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5.jpg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반야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전체 높이 315㎝.

 

삼층석탑은 사찰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경내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서 1950년에 이전했다고 한다. 단층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형의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330cm×330cm, 높이 30­40cm 규모의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의 부재가 대체로 완전한 면을 보이고 있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였다. 먼저 네 모퉁이에 부재를 놓고, 동쪽과 서쪽면에는 중간에 짧은 판석을 놓아 조립했다. 지대석 상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단층 기단을 구성하는 기단면석은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상면의 갑석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77cm×74cm 크기의 장방형 액을 깊이 3cm정도로 굴착해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액의 주변에는 너비 7cm정도의 액을 돌려 갑석의 상면과 구분하고 있으며,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조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였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조출했다. 4매의 면석 중 동·서쪽 면은 본래의 부재이나, 남·북면은 새로 끼워 넣었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엔타시스 수법을 볼 수 있다. 3층 탑신은 현상으로 보아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다. 각 층을 구성하는 옥개받침은 1층으로부터 각각 5·4·4단을 이루고 있어 비교적 정형화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해 둔중한 면을 보이고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완만한 원호를 이루며 전각에 이르고 있어 합각부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상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과 석재의 결구수법에서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하겠다. 따라서 석탑은 비록 일부 부재가 결실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양식에서는 신라계 및 백제계 석탑의 양식을 수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반야사삼층석탑은 탑신부에서 일부 신재가 보충되었지만, 전체적인 면에서는 건립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반형 석탑의 양식은 크게 삼국의 양식을 계승한 석탑군(群)과 고려 나름대로의 양식을 구현한 2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있다. 그런데 이 석탑에서는 양자의 요소가 모두 검출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파악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 백제계 석탑의 양식 : 지대석과 기단갑석 상면에 각각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의 면석을 꼽을 수 있도록 홈을 조성했다. 이처럼 이 석탑에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 등장함은 반야사가 자리한 영동지역이 신라와 백제와의 교통로상에서 중요한 거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리적 여건이 작용한 결과로 생각된다.

- 신라계 석탑의 양식 : 초층탑신이 다른 고려시대의 석탑과는 달리 4매의 판석으로 조성되고 있다.

- 고려식 석탑의 양식 : 전체적인 구성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옥개석의 처마선이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이 예리하게 조성된 점은 고려시대 석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양식이다.

이 석탑은 비록 일부 신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