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독립시켜라
여성들은 어머니가 되면 자녀를 위해서 헌신한다.
''흉년이 들면 애는 배 터져 죽고 어른은 배곯아 죽는다''는 옛 말이 있듯이,
예전에도 자식을 위한 부모의 헌신과 희생은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가난한 시절이었으므로 부잣집이 아니라면
자식에게 음식이나 공부할 책을 풍족하게 제공할 수가 없었다.
어려운 살림에다 자녀수가 많았으므로 어린이를 자상하게 보살피지 못했다.
결핍을 느끼고 굶주리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니까
자녀들은 어릴 적부터 제 살길을 스스로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자녀수가 줄고 예전보다 생활의 여유가 생겼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과잉보호가 행해지고 있다.
어머니의 대리성취 욕구가 경제적 여유를 업고 자녀의 교육열풍에 불을 댕겼다.
이 풍조는 남에게 질세라 유행처럼 경쟁적으로 번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장난감과 각종 교재, 책 등에 파묻히고,
세상 사물에 눈을 뜰까 말까 하는 유아기부터 영재교육 열풍에 휘몰리고 있다.
어린이 심성의 싹은 섬세하고 예민하고 가냘프다.
땅 위에 머리를 내미는 어린 싹처럼 부드럽고 연약하다.
참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상처입고 꺾이기 쉽다.
어린이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창조적 자발성과 욕구처럼 중요한 것은 다시 없다.
그런데도 어린이를 섬세하게 살피고 고려함이 없이
이곳 저곳으로 잡다한 자극을 찾아 부모들이 끌고 다니고 있다.
순전히 젊은 엄마들의 과잉기대와 욕심,
경쟁심으로 아이를 혹사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중-고교에 오르고 대학생이 된 다음에 어떤가.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공 들이고 투자한 결과가 나타나는가.
부모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가.
이 질문에 흔쾌히 ''그렇다''고 말하는 부모는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매사를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으로 키워져
부모에게서 독립하고자 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를 응석받이로 키우면서
책임을 묻는 엄격한 교육을 하지 못했다고 자책해도 뒤늦은 일이다.
세상의 각종 교육열풍을 따르느라고
노년의 생계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때늦은 일이다.
자기 생존을 해결하지 못하는,
몸만 큰 자녀를 보는 부모의 가슴 속은 답답하기만 하다.
한국전쟁 후 연탄가스와 조개탄 먼지 속에서
그 어려운 시절을 보낸 부모들이 과잉보호로
나약하고 게으른 사람을 키워냈단 말인가.
성취하고자 하는 동기와 욕구는 결핍 속에서 길러지고,
나태와 안일의 심성은 풍족 속에서 배양된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진리일 수 있다.
훌륭한 자녀가 반드시 부유한 부모밑과 풍족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부모, 결핍된 환경에서 더 강인하고 자립적인 인물로 성장할 수가 있다.
어머니들이여, 자녀들을 가능하면 스스로 해결하도록 자연 상태로 놓아두자.
학습과 경험의 장을 제공하더라도
어린이가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양만을 고려하자.
지나친 자극은 소화불량이나 비만을 부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부모나 사회가 제공하는 학습과 경험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자세와 노력이 중요하다.
어머니 치마폭 뒤에 숨은 자녀를 등 떠밀어 세상 속으로 내보내야 한다.
"네 인생을 네 힘으로 개척하고 책임지라"고 외치면서.
부모가 보호본능을 자제하고 자녀를 독립시키는 길만이 자녀를 구하는 길이며,
자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키우는 길이다.
李順炯 /서울대 교수.아동가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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