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불교란?』제16장 깨달음을 향하여 -19.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문성식 2016. 11. 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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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장 깨달음을 향하여 
        19.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란 하나의 형상 속에는 다른 많은 형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복잡한 형상일지라도 하나의 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속뜻은 우주만상이 대립하지 않고 서로 융합하여 무한하면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일즉다 다즉일’의 용어가 성립한 까닭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각각의 현상들이 서로 융합하여 하나의 개체를 이루어도 서로 걸림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우주만상은 중생의 눈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이나 우주의 본체는 평등한 진여(眞如)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모습은 결국 우주본체의 진여를 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저 높은 산은 바위와 흙, 나무와 잡초 등의 여러 상으로 형성됩니다. 이때 산은 바위, 흙, 나무 등의 하나하나의 성품 즉, 각각의 모습이 모여 산이란 거대한 복합이 형성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거대한 저 산 또한 알고 보면 하나하나의 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산이라는 개별의 형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一)’이 있으면 많은 것이 성립하기 때문에 ‘일’은 많은 것 즉, ‘다(多)’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다’가 ‘일’의 개별적 속성을 담고 ‘일’이 ‘다’에 포함되기 때문에 서로 상즉상입(相卽相入)합니다. ‘일즉다 다즉일’이란 하나 속에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고 많은 것 속에 하나의 속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나무로는 의자와 책상 등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지만 나무 그 자체가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를 주는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나무의 속성이 주는 성품이 ‘일’이고 나무가 바뀌어 의자와 책상으로 되는 것이 ‘다’입니다. 그러므로 책상 속에는 나무라는 소재가 있고 나무속에는 책상을 만들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