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 잘하는 법 ♣
1 대화할 때의 몸가짐 마음가짐
5). 듣는 노력과 알리는 노력의 조화.
대화는 양쪽이 각기 노력한 결과, 보다 훌륭한 제3의 의견을 발견하는 데에서 효과를 찾는다.
그런데 아무 노력없이 자기 의견만 일방적으로 개진하고 그것이 대화라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몰상식이다.
대화란 무엇을 알고자 하는 노력, 즉 듣는 노력과, 무엇을 알려주고자 하는 노력, 즉 알리는 노력의 균형 있는 조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보다 효과적인 의사 소통과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대화하는 사람들이 서로 깊게 이해하고 새로운 사실에 주의를 돌리면 쌍방의 노력으로 각자의 의견보다 훌륭한, 진전된 제3의 의견이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이것이 곧 진실한 대화가 기대하는 성과인 것이다.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인간생활의 유지와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대화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며, 나아가서 쌍방의 성실한 노력을 절실히 요구한다.
그런 다음에야 보고, 설득,충고, 공중 연설 등 여러 정황과 목적에 맞는 화법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어떤 장면에서든 상대방의 자존심을 빈틈없이 지켜준다는 마음가짐만 단단하다면, 대화에 임하는 심리적 배려는 달리 더 고려할 여지가 없다.
나아가, 효과적 언어표현의 3원칙을 지키고 대화에 임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첫째 원칙은, "예, 그러나"이다. 바꿔 말하면 긍정 후의 부정이다.
누구 의견에 대하여 긍정으로 말하지 않고 부정의 형태로 "그래서 되겠나?"하고 윽박지르면 십중팔구 상대편은 즉각 반발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그대 얘기도 무리는 아니다. 한데 이점은 어떤가?"처럼 말의 허두를 꺼낼 때 이쪽이 상대편 처지나 입장을 성실히 인정해 주는 각별한 심리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 평범한 이치를 늘 반추할 일이다.
대화에는 상대편이 있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내용을 상대편 형편에 잘 맞춰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상대편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편 입장을 인정한다는 것은 말하는 내용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다만 상대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사정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편 존재를 참되게 인정하면 (긍정 화법) 무시하면 (부정 화법)이라 한다. "그렇지 않다고", "그건 모르는 소리라고", "무슨 헛소리야"와 같은 말투는 모두 부정적인 것이다.
자기주장을 인정받지 못하면 상대편에 대하여 반드시 "자네 주장도 인정할 수 없다"는 반발을 보이기 쉽다.
그러므로 긍정 화법을 써야 한다. 즉 상대편 이야기를 일단 긍정적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긍정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상대편 자존심을 지켜준다는 뜻이 된다.
상대편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하면 대화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상대편 의견에 대하여 몰아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말하면 자기 이야기도 상대에게 먹혀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항상 긍정적으로 말하는 대화 습관을 익혀야 한다.
둘째 원칙은, 상대편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언제든 명랑하게 말해야 한다.
그것은 들뜬 기분의 목소리를 내라는 뜻이 아니다. 들뜬 목소리를 명랑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 반대로 어두운 목소리가 어째서 나쁘냐는 이야기가 되는데, 어두운 어조는 상대를 밀어내는 듯한 음성으로 다음의 세 가지 나쁜 불이익을 초래한다.
어두운 음성은 상대에게 위협하는 기분을 준다. 곧 위압감을 준다. 남의 위협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다음 불이익은, 상대편에게 의혹을 주게 되고, 때로는 그것이 자기에게 치명타를 안겨줄 때가 적지 않다.
그리고 세 번째 불이익은 혐오감이다. 어두운 어조로 말하는 불필요한 한탄은 혐오감을 준다.
주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하면, 가슴을 크게 펴고 기분 좋은 음성과 명랑한 마음가짐으로 말해야 한다.
셋째 원칙은, 상대편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것이다. 어려운 어휘나 용어는 되도록 쓰지 않는다.
쉽게 말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이쪽 의도가 정확히 사실대로 전달됨을 기대하는 의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말한 내용이 본래 가지는 의미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되는지 여부를 부단히 확인하며 말하는 것이다.
말하는 쪽은 말을 잘해야겠다는 의식에 중점을 두기 쉬우나, 자기 이야기가 잘못 전해지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무엇보다 먼저 상대가 잘 알아듣도록 말해야 한다.
쉽게 말하는 것과 함께 음성 문제가 나온다. 음성은 주어진 정황에 알맞은 크기로 말한다.
그리고 발음을 정확히 한다. 그밖에 이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또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하는 데는 이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또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뛰따른다.
그중에서도, 어휘 선택을 잘해야 한다. 어휘는 쉽고 적절한 것이어야 하며 저속한 어휘를 쓰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하면, 말할 때는 구체적 설명, 실례, 비교, 비유, 새로운 정보, 숫자 또는 통계, 증명, 증언의 인용, 사례 보고 등과 감각적인 표현을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듣는 처지의 대화에서는 정신력 집중, 적절한 질문, 적절한 응대 말, 알맞은 확인 등의 효과적인 청법이 고려되어야 한다.
