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정

아버지의 현주소

문성식 2015. 6. 5. 17:06


    아버지의 현주소 이 세상에 많고도 하도 많은 호칭들 중에서 어머니라는 호칭보다 더 자애롭고 더 포근하고 더 눈물겹게 정겨운 호칭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아버지 하면 근엄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뭔가 두려운 존재로 묘사된다. 아버지 어머니 어느 한 쪽의 자정이 더 얇고 두터움이 없다 할지라도, 모든 동물은 부성애보다는 모성애를 더 따르는 게 본능이이라 여겨진다. 미물인 연어도 그 태어난 모천을 찾아 5천키로 라는 멀고먼 길을 돌아 찾아오는 귀소본능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미물에 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천륜으로는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다 하지만, 어머니 배속에서 열 달을 성장하다 태어났고, 그 젖을 먹고 그 체취를 맡으며 자랐으니, 그 어머니의 자정이야 어찌 다 말로서 다 표현할 수가 있으리. 그러나 아버지도 나를 위해 덥다 춥다 계절의 감각마저 잊으신 채, 온갖 고난 홀로지고 자기의 모든 것 희생 하며, 먹고 싶고, 하고 싶고, 입고 싶은 것 참아가며, 병들어 괴로워도 쉬어 보지 못 하고, 근심걱정을 홀로 삭이며, 슬픔도 가슴으로 울고, 괴로움을 웃음으로 삭이시며 살아오셨는데도, 어머니의 생육의 깊은 정은 부각되어 언제나 노래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중후한 정은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성애에 그늘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폭력적이고 술주정뱅이, 계집질에다 노름꾼으로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물론 그와 같은 아버지가 없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한두 사람의 잘못이 전체 아버지의 대명사 일순 없다. 그렇다고 어머니도 전부가 현모양처일순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사모곡은 수 없이 불렀으나, 사부곡은 들어볼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는 예부터 엄부자모의 유교적인 환경의 탓도 있겠지만, 현세에 와서 반 성차별적으로 여성의 권위가 너무 신장되고, 또한 각종 연출(演出)에 의하여 아버지란 존재를 폭력적으로 묘사해서 만들어진 결과라 생각한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부모님 은혜 호천망극인데, 세상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편을 갈라놓고 있는데, 거기에다 오늘날 여성 상위시대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가족을 부양하는 의무는 있어도 경제권마저 상실하고, 때론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한갓 머슴에 지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처자식을 외국에 보내고, 그들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등뼈 휘어가며 일하는 머슴 같은 외로운 기러기가 얼마나 많은가? 오늘도 무거운 가족의 짐을 지고, 가슴으로 웃고 울며 살아가는 고독한 아버지들이 가는 길을 한번 뒤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