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3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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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북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190 |
소재지 | |
지정일 | 1984.01.10 |
수량 | 1동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이종우 |
관리자 | 이종우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안채의 상량문(上樑文)에 「숭정(崇禎) 기원후 사신유(四辛酉) 오월 초삼일 진시(辰時) 입주상량(立柱上樑) 건좌손간(乾坐巽間)」이라 하였으므로 1861년에 지은 것임을 알겠다. 그러나 사랑채, 기타 건물은 1930년대에 지었지 않았나 추측한다.
ㄱ자형집인 안채가 뒤쪽으로 앉고 안마당 앞에 행랑채가 一자형으로 놓였다. 행랑채 동쪽에 1간 사이하고 역시 一자형 사랑채가 배치된다. 사랑채 동쪽은 언덕으로 연결되며 앞은 넓은 바깥마당이 된다. 바깥마당은 담장 없이 외부로 개방되었지만 서쪽 측면에서 진입토록 계획되었다. 행랑채 동쪽 끝에 난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를 경계짓는 담장이 ㄱ자로 축조되어 조그만 중마당을 만들며 대문에 축을 맞춰 쪽대문이 만들어졌다. 안채 동쪽에는 곳간채가, 서쪽에는 광채가 세워졌다.
안채는 가장 평범한 중부지방의 민가 곱은자형 평면 구성을 갖는다. 서쪽 앞으로부터 부엌, 안방, 웃방, 꺾어져서 가운데에 2간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열된다. 그러나 부자집의 전형적인 것이어서 앞뒤 좌우 머릿퇴가 모두 있으며 부엌 측벽의 아랫퇴만 없다. 머릿퇴와 서쪽퇴에는 툇마루가 놓이고 동서 양쪽 모퇴에는 조그만 토광이 만들어졌는데 바닥에는 우물마루가, 벽은 판장벽으로 막았다.
부엌은 앞뒤간을 터서 크게 쓰며 부뚜막은 안방과 부엌사이 빈간에 시설되는데 상부에는 다락과 벽장이 만들어졌다.
안방은 웃방과 4짝미서기로 구분되며 안마당 쪽으로 겹창이 만들어졌다. 웃방은 대청과 4짝분합문으로 연결되며 뒷퇴 샛벽에는 세살 출입문이 달렸다. 이것이 양반가옥에서 가장 일반적인 창호형태이다. 대청은 전후퇴가 모두 틔였으며 가운데 앞 고주는 생략했지만 뒤의 고주는 그대로 박았다. 마당쪽은 개방되었고 안방 앞의 툇마루를 통해 부엌으로 동선이 연결된다. 건넌방은 측벽에 겹창을 둬서 머릿퇴로 연결시키며 뒷퇴에는 따로 골방을 두어서 대청으로만 통하도록 계획되었다. 건넌방 앞은 약간 디밀어 함실부엌을 만들고 상부에는 벽장을 달았다.
구조는 모두 2고주5량집으로 되었는데 대청 중앙만 1고주 5량으로 되었다. 정다듬한 외벌대 화강암 댓돌을 돌리고 낮은 덤벙주초를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 반깎기한 납도리를 돌리고 장혀를 겹쳤으며 보 밑에는 단이로 받쳤다. 그러나 고주가 들어가는 위치에는 조금 다르게 처리했다. 퇴보가 연결되어 단이처럼 대들보를 받치고 열십자로 거꾸로 사다리꼴의 단장혀가 맞춰지며 그 위에 헛창방이 보내진다. 헛창방 위에 다시 동자주를 세우고 중도리를 다른 도리와 같이 결구(結構)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중도리 위치에 이중으로 헛창방이 가는 것이다. 종도리도 장혀만 받쳤으며 대공은 동자주꼴의 판대공이다. 특기할 것은 종보가 일반적인 집보다 휠씬 길게 처리된 것인데 이것은 지붕의 물매가 낮음을 의미한다. 대들보는 둥근꼴이고 종보는 모죽인 네모꼴이다. 이 모두가 민가의 가구수법(架構手法)을 보이고 있다. 지붕은 합각골기와인데 ㄱ자형 집이기에 합각이 3개 생긴다. 합각에 별다른 장식은 없다.
사랑채는 3간 전후좌우퇴집인데 사랑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고 앞퇴와 머릿퇴에 툇마루를 깔았다. 역시 뒤쪽 모퇴에는 장방(藏房)을 만들어 둔게 특이하다. 그러나 건축년대는 1930년대 정도인 듯 납도리의 장혀 밑에 소로를 끼우고 헛창방을 보내고 있다. 네모기둥이고 높은 주초에 자연석 난층쌓기 높은 댓돌을 썼으며 지붕은 합각골기와지붕이다.
