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3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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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율원리 907-10 |
소재지 | 칠성면 |
지정일 | 1984.01.10 |
수량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김기웅 |
관리자 | 김기웅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七星面 율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일명 칠성고택으로도 불리며 대문간채·중문간채·사랑채·곳간채·헛간채·안채가 구비되어 있다.
이중으로 된 안채는 18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것이며, 사랑채나 중문채·대문채 등은 약 1백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잘 짜인 규모에 집을 지은 기법도 옛 법도에서 벗어나 있지 않아서 남도 향리에 조영된 사대부 제택(第宅)의 한 모습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좋은 숲을 갖추고 있는 낮은 동산을 배경으로 양지바른 남향에 국(局)을 이룬 터를 점정(占定)하고 자좌오향(子坐午向)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집터는 인근에서 손꼽히는 명기(名基)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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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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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대청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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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대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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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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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
들을 앞에 두고 길에 면한 길다란 행랑채의 가운데 우뚝 선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바깥마당에 이른다. 바깥마당 서쪽에는 또 하나의 광채가 길게 배치되고 동쪽은 공간감을 형성키 위해 앞의 행랑채가 뒤로 머리를 꼬부렸다. 한대(臺) 높게 마련된 사랑공간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왼쪽에 바깥마당으로 향한 문간채 중문을 ㄹ자로 꺾어 들어서면 가운데 마당이 나타난다. 가운데 마당 서쪽에는 중문간채가 꼬리를 돌려서 ㄴ자로 앉았다. 다시 안채 맞은편에 배치된 광채의 서쪽간 내문(內門)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다다른다. 안채는 안마당을 둘러싸서 ㅁ형으로 배치되고 사랑채는 안 광채 앞에 중문간채와 나란히 배치되는데 ㅗ자 모양으로 만들어서 꽁지를 안채 동쪽 날개와 맞춰 오른쪽을 막고 서쪽은 뒤광채와의 사이에 담장을 둘러 샛마당을 구성했다. 사랑마당은 사랑채 앞에 마련되었는데 바깥마당 보다 한 대 정도 높으며 후원(後園)은 사랑채 동쪽에 조성되었다. 샛마당과 안마당, 사랑후원과 안마당, 가운데(중)마당과 사랑마당 사이에는 각각 샛문이 기묘하게 만들어져서 각 공간의 폐쇄감을 높였다. 특히 사랑마당과 바깥마당을 일각대문으로 연결하여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별당형식의 공간구성을 보인 점이 흥미롭다. 이와 같이 이 집은 크고 작은 공간들이 여러 가지 형태의 대문들로 연결되어 아름다운 공간율동을 구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정남향(자좌오간(子坐午間))집이다.
안채는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도방식의 공간구성을 하였다. 곧 몸채 서쪽 귀에 세로로 긴 3간 부엌을 두고 도리간으로 2간 안방, 2간 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치했다. 안방과 건넌방 앞까지의 사이는 툇마루를 시설했는데 건넌방 앞에도 두어서 통로로 이용하는게 특이하다. 대청 앞에는 문없이 바로 마당으로 개방했으며 안방과 대청 사이는 분합문으로 구분했다. 부엌 상부에는 뒤의 2간만 다락을 만들고 서쪽으로 헛기둥을 내밀어서 살강을 설치했다. 살강 위에는 밖으로 비를 막기 위해 따로 눈썹지붕을 해서 이은게 재미있다. 안방과 건넌방 뒤쪽 역시 헛기둥을 세워 반침을 만들었으며 웃방과 대청 사이에는 쪽마루를 깔았다. 서쪽 날개에는 부엌 앞에 구들을 시설했으며 동쪽 날개에는 간반(間半) 크기의 작은사랑, 작은부엌(상부 다락), 광으로 구성되었다. 건넌방과 작은사랑 동쪽에도 조그만 쪽마루가 깔렸다.
구조(構造)는 몸채가 1고주5량(대청 중앙은 긴보 5량), 날개는 3량으로 처리했고 지붕은 골기와 합각(合閣)인데 날개 앞까지 합각을 만든 것이 특색이다. 댓돌은 외벌대 자연석(自然石)이고 네모꼴 높은주초이며 네모기둥이다. 도리는 납도리인데 종도리와 처마도리에만 장혀를 받치고 중도리에는 없다. 외진주 상부에는 단이(보아지)로 대들보를 보강(補强)했으며 대공은 동자주를 했는데 대청(大廳) 중앙만 사다리꼴이다.
사랑채는 1900년(年) 전후(前後)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며 특이한 평면구성을 보인다. 서쪽에 건넌사랑을 두고 대청, 좌우 2간(間)의 큰사랑, 맨 동쪽에 약간 높혀 누마루를 시설했다.
큰사랑과 건넌사랑까지의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고 대청(大廳)은 전면으로 개방(開放)되었다. 건넌사랑과 윗사랑방은 각각 대청으로 불발기 분합문(分閤門)을 달아 틀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큰사랑은 윗사랑, 샛사랑으로 구분되는데 샛사랑 뒤로 꺾어져서 아랫사랑방을 두었다. 꼬리 맨 뒷부분이 사랑부엌이다. 큰사랑의 각방은 미닫이문으로 구분될 뿐 개방(開放)이 가능하다. 건넌사랑 뒤에는 헛기둥을 세워 반침을 만들고 대청, 윗사랑, 아랫사랑 뒤쪽으로는 쪽마루가 놓였다.
