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제 3장 영성발달을 위한 통합적 모델
통합적 모델을 만드는데, 신학과 교육심리학이 접목되었다. 신학에서는 기독론과 성령론이 관계된다. 영성발달의 목표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기독론(Christology)이 필수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며, 한 개인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에 성령론이 동원된다. 그리고 교육심리학(Educational Psychology)이 동원되는 것은, 영성발달의 당사자인 한 사람의 자아(self)가 영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심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기독교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오순절 성령강림은 제자들의 영성과 크게 관계된다. 오순절 이전의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살던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 부어 주심을 입고부터 타자중심적인 능력의 사람들로 변화되었다. 기독교교육과 성령론의 접목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제 그럼 영성발달의 통합적 모델을 만들기 위한 내용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A. 영성발달과 기독교교육의 목표
영성발달의 목표와 기독교교육의 목표는 완전히 일치한다. 그 공동의 목표는 <그리스도다움>(Christlikeness)이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바로 영성발달의 목표요 기독교교육의 목표이다. 성령의 역사 안에서 기독교 교육이 이루어질 때, 영성이 발달하며, 그 궁극적 목표는 그리스도다움이다. 그럼 그리스도다움이란 무엇인가?
B. 그리스도다움(Christlikeness)
<그리스도다움>이란 타자중심주의와 능력 충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인격의 면에서 타자중심주의요 행동의 면에서 능력 충만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타자중심주의와 능력충만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도다움의 반대는 자기중심주의와 무능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그토록 많이 충돌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그리스도다움의 반대 위치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1. 그리스도의 인격: 타자중심주의
그리스도의 삶은 타인들을 섬기는 삶으로 엮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과 대속적 죽음은 전적으로 타자중심적인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타인들을 위해 봉사하며 심지어 자기의 목숨까지 인간 구원을 위해 바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마 9:35, 사61:1-2, 눅4:16-21, 행10:38, 히9:12-14, 빌2:7-8)
2. 그리스도의 행위: 능력 충만
그리스도의 행동 가운데는 능력이 동반되었다. 그의 말씀엔 항상 생명력이 충만하였다.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보수적 신앙을 자처했던 바리새인들의 메시지에는 그 같은 힘이 없었다. 만일 힘이 있었다면 그것은 파괴적인 힘이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엔 살리는 힘이 작동하였다. 죄를 사하심으로써 영혼을 살리는 힘이 작동하셨고, 좌절하는 사람들을 향한 그의 위로의 말씀 속에는 정신과 감정을 살리는 힘이 작동하셨다. 육신이 병든 사람에게는 그 병을 치유하시는 권능이 작동하셨다. 심지어 죽은 사람들에게 말씀이 주어졌을 때에는 죽은 자들을 살리는 위대한 생명력이 동반되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특징은, 영과 혼과 육신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바로 성령의 능력 충만이 그리스도의 행위의 특징이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죽은 영혼을 살리고, 상처 받은 감정을 치유하며, 병든 육신을 치료하시고,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성숙시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부활에 나타난 권능의 근원은 성령님이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직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행1:8).
어떤 사람이 <힘>을 소유하고 있을 때에, 그 사람의 인격이 자기중심적이면 그 힘은 부정적이며 파괴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인격이 타자 중심적이면 그 힘은 긍정적이며 건설적으로 사용된다. 사탄은 자기중심적인 인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 힘이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곳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격은 타자 중심적이기 때문에 그 힘은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곳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중심적 자아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타자 중심적 자아인 <새 사람>을 입음으로써, 성령의 능력이 우리 자신을 통하여 타인들에게 건설적인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브라운(Brown)은 경고하기를, 자기중심적 인격을 가진 사람의 행동에는 사탄의 능력이 동반된다고 하였다.
C. 타자중심주의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 두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통해서 타자중심주의를 논의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콜 버그(Kohl berg)의 도덕발달론
도덕발달은 영성발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도덕성이 없는 영성은 비도덕적 영성이며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의 영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발달 심리학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로렌스 콜 버그(Lawrence Kohl berg)의 도덕발달이론은, 한 개인의 자아와 타인들과의 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그의 도덕발달이론은 세 개의 수준에 속하는 6 단계로 나누어지는 데 다음과 같다 -
(1) 첫째 수준은 <보통 이하의 수준>으로 자아 중심적 수준이다. 이 첫째 수준은 1단계와 2단계로 이루어진다.: 제 1단계 -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는 단계이다.제 2단계 -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되, 타인에 대하여 일방적인 관심을 보이는 단계이다.
