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

보물 제1877호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奉化 太子寺 朗空大師塔碑)

문성식 2016. 11. 6. 13:17

보물 제1877호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奉化 太子寺 朗空大師塔碑)

종목 보물 제1877호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지정일 2015.04.22
수량 1기
시대 고려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중앙박물관
자료출처 및 참조 문화재청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는 신라말 고려초의 고승인 낭공대사(朗空大師) 행적(行寂)〔832(흥덕왕7)~ 916(신덕왕5)〕의 탑비이다. 비문의 찬자는 당대 문장으로 평가받았던 최인연과 대사의 문하법손(門下法孫)인 석순백(釋純白)이다. 또한 문하승인 승려 단목(端目)이 명필 김생의 행서 글씨를 집자하여 승려 숭태, 수규, 청직, 혜초 등이 새겨 954년(광종 5)에 세운 비이다.

 

낭공대사는 신라 효공왕·신덕왕 때의 명승으로 법명은 행적(行寂),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일찍이 불교에 뜻을 두고 가야산 해인사에서 불도를 닦았으며 855년 천복사(泉福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871년 당나라에 건너가 15년간 명산을 두루 다니며 수도하고 귀국한 뒤 효공왕의 존숭을 받으며 석남산사(石南山寺)의 주지로 있다가 입적하였다. 이에 경명왕은 낭공대사라 시호하고 백월서운이라 탑명을 내렸다. 비문의 앞면은 경명왕의 명으로 최인연(崔仁渷)이, 뒷면은 대사의 문하법손(門下法孫)인 석순백(釋純白)이 지었다. 입비 연대는 앞면 비문을 지은 뒤 세우지 못하다가 954년(고려 광종 5)에 순백의 후기(後記)와 함께 새겨 세웠다.

 

글씨는 자경(字徑) 2∼3㎝의 행서로 대사의 문인인 석단목(釋端目)이 김생(金生)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였다. 따라서 김생의 글씨를 연구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료이다. 당시 유행하던 구양순류(歐陽詢類)의 글씨를 따르지 않고, 진(晉)과 남조(南朝)의 필의를 모방하면서도 획에 태세곡직(太細曲直: 굵고 가늘며 굽은 것과 곧은 것)의 변화를 일으켜 가히 신품(神品)이라 할 만하다. 한편 비의 측면에는 조선 중종 4년(1509)에 영천군수 이항(李沆)이 태자사지로부터 영천의 자민루(字民樓)로 옮겨온 사실이 박눌(朴訥)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신라말 고려초의 고승인 랑공대사 행적의 일생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고, 비석의 입비(입비)와 관련하여 비문의 찬(撰), 비문의 집자(集子), 비문을 건립하는데 관여한 인물 등 당시의 사회와 문화상을 고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김생의 글씨를 연구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서도 상당히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