구조는 몸채가 1고주5량이고 꼬리는 3량으로 처리했으며 지붕은 골기와 ·합각지붕 ·겹처마인데 꼬리부분은 박공지붕으로 처리되었다. 댓돌은 화강암 장대석 외벌대이고 네모꼴 높은주초, 네모기둥이며 장혀받친 납도리집이다. 안채와 다른 점은 대들보를 받치는 단이(보아지)가 없는 점이다.
나머지 건물은 20세기(世紀) 초(初)에 지어졌으며 모두 맞걸이 3량구조의 박공지붕집이다. 안의 광채는 대문간과 3개의 광으로 구성된 바 모두 빈지널로 벽을 했다. 중문간채는 모두 9간(間)인데 전면에는 대문간과 헛간을, 꼬리쪽은 구들이 배치(配置)되며 행랑채는 11간(間)으로 가운데 솟을대문과 양옆의 광들과 구들+대청으로 이루어졌다. 바깥 광채는 6간(間)인데 양 끝에 구들이 배치(配置)되고 나머지는 광으로 구성되었다.
사랑채의 합각(合閣)에는 전돌로 완자무늬를 아로새겼으며 샛마당 광채 벽에는 사랑에서 바라볼 수 있게 수복(壽福)무늬와 팔각형 겹곡두무늬가 상긋법으로 그려져 있고 기타 담장의 문양도 화문담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둑담도 인상적(印象的)이다.
안채는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도방식의 공간구성을 하였다. 곧 몸채 서쪽 귀에 세로로 긴 3간 부엌을 두고 도리간으로 2간 안방, 2간 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치했다. 안방과 건넌방 앞까지의 사이는 툇마루를 시설했는데 건넌방 앞에도 두어서 통로로 이용하는게 특이하다. 대청 앞에는 문없이 바로 마당으로 개방했으며 안방과 대청 사이는 분합문으로 구분했다. 부엌 상부에는 뒤의 2간만 다락을 만들고 서쪽으로 헛기둥을 내밀어서 살강을 설치했다. 살강 위에는 밖으로 비를 막기 위해 따로 눈썹지붕을 해서 이은게 재미있다. 안방과 건넌방 뒤쪽 역시 헛기둥을 세워 반침을 만들었으며 웃방과 대청 사이에는 쪽마루를 깔았다. 서쪽 날개에는 부엌 앞에 구들을 시설했으며 동쪽 날개에는 간반(間半) 크기의 작은사랑, 작은부엌(상부 다락), 광으로 구성되었다. 건넌방과 작은사랑 동쪽에도 조그만 쪽마루가 깔렸다.
구조(構造)는 몸채가 1고주5량(대청 중앙은 긴보 5량), 날개는 3량으로 처리했고 지붕은 골기와 합각(合閣)인데 날개 앞까지 합각을 만든 것이 특색이다. 댓돌은 외벌대 자연석(自然石)이고 네모꼴 높은주초이며 네모기둥이다. 도리는 납도리인데 종도리와 처마도리에만 장혀를 받치고 중도리에는 없다. 외진주 상부에는 단이(보아지)로 대들보를 보강(補强)했으며 대공은 동자주를 했는데 대청(大廳) 중앙만 사다리꼴이다.
사랑채는 1900년(年) 전후(前後)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며 특이한 평면구성을 보인다. 서쪽에 건넌사랑을 두고 대청, 좌우 2간(間)의 큰사랑, 맨 동쪽에 약간 높혀 누마루를 시설했다.
큰사랑과 건넌사랑까지의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고 대청(大廳)은 전면으로 개방(開放)되었다. 건넌사랑과 윗사랑방은 각각 대청으로 불발기 분합문(分閤門)을 달아 틀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큰사랑은 윗사랑, 샛사랑으로 구분되는데 샛사랑 뒤로 꺾어져서 아랫사랑방을 두었다. 꼬리 맨 뒷부분이 사랑부엌이다. 큰사랑의 각방은 미닫이문으로 구분될 뿐 개방(開放)이 가능하다. 건넌사랑 뒤에는 헛기둥을 세워 반침을 만들고 대청, 윗사랑, 아랫사랑 뒤쪽으로는 쪽마루가 놓였다.
구조는 몸채가 1고주5량이고 꼬리는 3량으로 처리했으며 지붕은 골기와 ·합각지붕 ·겹처마인데 꼬리부분은 박공지붕으로 처리되었다. 댓돌은 화강암 장대석 외벌대이고 네모꼴 높은주초, 네모기둥이며 장혀받친 납도리집이다. 안채와 다른 점은 대들보를 받치는 단이(보아지)가 없는 점이다.
나머지 건물은 20세기(世紀) 초(初)에 지어졌으며 모두 맞걸이 3량구조의 박공지붕집이다. 안의 광채는 대문간과 3개의 광으로 구성된 바 모두 빈지널로 벽을 했다. 중문간채는 모두 9간(間)인데 전면에는 대문간과 헛간을, 꼬리쪽은 구들이 배치(配置)되며 행랑채는 11간(間)으로 가운데 솟을대문과 양옆의 광들과 구들+대청으로 이루어졌다. 바깥 광채는 6간(間)인데 양 끝에 구들이 배치(配置)되고 나머지는 광으로 구성되었다.
사랑채의 합각(合閣)에는 전돌로 완자무늬를 아로새겼으며 샛마당 광채 벽에는 사랑에서 바라볼 수 있게 수복(壽福)무늬와 팔각형 겹곡두무늬가 상긋법으로 그려져 있고 기타 담장의 문양도 화문담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둑담도 인상적(印象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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