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3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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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5 |
소재지 | 장안면 |
지정일 | 1984.01.10 |
수량 | 1곽 |
시대 | 일제강점기 |
소유자 | 선병국 |
관리자 | 선병국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속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큰 개울을 이루는데, 개울 중간에 돌과 흙이 모여 삼각주를 이루니 배의 형국 같은 섬이 되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중앙에 엄청나게 큰 기와집이 있으니 여기가 인근에서 제일 가는 부잣집이다. 또한 이웃의 영재들을 뽑아 사비를 들여 교육시킨 선각자의 집으로 소문난 선(宣)씨 댁이다.
1919년에서 1921년 사이에 당대 제일의 목수들을 가려 뽑아 후하게 대접하면서 이상형의 집을 지었다고 한다. 요긴하게 이용될 공간이 집안에 망라되도록 설계하였다. 이 시기에는 개화의 물결을 타고 이른바 개량식 한옥의 구조가 시험되던 때였다.
그래서 재래식 한옥으로 질박하게 짓기보다는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로운 한옥의 완성을 시도해 본 것이다. 이 집은 그런 시대적인 배경에서 특성 있게 지어졌으므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냇물이 모이는 너른 삼각주의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먼 바깥에서는 집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자연경관과 집이 어울려 대단히 아름다운 환경을 이루고 있다. 특이한 점은 사랑채, 안채, 사당채를 둘러싸고 있는 안담 바깥으로 널찍하게 외담을 둑담으로 두껍고 높게 둘러치고 있는 점이다.
사랑채는 정남향하고 있으며 사랑마당 앞에 조그맣고 예쁘장한 내대문(內大門)이 세워졌다. 이것을 중앙으로 하고 사랑채를 둘러싸는 네모 안담을 두르고 동남쪽 모퉁이에 안에서의 시선을 피하면서 뒷간이 자리한다. 사랑채와 중문의 축을 맞추어서 남쪽에는 3칸 대문채가 있었는데 지금은 무너진 흔적만 남겼다. 대문간 앞은 넓은 마당이 마련되고 안산(案山)대신 조성된 소나무 숲속에 이 집 할아버지 선씨의 효자정각(孝子旌閣)이 직각축으로 세워져서 집의 어귀를 형성한다. 효자정각은 단칸 다포(多包)합각(合閣)지붕인 바 단칸 맞배대문을 두고 막돌담장을 둘렀다. 외대문은 3칸솟을대문의 전형인듯 싶으며 내대문은 일각대문으로서 빗장이 이중으로 되었고 둥근화반을 끼우고 위에만 소로를 받친 점이 재미있다. 사랑채는 H자형 평면으로서 뼈대를 2고주 7량으로 처리하여 몸채가 정면 4칸, 보간 2.5칸으로하고 날개채가 정면 2칸, 측면 5.5칸으로해서 앞으로 몸채보다 2칸을 내밀도록 계획했다.
몸채에는 앞뒤로 툇마루를 두면서 날개에는 앞과 안쪽에 툇마루를 시설했다. 몸채 가운데는 너른 3칸 대청과 상하 2칸의 작은사랑을 배치했는데 대청앞은 분합문(分閤門)을 달아 개방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서쪽 날개에는 앞쪽에 서루(書樓)(아래는 불을 지필 수 있는 굴묵)와 뒤쪽으로는 큰 사랑을 두었다. 동쪽 날개에는 앞으로 부터 골방, 약방, 구들, 마루를 시설했으며 동쪽 측벽에 쪽마루를 내달고 몸채 외진주 줄에 맞추어 쪽대문을 시설해서 앞뒤의 이용을 구분짓고 있다. 지붕은 골기와에 합각지붕이며 홑처마이다. 굴도리에 장혀를 받치고 뜬장혀를 보내서 소로를 끼웠다. 두리기둥위에 커다란 주두(柱頭)를 얹었고 주초(柱礎)는 팔각인데 약간 높다. 기단은 세벌인데 위에만 장대석 갑석을 돌리고 아래 2단은 네모꼴 면석으로 쌓았다. 날개쪽 툇마루 앞에는 난간을 두르고 아(亞)자 살로 장식했다. 창문들은 비교적 살이 가늘고 장식적인 바 연약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구조기법은 안채와 같다.
