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0.jpg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산7의 1번지에 있는 두 개의 신라시대 비석.

 

영천 청못〔菁池〕의 축조와 중수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다. 1968년에 한국일보사 주관 신라삼산학술조사단(新羅三山學術調査團)이 발견하였다.

 

두 개의 비 가운데 흔히 ‘청제비’라고 부르는 비의 양면에는 각기 시대가 다른 비문이 새겨져 있다. ‘병진년’의 명문이 있는 것은 청못을 처음 축조할 때 새긴 것이고, 반대 면의 ‘정원14년(貞元十四年)’이라는 명문이 있는 것은 청못을 새로 수리할 때 새긴 것이다.

크기는 높이 130㎝, 너비 93.5㎝, 두께 45㎝이다. ‘병진년’으로 시작되는 비문은 전문 10행, 각 행 9∼12글자, 자경(字徑) 4∼5㎝이고 전문 약

105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 모양은 고졸(古拙)한 형태이다.

 

비문의 내용은 비를 세운 연월일, 공사의 명칭, 공사의 규모, 동원된 인원 수, 청못의 면적, 청못으로 인해 혜택받을 수 있는 농지 면적, 공사를 담당한 인물의 이름 등으로 되어 있다. 비문이 쓰여진 연대는 ‘병진’이라는 간지로 보아 536년(법흥왕 23)으로 추정된다.

‘정원14년’으로 시작되는 비문은 전문 12행, 각 행 4∼12글자, 자경 4∼6㎝이며 전문 130자가 새겨져 있다. 글자 모양은 역시 고졸한 면을 지니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청못의 수리가 완료된 연월일, 비문의 표제, 수리하게 된 경위, 수리한 둑의 규모, 수리 기간, 공사에 동원된 인원 수, 관계 담당관의 이름 등으로 되어 있다. 정원 14년이라는 절대 연대로 보아 비문이 쓰여진 연대는 798년(원성왕 14)임을 알 수 있다.

청제비 바로 옆에는 1688년(숙종 14)에 세운 ‘청제중립비(菁堤重立碑)’가 있다. 높이 107㎝, 너비 77㎝, 두께 15㎝인 화강암 비석으로 비문은 전문 10행, 각 행 14글자, 자경 5.5㎝이다. 비문의 내용은 청제비가 1653년(順治 癸巳年)에 두 동강이 나서 먼지 속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최일봉(崔一奉) 등이 다시 맞추어 세웠다는 것이다.

 

영천청제비는 신라 수리 시설의 실태, 통일신라시대의 중앙 집권 체제와 지방 호족의 관계 등 신라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청제중립비를 통해 청못과 청제비를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귀중한 금석문이 소멸을 면하게 된 경위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