끝으로 대화능력을 향상하고자 할 때, 다음 4개 항목의 연구와 능력 신장이 시도되어야 한다.
첫째는 매력적인 성품의 형성을 위한 본인의 자기 성찰이 부단히 지속되어야 하고,
둘째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가치 있는 정보의 입수, 셋째는 설득력을 기르는 일이요,
넷 재는 화법과 청법의 능력 신장이다.
덧붙이면, 말할 때는 듣는 입장에서, 들을 때는 말하는 입장에서, 이 같은 평범한 대화의 원칙과 더불어 대화중 말하기보다 듣기에 더 비중을 둔다는 에티켓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6). 한마디 말의 여러 가지 의미.
"내가 당신의 의논하기 앞서, 나는 내 용어를 정의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이다.
말을 막연히 혹은 애매한 상태로 하기 때문에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불충분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자기가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듣는 상대에게 별도의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영국인에게 '콘'은 단순한 '곡물'로, 소맥이나 호밀이다.
그러나 미국인에게 '콘'은 '옥수수', 발에 생긴 '티눈', 속어로는 '진부하고 과대한 감상'의 의미이다.
'뉴욕'사람은 '시카고'사람을 서쪽에 살고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보면 '시카고'는 동쪽이다. '강릉'사람은 '원주'사람을 서쪽에 살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보면 '원주'는 동쪽이다. 정치용어로 '서방'은 '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와 미국을 가리킨다.
전후 관계를 명백히 하지 않고 쓰는 말이 의외로 많다.
추상 개념이 관계되면 언어 문제는 매우 복잡해진다.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 사이에서 오해의 비극은 쌍방 어휘에 엄밀한 동의어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 될 때도 있다.
'유엔'에서 유엔 과업의 하나로 <인권헌장>을 처음 기초할 때, 이 과업의 참된 의도와 목적을 각국 대표에게 인식시키는 일부터가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 바 있다.
관련 당사자들은 한 가지 말이 각자에게 갖는 의미를 조사하여, 그 말을 정의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다른 말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문장은 상세히 검토되었고 때로 타협이 따랐다. 그러나 이 문안 작성에 모인 각국 대표가 그것을 동일한 의미로 해석했을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
유엔의 동시 통역사들이 연설 통역에서,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동시에 옮겨 놓는 능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어휘, 문법, 구문만 아니라, 연설자가 쓰는 말의 정신을 다른 말로 옮기는데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언어를 구사할 때 의미는 자기가 정한 대로만 쓰고 다른 의미는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태도야말로, 거칠고 무익한 논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두 사람이 대화에서 동일 어휘를 사용해도 실제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7). 말이 많으면 실언을 한다.
"말이 많으면 실언이 있다"라고 했지만, 또 말이 많은 사람을 환영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 중에 말 많은 사람이 많은 것을 어쩌랴. 그 때문에 자기 이야기는 줄이고 상대편 이야기에 정성껏 귀 기울이는 사람이 환영받는다. 경청은 우선 상대편에 대한 나의 성실한 관심을 표명인 것이다.
그렇다고 물론 무작정 상대편 이야기만 듣고 이쪽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된다. 말없이 뚱하면 나의 오해를 사기 쉽다.
어디가 아프면 말수가 적고, 불만스러우면 말을 않는 것이 우리들 평소의 습성이므로 주변의 오해를 사기 쉽다.
말이 많으면 은연중 내가 지닌 비밀이나 어떤 다른 비밀이 상대편에게 새어나간다.
또 계속 일방적으로 폭포수처럼 말을 퍼부으면, 상대편은 의견을 펴지 못할 뿐 아니라 이쪽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반대로 열심히 듣는 편에 서면 우선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고 상대의 기호와 상대의 호오,
그리고 상대편을 분별을 알아차리기 쉬워 대응하기가 편리해진다.
((손자병법))에서도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하지 않는가. 이야기를 듣는 상대를 이야기하기 위한 길이요, 말하기는 남에게 나를 이해받기 위한 수단이다.
대화를 세련되게 하는 사람이면 듣기를 여섯, 말하기를 넷의 비율로 말하고 듣는다.
그리고 말하다 듣고 듣는 말하는, 자주 바뀌는 입장이 대화에 생동감을 넘치게 한다.
대화에 활기와 윤기를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고려가 바로 이 같은 배려이다. 사람의 얼굴에 눈이 둘이요,
귀가 둘인데, 입이 하나인 것이 많이 보고 많이 듣되 조금만 말하라는 뜻이라는 새기는 영국 사람의 해석은 매우 흥미 있는 정의라 하겠다.
8). 기분이 통하면 대화는 무르익는다.
대화는 말과 표정으로 하지만 기실 마음의 교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화는 의례적으로 끝나게 된다.
피차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 마음의 문 열기가 어렵다.
또 한쪽이 열었다 해도 상대가 열지 않으면 대화가 본래 위치를 벗어나니 알맹이 없는 대화에 머물고 만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대화에 실상은 없고 허상만 남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열려야 대화가 참되게 이루어진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상대편이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마음을 여는 ;'열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호의의 발생을 자극하는 일일 것이다.
