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3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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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420-2 |
소재지 | 심천면 |
지정일 | 1984.01.10 |
수량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송재문 |
관리자 | 이갑성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 집은 명기(銘記)가 있는 망와의 기록에 따라 1885년에 지어진 건물로 생각된다. 재미있는 것은 충청도와 일부 경기도에서만이 이와 같은 기명와(記銘瓦)를 가끔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건물은 남향( 자오좌향(子午坐向))한 안채에 수직축을 맞춰 전면에 H자 모양의 사랑채를 놓고 안마당 동쪽에는 곳간채를 배치하였는데 안채와 사랑채와의 사이에 있었던 행랑채, 광채 등은 20세기 초(1920년대)에 멸실되고 대신 지금은 농가에 필요한 임시 경영시설물들이 들어서 있다. 안채는 남도형식의 평면구성을 이루어 서 부엌, 안방(아랫방), 웃방, 2간대청, 건넌방의 차례로 배열되었다. 말하자면 6간 전후퇴집인 셈인데 아랫퇴는 처마 밑을 이용해서 헛기둥만 세워서 만들었다. 머릿퇴는 만들지 않았는데 사랑채가 따로 있는 까닭이다.
부엌은 앞퇴에 봉당을 만들고 안으로 들어와서 벽을 만들며 부뚜막 위에는 벽장을, 아랫퇴 상부에는 살강이 시설되었다. 아랫방에서 대청(大廳)까지는 앞퇴에 툇마루를 깔았으며 대청 전면은 개방(開放)하였다. 대청과 웃방과의 사이도 불발기 분합문(分閤門)을 달아서 필요에 따라 여름에는 개방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그러나 뒷벽은 외진주 자리에 놓지 않고 내진주(고주 (高柱)) 사이에 만들어서 따로 뒤툇마루와 구분짓고 있다. 특이한 공간이용인 셈이다. 건넌방 앞퇴에는 위로 다락을 매달고 아래는 굴묵으로 쓴다. 구조는 1 고주 5량으로서 장혀로 받친 납도리집이다. 지대돌은 약간 가공한 자연석을 외벌 혹은 두벌로 돌렸으며 초석(礎石)은 덤벙주초인데 지면에서 한 자 정도 띄운다. 기둥은 네모이고 굵직하게 쓴다. 납도리는 모서리를 접어 반깎기만 하고 굴리지는 않아서 정교한 느낌은 주지 않는다. 처마도리, 중도리, 종도리 모두 장혀로 받쳤으며 종보와 대들보 아래에도 단이로 보강했다. (단이 : 보아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받침목) 단이는 남도의 민가에서 자주 사용되는 부재이다.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며 장혀와의 사이에 긴소로를 끼워 넣었다. 이것은 연대가 떨어지는 집에서 자주 나타난다. 지붕은 합각기와지붕으로서 합각면에는 조금 치졸하지만 회색벽돌로 만든 희(囍)자 모양이 장식되었다.
사랑채는 앞쪽의 양날개는 많이 내밀고 뒤로는 반간만 내 달았다. 특히 서쪽 날개를 동쪽 날개보다 길게 한 것이 특이 하다. 평면의 구성은 가운데 몸간에 위·아래사랑방과 2간 사랑대청을 나란히 두고 서쪽 날개는 뒤로부터 몸간보다 반간을 빼서 뒷방, 사랑부엌(상부에 다락), 상·하앞방, 작은부엌을 배치하며 동쪽 날개는 역시 반간을 뒤로 빼서 골방, 상·하건넌방, 누마루의 차례로 놓인다. 몸간은 앞뒤로 퇴가 있고 서쪽 날개는 단간이며 동쪽 날개는 머리로 앞퇴를 달았다. 몸간의 앞퇴와 동쪽 날개 머릿퇴에는 툇마루를 깔고 뒷방의 서쪽과 북쪽, 앞방의 동쪽에는 쪽마루가 시설되었다. 대청의 앞문은 분합문(分閤門)으로 된 바 내진주 사이에 만들어졌다. 누마루는 사방으로 개방되었는데 서쪽으로만 간단한 난간이 시설되었다.
구조는 1고주 5량을 기본으로 하는데 기법이 안채보다 훨씬 장식적이며 기본 법식에 따라 잘 만들어졌다. 지대석은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 한벌을 돌리고 초석은 높은 주초로 하였다. 네모기둥 위에 납도리를 얹었으며 장혀로 받쳤다. 그러나 대들보 아래는 단이를 쓰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인데 어깨가 거의 수직에 가까우며 종도리 아래에는 장혀로 받치고 헛창방을 보내서 사이에 소로를 끼우고 있다. 지붕은 합각지붕인데 날개 부분은 서쪽을 앞 뒤 모두 우진각으로 처리했다. 반면 동쪽 날개는 합각으로 된 점이 특이하다.
이 집은 사랑채가 앞길에 드러나 있고 담장 조차도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토담이 일부 있을 뿐 원형이 남아 있지 않아서 외부공간의 구성은 짜임새를 잃었다. 기타 건물로 특기할만한 것은 곳간채라 하겠다. 건축년대는 20세기 초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지만 전통적 방식에 따른 빈지널의 광채이다. 긴 뒤주를 2개 연달아서 세워논 것처럼 만들었는데 1간 간격으로 네모기둥을 세우고 사이에 샛기둥을 넣어서 빈지널을 수평으로 끼운 것이다. 바닥도 널마루가 깔렸고 천장에도 널반자를 했다. 지붕은 골함석으로 되었지만 아마 초가였을 것이다. 이것은 중남부 내륙지방에서 가끔 보는 경영시설 중 하나이다. (이것의 축소 형태인 뒤주는 중남부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댁은 찾아 가기가 쉽지 않다. 우선 안내 표지판이 없고 근처에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도 저쪽으로 가면 되요. 라는 대답이고 어린 학생에게 물었더니 아 큰 옛날집이요? 저기 큰나무에서 좌회전하면 되요. 막상 가보면 길이 막힌다. 지나가는 노인분에게 물었더니 그제서야 아 재문이집 말이지요.내가 그 옆집에 살아요. 그래서 물어 물어 정말 서울에 김서방집 찾기 만큼이나 어렵다.
개울가로 난 농로를 따라 들어가는데 막상 주차할 곳이 없다. 할수 없이 올갱이국이 전문인 식당에 차를 세우고 잠시주차를 허락받아 식당의 샛문을 통해서 소석고택(예전 송재문가옥)을 찾아 갔다. 어렵게 찾아 오면서 짜증이 나긴 했지만 대문앞에 안내판이 그래도 기분이 좋다. 24시간 관람, 내부도 마음껏 촬영해도 된다. 잠시 주차를 허락받았는데 구석구석 돌아 보느라 두시간이 걸렸다. 식당주인에게 미안해서 오늘 점심은 올갱이해장국으로 하기로 했다 2010년 7월 15일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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