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56.jpg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5.9m.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건립된 일반형 방탑(方塔)으로 모래질이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건조되었다.

현재 계산리의 속칭 ‘말미장터’라는 마을 남쪽 언덕 밭 가운데 서 있는데, 석탑의 상태로 보아 현재의 위치가 원위치로 추정된다. 탑신부 위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며, 기단갑석 일부와 2층옥개석 일부에 약간의 파손이 있을 뿐 대체로 각 부가 완전한 상태의 석탑이다.

기단부는 10여매의 장대석을 놓아 지대를 마련하고, 그 위에 7매로 높직한 굄돌을 결구하여 놓았는데 측면은 아무런 조식(彫飾)이 없으며, 상면에는 높직한 원호형(圓弧形)과 약간 낮은 각형(角形)의 2단 굄을 조출(彫出)하여 그 위에 기단면석을 받고 있다.

기단면석은 4매의 판석을 조립하였는데, 각 면을 서로 엇갈리게 차례로 세웠으므로 각 기단면을 보면 마치 좌측을 향하여 널찍한 우주를 하나씩 모각(模刻)한 것처럼 보인다. 기단갑석은 4매의 판석을 결구하여 면석을 덮었는데 하면에는 부연이 조출되었으나, 상면은 아무런 시설 없이 평평한 위에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을 각기 별개로 조성하여 겹쳐 쌓았는데, 각 부재는 크기에 따라 몇 개의 석재로 결구된 것도 있어 전체적으로 보아 무질서한 면을 보이고 있다. 즉, 초층옥신은 4매의 판석으로 조립되었는데 커다란 판석(板石)을 동서로 놓고 그 사이에 작은 판석을 끼웠으며, 2층옥신은 1석을 놓았다.

그리고 3층옥신은 4매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짜임새는 초층과 정반대로 큼직한 석재를 남북으로 놓고 그 사이 동서에 작은 석재 하나씩을 끼워놓았으며, 4층과 5층의 옥신은 1석씩으로 조성되었다.

각 층의 옥신에는 우주의 표시가 전혀 없는데 이것은 평평한 기단면석과도 같다. 옥개석은 초층과 2층은 2매석으로 이루어졌고 3층 이상은 1석씩이다. 옥개받침은 초층과 2층은 5단, 3층과 4층은 4단, 5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각 층 옥개석 상면에는 각형 1단의 굄을 각출하여 그 위층의 옥신석을 받고 있으며, 이 굄대 상면은 위층의 옥신석이 꼭 끼도록 얕게 패어 있는데 이러한 시설은 옥개석받침 하면에도 배려되어서 그 밑의 옥신석이 꼭 끼도록 되어 있어 주목되는 수법이라 하겠다.

낙수면은 급경사를 이루는 한편 네 귀퉁이의 전각에도 반전이 없는 편이며, 특히 옥개석받침이 거의 추녀 끝에까지 나와 있어서 둔중한 형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상륜부는 5층 옥개석 상면 중앙에 찰주원공(擦柱圓孔, 지름 12㎝)이 남아 있을 뿐 전 부재가 없어졌다.

이 석탑은 기단부나 탑신부가 정연하지 못하고 거친 솜씨를 보이고 있는데, 기단부나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 등의 감축 비례가 적절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균형이 잘 잡히고 안정감이 있는 석탑이라 하겠다. 건립연대는 단층기단의 구성양식과 탑신부의 건조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