부산행 열차 안에서 옆 좌석의 손님이 내게 말을 건넨다. 그는 중년의 남자로 겉으로 보기에 사업가 타입이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부산까지 갑니다." "저도 부산까지 갑니다." 목적지가 같다.
"술 좀 하십니까?" "저도 부산까지 갑니다." 목적지가 같다. "술 좀 하십니까?"
"네, 맥주 정도는 좀 합니다." "저도 그 정도라서..., 맥주나 한잔 하십시다." "네."
그는 차내를 왕래하는 판매원에서 맥주 두어 병과 안주로 찐 오징어 하나를 샀다.
권커니 자커니 두석 잔 비우니 자연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모르는 분이지만 그런대로 동반이 되어 심심찮게 이야기를 나누며 차 속의 지루한 시간을 메워 나간다.
참 다행스러운 느낌이다. 다섯 시간쯤 걸리는 열차여행은 웬만한 인내가 아니고는 견디기 어렵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대화가 고조되자 그는 내게 수인사를 청한다.
그러자 나는, "네, 너무 늦었습니다. 정영우라고 합니다." "그럼 종시네요?" "본관이 어디십니까?" "강원도 정선입니다."
"그럼 온전 전 이시네?" "네!" "나는 발전입니다." "순간 고조된 기분이 걷잡을 수 없이 식어간다.
그냥 가도 될 것인데 수인사 때문에 분위기가 냉각되다니 하는 아쉬움과 함께. 그러나 분명 그에게는 기지가 번뜩였다.
"그래도 한글 종씨 아닙니까?" "..."
나는 이때 한글 종씨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들었다. 전 씨나 전 씨는 한글 종씨임에 틀림없다.
그 후 나는 기회가 닿으면 이것을 유머의 한 토막으로 강연해 삽입해 오는 터이다.
이 말이 많이 퍼진 까닭인지 언제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노라니 옆 좌석 손님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한 사람이 이르길 "그럼 두 분은 한글 종씨네?" 잠자코 옆에서 음식을 들던 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우지 않을 수 없었다.
성씨가 같은 종씨나 고향이 같은 동향, 그리고 출신 학교가 같은 동문은 비록 초면인 때라도 대화 분위기의 조성이 빠르고 또 자연스러운 마음의 교류를 꾀할 수 있다. 아마 동류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때문일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공통점의 발견으로 피차 공통의 기반을 구축하고, 서로가 허심 탄회한 상태에서 대화를 나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대화 중의 한쪽이 다른 한쪽에 기분을 맞춰 나가면 좀 더 친밀감을 갖고 접근하게 된다.
이것은 대화의 가장 중요한 테크닉이 되는 것이다.
9). 공통의 화제가 필요하다.
대화에서 화제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어떤 화제를 선택하느냐로 우리는 종종 망설이는 때가 있다.
화제 선택은 단 둘만의 대화 때는 되도록 상대편 중심의 화제를 택하고, 둘 이상이 모인 정황에서는 모인 사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통의 화제를 꺼내는 것이 교양에 속하는 일이다.
하지만 말할 때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화제를, 누구에게 말을 시킬 때는 그가 말하고 싶어하는 화제를, 누구에게 말을 시킬 때는 욕구, 행동, 지식, 상식, 호기심, 만족을 채워 주는 데 보탬이 되거나 도움 되는 화제는 누구나 듣고자 한다.
또 화제에 유머나 위트가 곁들여지면 모두가 좋아한다.
그러나 유머는 화제와 화제 사이에 삽입하는 대화 촉진의 윤활유나 촉매로 사용하는 편이 보다 슬기롭다.
사람이 말하기 쉽고 말하고 싶어 하는 화제라면 그의 자랑, 경험, 이해득실, 또 그만이 알고 있는 것 등이 있다.
때로는 남에 대한 욕설, 독설, 험담이 우리가 나누는 대 화의 화제와 화제 사이에 삽입하는 대화 촉진의 윤활유나 촉매로 사용하는 편이 보다 슬기롭다.
사람이 말하기 쉽고 말하고 싶어 하는 화제라면 그의 자랑, 경험, 이해득실, 또 그만이 알고 있는 것 등이 있다.
때로는 남에 대한 욕설, 독설, 험담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화제에서 상당한 분량을 차지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 화제를 놓고 열기가 고조되며 어떤 이는 간혹 핏대를 올리는 일 또한 없지 않다.
하지만 다 같이 삼가야 할 일이다.
그렇기는 하나 공사 간 어떤 정황에서 누가 늘어놓는 제삼자에 대한 험담을 듣고 즉각, "이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는 그만둡시다"라고 면박 주는 일은 좀 곤란하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사이비 군자처럼 보이겠지만, 사이비 군자의 문하생처럼 되기 쉬운 처지가 딱하다.
그러므로 남의 험담이 화제로 등장하면 그 화제를 슬며시 딴 화제로 바꿔놓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