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름다움이 드러나
산과 들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습니다.
단풍 구경 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번잡한 일상사에서 잠시 벗어나 아름다운 일상을 찾아나서는 것은
우리들 삶에 커다란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의 삶에 아름다움이 없다면? 우리 삶이 너무 삭막하고 건조할 겁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들은 돈과 관계된 것에만 눈을 파느라,
경제타령 하느라고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을 등지고 삽니다.
아름다움은 삶의 기쁨이며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아름다움을 만나지 못한다면,
삶이 아름다움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은 아름다움이 그 삶을 받쳐주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소유는 욕망이기 때문에 거기 진정한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서울 봉은사에 살 때 일입니다.
글을 읽다가 백자 항아리를 하나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인사동에 가서 아는 거사님을 통해 약간 금이 간
옛날 항아리를 하나 구해다 놓았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주 애지중지했습니다.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불을 켜고 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거기에 항아리가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항아리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남이 갖고 있다니 나도 갖고 싶다는 욕심이었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아름다움은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거기 비로소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도 본인이 투명한 감수성을 갖추고 있다면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곤지암 ‘보원요’에서 전혀 유약을 바르지 않은,
천연 그대로 구워놓은 항아리 하나를 보았습니다.
유심히 보는 제 눈길을 느꼈던지 주인장 김 선생이
선뜻 안겨주어서 염치없이 받아 왔습니다.
그 항아리는 지금까지 곁에 두고 보고 있습니다.
볼수록 아름다움이 풍겨 나와 제 마음이 아주 정결해짐을 느낍니다.
작은 항아리지만 내가 욕심을 갖지 않고 보니
그 항아리가 주는 아름다움을 수시로 캐낼 수 있는 겁니다.
ㅡ 법정 스님의 [소유와 아름다움]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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