행랑채는 맞걸이 3량8간집으로 동쪽으로 부터 대문간, 헛간, 작은구들, 큰구들광, 외양간, 잿간의 차례로 배치되었는데 그것의 이용은 약간 변형된듯싶다. 건축년대도 20세기 초 정도로 추측된다. 곳간채와 광채는 농가의 경영시설로서 20세기 중반 이후에 지은 것이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공간의 구성과 조경이다. 바깥마당의 서쪽 측면에서 사랑채와 동쪽 곁의 회나무를 바라보면서 바깥마당에 이르고, 행랑채 동쪽 끝에 시설된 대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마당의 아담한 공간을 감지하며 담장에 시설된 일각대문(중문)을 지나면 안마당에 들어선다. 큰 공간에서 작은공간, 다시 중간공간 이러한 공간의 구성과 전개는 율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덧붙여서 사랑채 동쪽의 수령(樹齡) 3∼400년이 되는 회나무, 안마당 한쪽 화단에 심어진 모과나무와 향나무, 뒤꼍의 감나무 등은 전통적 민가 정원기법에 따라 꾸몄으며 별다른 정원시설 없이 고졸한 느낌이 들게한다.
반간 크기의 고간(庫間)과 주위에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마루방 뒤에 갓방이 놓이고 그 뒤에 다시 1간짜리 구들이 마련되며 가운데에는 뒤뜰과 연결되는 상하 2간크기의 부엌이 만들어졌다. 나머지는 모두 광인데 상부에는 부엌까지를 포함해서 넓다란 다락이 시설되었고 이것은 뒤툇마루에서 올라갈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이것의 구조는 대체로 사랑채와 비슷하나 특이한 점은 뒷퇴를 두지 않고 앞퇴만 두면서 7량으로 처리하고 이것을 굽은 부재(목량(木梁))를 이용하여 앞뒤지붕의 물매와 길이를 맞추고 있는 점이다. 또한 이때의 구조적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홍예보를 써서 2중으로 보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곧 장혀를 받친 종도리를 사다리꼴 판대공으로 종보 위에 얹었다. 종보는 중상도리와 맞춰지며 밑의 장혀는 중도리 사이의 홍예보 꼬리와 맞춰져서 무지개를 하고 중하도리와 머리를 맞추었다. 이때 중상도리는 위동자주로 받쳐서 대들보 위에 올리는데 대청 중앙이 아닌 경우, 뒤의 동자주는 앞뒤 대들보를 얹은 고주가 받쳤다. 고주머리는 가름장맞춤으로 뒷보를 끼우고 그 위에 대들보 꼬리를 긴장부로 끼워 맞추었으며 다시 앞중하도리는 홍예보와 맞추고 홍예보 밑바닥을 대들보 위에 얹었다. 앞중하도리 밑에는 장혀로 받치고 소로를 끼워서 뜬장혀를 보내고 무지개꼴 퇴(退)보의 꼬리와 맞추며 뒤중하도리는 짧은 동자주로 받쳐 뒷대들보 위에 올리고 뒷평주에 가서 평범하게 결구한다. 말하자면 상하중도리사이에 홍예보를 써서 2중보를 둔 것이 특이하고 나머지 기법은 사랑채와 같다. 조금 다른 점은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두리기둥을 쓴 반면 안채는 전면만 두리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행랑채는 맞걸이 3량 맞배지붕인데 북동쪽 끝부분만 작은 합각으로 처리했다. 평면은 전면 14간, 북쪽 날개 9간, 대문간을 포함해서 남쪽날개는 9간으로 이루어졌다. 솟을대문 옆에는 문간방이 마련되며 서남쪽 모퉁이에는 사랑채와 연결하는 중문간이 시설되었다. 나머지는 몇 개의 구들과 광간으로 만들어졌다.
사당채는 다시 안마당에 축을 직각으로 꺾어서 행랑채의 북쪽에 사랑채와 축을 나란히해서 배치되었다. 3간의 솟을 삼문을 전면으로하고 뒤로 3간의 사당채가 놓였다. 사당마당 서쪽에는 3간 제수(祭需)채로 구성되는데 제수채에서 사당채까지 ㄱ자로 꺾어진 복도채가 연결된다. 전면 삼문을 가운데로 하여 담장이 둘러쳐졌다.
삼문은 맞배지붕이며 3간 모두 대문을 시설했다. 사당은 전면에 분합문(分閤門)을 달고 합각지붕이며 마루를 깔았다. 제수채는 남쪽에 부엌을 두고 뒤로 2간구들을 놓았으며 구들 앞은 쪽마루가 시설되었다. 복도채는 벽과 지붕을 갖추어 비바람칠 때도 의례를 거행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이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나는 시설물이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 및 사당채의 세 공간으로 구획하여 내담을 둘러치고 이를 밖으로 다시 크게 둘러싸서 또 하나의 외담을 만들어 구획한 점이 특이하다. 특히 정원은 사랑채의 경우 전통적 맛을 잃지 않게 조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919∼1921년 사이에 지어진 이 집은 전통적 건축기법에서 벗어나서 건물의 간살이나 높이 등을 크게하는 경향으로 변화를 보이던 시기의 대표적 지주계층의 살림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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