안채는 사랑채의 축에서 직각으로 꺾어서 서향(西向)하여 배치되며 역시 H자형 평면을 갖는다. 이것을 ㄷ자형 행랑채가 넓게 둘러싸서 안마당 공간을 형성한다. 행랑채의 남쪽 끝에는 ㄱ자형으로 꺾어서 솟을대문을 덧달고 내대문을 시설한 바 외대문에서 ㄹ자로 꺾어 안채에 이르도록 계획되었다. 이것을 더욱 곡진하게 만들기 위해서 대문 앞에는 ㄴ자 담장을 둘러쳐서 대문 앞을 가로 막았다. 안채는 몸채가 정면 4칸, 보간 2.5칸이고 날개채가 정면 4칸, 측면 6칸으로 해서 앞은 1.5칸, 뒤는 2칸을 몸채보다 내밀도록 계획했다. 몸채에는 가운데 넓은 2칸에 대청을 배치하고 오른쪽에 상하 2칸의 안방과 왼쪽에 역시 상하 2칸의 건넌방이 놓였다. 앞은 툇마루이고 뒤는 쪽마루가 시설되며 이것은 오른쪽 날개 뒤까지 연결시켜서 부엌마루, 부엌방과 동선을 이어준다. 오른쪽 날개에는 부엌 앞에 모방과 툇마루가 있고 뒤쪽에 역시 상하 2칸의 부엌마루와 부엌방이 만들어졌다. 왼쪽 날개에는 몸채 툇마루와 연결해서 조그만 대청과 창호가 시설된 마루방이 마련되고 그 앞은 반칸 크기의 곳간(庫間)과 주위에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마루방 뒤에 갓방이 놓이고 그 뒤에 다시 1칸짜리 구들이 마련되며 가운데에는 뒤뜰과 연결되는 상하 2칸 크기의 부엌이 만들어졌다. 나머지는 모두 광인데 상부에는 부엌까지를 포함해서 넓다란 다락이 시설되었고 이것은 뒤툇마루에서 올라갈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이것의 구조는 대체로 사랑채와 비슷하나 특이한 점은 뒷퇴를 두지 않고 앞퇴만 두면서 7량으로 처리하고 이것을 굽은 부재를 이용하여 앞뒤 지붕의 물매와 길이를 맞추고 있는 점이다. 또한 이때의 구조적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홍예보를 써서 2중으로 보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곧 장혀를 받친 종도리를 사다리꼴 판대공으로 종보 위에 얹었다. 종보는 중상도리와 맞춰지며 밑의 장혀는 중도리 사이의 홍예보 꼬리와 맞춰져서 무지개를 하고 중하도리와 머리를 맞추었다. 이때 중상도리는 위동자주로 받쳐서 대들보 위에 올리는데 대청중앙이 아닌 경우, 뒤의 동자주는 앞뒤 대들보를 얹은 고주가 받쳤다. 고주머리는 가 름장맞춤으로 뒷보를 끼우고 그 위에 대들보 꼬리를 긴장부로 끼워 맞추었으며 다시 앞중하도리는 홍예보와 맞추고 홍예보 밑바닥을 대들보 위에 얹었다. 앞중하도리 밑에는 장혀로 받치고 소로를 끼워서 뜬장혀를 보내고 무지개꼴 툇보의 꼬리와 맞추며 뒤중하도리는 짧은 동자주로 받쳐 뒷대들보 위에 올리고 뒷평주에 가서 평범하게 결구(結構)한다. 말하자면 상하중도리사이에 홍예보를 써서 2중보를 둔 것이 특이하고 나머지 기법은 사랑채와 같다. 조금 다른 점은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두리기둥을 쓴 반면 안채는 전면만 두리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행랑채는 맞걸이 3량 맞배지붕인데 북동쪽 끝부분만 작은 합각으로 처리했다. 평면은 전면 14칸, 북쪽 날개 9칸, 대문간을 포함해서 남쪽날개는 9칸으로 이루어졌다. 솟을대문 옆에는 문간방이 마련되며 서남쪽 모퉁이에는 사랑채와 연결하는 중문간이 시설되었다. 나머지는 몇개의 구들과 광칸으로 만들어졌다.
사당채는 다시 안마당에 축을 직각으로 꺾어서 행랑채의 북쪽에 사랑채와 축을 나란히해서 배치되었다. 3칸의 솟을 삼문을 전면으로하고 뒤로 3칸의 사당채가 놓였다. 사당마당 서쪽에는 3칸 제수(祭需)채로 구성되는데 제수채에서 사당채까지 ㄱ자로 꺾어진 복도채가 연결된다. 전면 삼문을 가운데로 하여 담장이 둘러쳐졌다. 삼문은 맞배지붕이며 마루를 깔았다. 제수채는 남쪽에 부엌을 두고 뒤로 2칸 구들을 놓았으며 구들 앞은 쪽마루가 시설되었다. 복도채는 벽과 지붕을 갖추어 비바람칠 때도 의례를 거행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이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나는 시설물이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 및 사당채의 세 공간으로 구획하여 내담을 둘러치고 이를 밖으로 다시 크게 둘러싸서 또 하나의 외담을 만들어 구획한 점이 특이하다. 특히 정원은 사랑채의 경우 전통적 맛을 잃지 않게 조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919∼1921년 사이에 지어진 이 집은 전통적 건축기법에서 벗어나서 건물의 간살이나 높이 등을 크게하는 경향으로 변화를 보이던 시대의 대표적 지주계층의 살림집이라 하겠다.
안채 정면
효열각
효열각
행랑채
사당
사랑채 후원
사랑채 창호
사랑채 대청
사랑채 정문
소슬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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