렇게 묻는다.33)
사람들이 알았거나 했어야 할 것을 소홀히 한 결과로 저질러진 행위는 간접적인 고의에 따른 행위일 수 있다. 교통 법규에 대한 무지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가 그러한 예이다.
1737 어떠한 결과가 행위자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났을 경우에는 용인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병든 자식을 간호하다가 그 어머니가 죽을 지경이 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가 죽게 되는 경우처럼, 나쁜 결과가 행위의 목적으로든 수단으로든 의도된 것이 아니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면 술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던 사람이 저지르게 되는 살인처럼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행위자가 그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경우라야 한다.
1738 자유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행사된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책임 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타고난 권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러한 권리를 존중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도덕적,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34) 국가는 공동선과 공공질서의 범위 안에서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35)
II. 구원 경륜에서 본 인간의 자유.
1739 자유와 죄. 인간의 자유는 유한하며, 잘못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은 잘못을 저질렀다. 자유로이 죄를 지은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을 거부하여 스스로 자기를 배신하고 죄의 노예가 되었다. 이 최초의 소외는 다른 많은 소외를 초래하였다. 시초부터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오용한 결과로 인간의 마음에 일어난 불행과 억압을 증언하고 있다.1740 자유에 대한 위협. 자유의 행사는 무엇이든 말하고 행할 권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유의 주체인 인간은 지상의 재화를 즐길 때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목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36)는 주장은 잘못이다. 한편 자유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데에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분야의 조건들이 너무도 자주 무시되고 침해되고 있다. 이러한 맹목적이고 불의한 상황들은 도덕적 삶을 짓누르며, 사랑을 어기고 죄를 짓도록 강자와 약자를 모두 유혹한다. 인간은 윤리적 규범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손상시키고, 자신을 속박하며, 이웃에 대한 우애를 파괴하고, 하느님의 진리를 거역하게 된다.
1741 자유와 구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십자가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성취하셨다. 그분은 인류를 노예로 만든 죄에서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와37) 일치한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고, 바오로 사도가 말하듯이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2코린 3,17). 이미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38) 누린다.
1742 자유와 은총. 우리의 자유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진리와 선을 분별하는 능력과 맞을 때, 그리스도의 은총은 우리의 자유와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으로는 특히 기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은총의 작용에 온순히 따르면 따를수록, 시련 가운데 또 외적 억압과 속박 앞에서 우리의 내적 자유와 확신은 더욱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은총의 작용으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자유를 가르쳐 주시어 교회와 세상 안에서 당신 일의 자유로운 협력자가 되게 하신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에 해로운 모든 것을 멀리 물리쳐 주시어 저희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하시고 자유로이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39)
간추림.
1743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시기를”(집회 15,14) 원하셨고, 창조주를 자유로이 따름으로써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를 바라신다.40)1744 자유는 행하거나 행하지 않는 능력이며, 따라서 스스로 의도하여 행동하는 능력이다. 자유는 최고선이신 하느님을 향할 때 그 행위의 완전함에 이른다.
1745 자유는 인간 행위의 고유한 특징이다. 자유는 인간에게 자신이 행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 숙고한 후의 행위는 그 자신의 것이다.
1746 무지, 폭력, 공포나 그 밖의 정신적 또는 사회적 요인들은 어떤 행위에 대한 인책성이나 책임을 줄이거나 없앨 수도 있다.
1747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도덕적,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자유의 행사에는 무엇이든지 행하고 말할 거짓 권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1748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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