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1_0075.jpg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7.2m.

화강암 석재로 건조한 이 석탑은 금산사 경내의 북편에 송대라고 불리는 높은 지대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석종(石鐘) 모양의 사리계단(舍利戒壇)인 금산사석종(보물 제26호)이 있고, 이 계단의 남쪽 정면에 이 석탑이 서 있는데, 이렇듯 계단 앞에 석탑을 건립한 것은 사리신앙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서, 원래의 위치에 지금까지 그대로 서 있음이 확실하다.

 

기단부는 10여 개의 장대석으로 지대를 구축하고 그 위에 조립하였는데, 여러 개의 석재로 짜여진 하층기단 면석 각 면에는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중앙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 1주씩이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하층기단 갑석도 여러 장의 판석으로 결구하여 덮었는데, 그 위의 상층기단을 받친 굄대는 상면에 호형(弧形)이나 각형(角形)으로 조출(彫出)하지 않고, 별개의 석재로 여러 장의 판석을 결구하여 구성하였으며, 이 1단의 높다란 굄으로써 상층기단 면석을 받치고 있다.

상부 기면석(基面石)도 여러 개의 판석으로 조립하였는데, 각 면의 우주석과 중앙의 1 탱주석, 그리고 탱주로 나뉜 2장의 면석이 모두 다른 돌로 이루어져 주목된다. 여러 장의 판석으로 짜여진 갑석은 하면에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없고 상면과 같이 평평할 뿐이다.

 

탑신부는 초층의 옥신과 옥개석만은 단일석이 아니고, 2층 이상은 옥신과 옥개가 각각 1석씩으로 조성되었는데, 초층 옥신이 여러 개의 석재로 조립되고 옥개가 2석으로 이루어졌음은 기단부 구성수법의 여파로 추측된다.

 

초층 옥신은 좌우에 양쪽 우주가 모각된 판석을 세우고, 그 사이 앞뒤에 면석을 끼웠는데 우주는 넓은 편이다. 그리고 2층 이상 옥신석의 우주도 넓적하게 각출되었으며, 체감비율은 완만한 편이다. 옥개석은 하면에 낙수홈이 없고, 추녀 밑은 반곡(反曲)을 그리면서 넓어졌으며, 그 안쪽에 낮고 좁은 받침이 3단씩 각출되었다.

 

그리고 또한 추녀 밑은 중앙에서 양쪽 귀퉁이를 향하여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반곡되었다. 낙수면의 경사는 위에서는 급한 편이나, 중간부터는 완만해졌으므로 각 합각도 전각에 이르면서 완만해진다.

 

네 귀퉁이의 전각에 반전이 있어서 경쾌한 탑신을 이루고 있으나, 추녀가 직선이 아니고 전체가 반곡을 이루고 있어서 오히려 경박한 감이 없지 않다. 각 옥개석 상면에 1단의 각형 굄을 각출하여 그 위의 옥신을 받치고 있는데, 이러한 1단 굄은 조성시대가 훨씬 후대임을 뜻하는 양식의 하나라고 추측된다.

 

상륜부는 노반석부터 정상부의 보주까지 온전히 보존되었는데, 노반이 신라의 일반형과는 약간 다른 형태로 신부(身部) 각 면에 양쪽 우주가 있고, 넓은 각석형이 덮여 있으나 하면에 받침은 없으며, 모두 규모가 커져서 마치 6층의 탑신부로 오인하기 쉬울 정도이다.

노반 위에는 이형(異形)의 복발이 있고, 그 위에 앙련(仰蓮)이 새겨진 앙화석이 놓여 있으며, 다시 보륜을 얹은 다음 정상에는 보주를 꽂고 있는데, 이렇듯 석제 상륜(相輪)의 양식이 전통적인 것과 다른 점은 후대에 이르러 외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그 기본형이 신라식 석탑을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에서는 다소 색다른 면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즉, 하층기단이 좁아졌고, 상하기단 갑석 위에 별개의 돌을 끼운 점과 옥개석 추녀 밑의 반곡 등은 신라양식과는 달리 후대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탑의 건조연대는 이 탑의 조형양식이나 각 부재의 돌다듬기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석탑 위에 배치된 봉로대(奉爐臺)는 후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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