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별과 욕심을 떠나 하나가 되어야
투명한 감수성이란 바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눈으로 보면 세상만물은 모두 저마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우리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베토벤, 모차르트 또는 바하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그 작곡가들의 감수성과 우리의 감수성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사람은 황홀감에 빠지는가 하면 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작곡가나 연주가와 나 자신이 일체감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사물을 접했다 하더라도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될 때
그것이 지니는 가장 오묘한 아름다움을 캐낼 수 있고,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술품이란 그것을 만드는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작품에 절반의 혼밖에 부여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예술가도 자기 작품에 100% 온전한 아름다움을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소장자에 의해서, 감상하는 사람에 의해서,
그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채워지는 겁니다.
하나의 음악이 완벽한 완성을 이루려면
작곡자와 연주자와 감상자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아름다움을 경험하려면 도자기가 되었건 건축물이 되었건
그림이 되었건 모든 분별과 욕심을 떠나서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특히 여자들은 아름다움을 위해서 미용실도 가고 경대 앞에도 자주 설 겁니다.
아름다움에는 특별한 기준이나 표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저 뜰에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을 보십시오.
저 단풍은 작년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내일 역시 또 다를 겁니다.
순간순간 자기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내뿜고 있을 뿐입니다.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보면 그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입견이나 분별을 내면 그 아름다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스코리아, 미스유니버스 등등의 미인대회는 아름다움을 욕되게 하는 겁니다.
그들은 한갓 진열된 상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혼이 빠져나간 인형들이나 다름없습니다.
ㅡ 법정 스님의 [소유와 아름다움]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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