(2) 두 번째 수준은 <보통의 수준>으로서 자아가 타인들을 고려하며 적절한 관계를 맺는 수준이다. 이 수준은 3단계와 4단계로 이루어진다.:제 3단계 -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자기중심에서 타인 중심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단계이다.제 4단계 -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자신을 사회와 연결시켜 사회를 위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단계이다.
(3) 세 번째의 수준은 <보통 이상의 수준>으로 자아가 타인들을 위하여 공헌하는 수준이다. 이 수준은 5단계와 6단계를 포함 한다:제 5단계 - 사회적 계약을 중요시한다. (예: 안중근 의사).제 6단계 - 만인에게 통하는 윤리적 법칙을 따라 행동하는 단계이다. 완전히 자아를 버리고 타자를 위해서 희생하는 최고의 단계를 말한다. (예: 예수님)
2. 호프만(Hoffman)의 감정이입 발달이론
마틴 호프만(Martin Hoffman, 1975, 1979)은 종합적이고도 심도 있게 감정이입 발달론(theory of empathetic development)을 개발한 사람이다. <감정이입>(empathy)이란 다른 사람의 불쌍한 처지를 보고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 성경적인 용어로는 <긍휼>이 여기 해당한다.
인류학자들의 증거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사시대의 인간들은 자신을 해치는 환경에 대해 적대감정을 가지는 수가 많았는데, 이때에 한 편으로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자기중심적 동기가 강화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안녕을 도모하려는 순수한 동기가 확립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감정이입 발달은, 다른 사람의 안녕을 위한 순수한 동기에 관계된 이론으로, 이 이론은 바로 타자중심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콜 버그의 도덕발달이론에서는 가장 낮은 단계(1단계)가 자기중심주의이며 가장 높은 단계(6단계)는 타자중심주의이다. 그리고 호프만의 감정이입발달이론에서도 감정이입은 타자중심주의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심리학적 측면에서 볼 때도, <타자중심주의>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가치임이 분명하다.
D. 타자중심주의에 대한 신학적 성경적 관점
타자중심주의는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과연 그것은 그리스도다움과 동일시될 수 있는가?
1. 타자중심주의의 성격
타자중심주의는 하나님중심주의와 타인중심주의를 동시에 포함하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자기(self) 이외의 타자(other)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과 눈에 보이는 타인들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자중심주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류에게 강조하신 중요한 신앙의 내용 속에 흐르는 공통인수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경우를 보아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핵심을 이룬다(출20:3-17).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주신 산상수훈을 보아도 그러하다. 여덟 가지 복이 모두 타자중심주의로 구성되어 있다(마 5:2-10). 성령 하나님의 아홉 가지 열매도 타자중심주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갈5:22-23).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이나 성자 하나님께서 주신 팔복이나 성령 하나님께서 맺게 해주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모두, <타자중심주의>라는 핵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이 타주중심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바로 성삼위 하나님의 공통된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고자 한다면, 타자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 타자중심주의의 중요성
타자중심주의는 어떤 사람이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했는가를 알려주는 사인이다.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거기서 나오기 전에는 결코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다. 영성발달의 목표인 그리스도다움은 바로 타주중심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타자중심주의는 그 말대로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에 있어 자신을 점검할 수 있다.
타자중심주의는 행동을 잴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영성발달의 정도를 측정하는데 청진기 역할을 한다. 만일 우리의 삶이 자기중심주의(Self-Centeredness = S-C)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영적 미숙아에 불과하며, 만일 타자중심주의(Other-Centeredness = O-C)로 살아간다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그의 영성은 제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E. 영성발달의 모델
<영성>은 문화적, 사회적, 인간적인 것들을 모두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과의 신비적 관계에만 국한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와 사람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다 포함하는 전인적인 개념이다. 영성을 하나님과의 수직적 신비적 관계에만 국한시킨다면, 그런 영성의 소유자는, 그 신앙을 생활화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영성은 신앙이 생활화되게 하는 삶 속에서 발견되는 영성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에 베드로는 여기가 좋으니 산하의 세상으로 내려가지 말자고 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제자들을 데리시고 산하로 내려오셔서,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역사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인간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온전한 영성의 모델을 제자들에게 제시해 주셨다.
이와 같은 개념을 토대로, <영성>을 정의하면 이러하다 -- “영성이란 성령님의 인도하에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 및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를 성경적으로 맺으면서 하나의 자아가 그리스도다움을 향하여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영성발달에서 중요한 4가지 요소들은,
1) 영성이 발달해야 할 주체인 자아(self)와
2) 영성발달의 목표인 그리스도다움(Christlikeness)과
3) 영성발달을 시키는 사역의 주체인 성령님(the Holy Spirit)과 그리고
4) 영성발달의 도구인 기독교교육(Christian education)이다.
F. 영성교육을 위한 기독교교육의 실천적 방안
영성이란 우리의 생활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및 우리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실제적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영성발달 이론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그럼, 영성발달 모델을 토대로 성도들의 영성을 어떻게 발달시킬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시해 본다.
1. 영성발달에 초점을 둔 기독교교육
기독교교육은 영성발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영성발달을 위해서라면 교회는 기독교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성령의 지도 아래 있는 교사와 학생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교사와 학생은 성령의 지도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교육은 영성발달을 도모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성경적 관계는 성령의 개입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성발달은 정신이 행동으로 바뀌어 지는 차원을 넘어서, <영>이 정신과 결합하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일반교육에서는 학생을 돕기 위해 교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기독교교육에서는 학생이나 교사가 모두 성령의 역사하심을 가장 중요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교사나 학생이 모두 성령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만 기독교교육의 목적이 달성되며 영성 발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 교회 안에 필요한 세 가지 학교
- 교회 안에 필요한 세 가지 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 성경학교(Bible School)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것은 물이 없는 곳에서 고기 낚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성령의 역사를 무시한 기독교교육은 메마른 지성주의로 빠지게 하지만, 성령의 인도 아래 행해지는 성경 공부는 영적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기독교교육은 어린이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어린아이들로부터 청년들과 장년들과 노인들에게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2) 기도학교(Prayer School)
기도는 교육을 통해서 될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 성령님도 기도를 가로쳐 주신다고 한다(롬 8:26). 성령님은 우리가 올바로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기도학교의 교수님이시다. 기도는 정서적 영역과 연관된 영적 활동이다. 기도학교는 정적인 면에서 우리를 도와 건전하게 영성이 발달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칼슨(Carlson, 1992)은 <영적 개혁에의 초대>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기도의 계획이 없는 크리스천은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다고 하면서, 기도학교의 설립을 강조한다. 이 말은, 되는 대로 하는 기도생활을 가지고서는 영적 성숙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딕스트라(Dykstra, 1981)는 말하기를, 기도 없는 도덕교육은 실천할 수 없는 짐을 더해줄 가능성이 크며, 기도를 통한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는 도덕교육은, 개인이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제공한다고 하였다.
(3) 전도학교(Evangelism School)
전도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행위로 가장 큰 선행이다. 전도는 지식과 정서와 행위가 결합된 영적 행동이다. 전도를 하려면 복음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하고, 시간을 내어 그 사람을 찾아가 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는 영적 행위 영역에 속한다. 예수님의 사역은 전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자신이 땅에 오신 목적이 전도이었다고 하신다(막1:38). 전도는 크리스천의 지식과 정서와 의지를 총동원한 최고의 사역임이 분명하다.
성경학교를 통하여 인지적 영역에 변화가 일어나고, 기도학교를 통하여 정서적 영역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리고 전도학교를 통하여 영적 행위 영역에 변화가 일어나서, 지성과 감성과 행동이 골고루 발달하는 전인적인 기독교교육 운동이 한국교회에 힘차게 일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아래로부터의 기독교교육과 위로부터의 성령의 역사가 동시에 일어나서, 자기중심적인 <옛 사람>이 타자중심적인 <새 사람>으로 바뀌는 영성 발달의 역사가, 모든 개인과 교회에 일어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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