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민속자료 제89호 하회겸암정사(河回謙菴精舍)
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8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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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37 |
소재지 | 풍천면 |
지정일 | 1979.01.23 |
수량/면적 | 2동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유상봉 |
관리자 | .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집은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맏형인 겸암 유운룡(1539∼1601) 선생이 학문 연구와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명종 22년(1567)에 지었다고 하며 부용대 서쪽 높은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
부용대(芙蓉臺)의 서편 강류(江流)가 크게 감돌아 굽이치는 절애(絶崖) 위에 남향으로 세워진 집이다. 이곳 애하(崖下)의 심연(深淵)을 빈연(賓淵)이라 부른다고 하니 그 대안(對岸)에 마주 향해 있는 서애(西厓)의 빈연정사(賓淵精舍)도 그 이름을 딴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사는 애하의 강폭이 가장 넓고 대안의 사장(砂場)과 송림(松林), 취락(聚落)이 한눈에 조망이 되는 승구(勝區)에 위치하고 있다. 정사의 창건주는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1539∼ 1601)인데, 그는 서애의 맏형이며 서애보다 세살이 위이다. 소전(所傳)에 겸암이 26세때 이 정사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는 선조 5년(1572) 33세시에 처음으로 벼슬에 나갔으므로 벼슬에 나가기 휠씬 전이며 그의 26세에는 아버지 중영(1515 ∼ 1573, 관관찰사(官觀察使))이 황해관찰사로 나가던 해이고 그 나이 49세 되는 때이다.
이 정사는 높은 절애(絶崖) 위에 있고 강촌과 송림, 사주(砂州)가 안하(眼下)에 부감(俯瞰)되며 강류가 마을에서 가장 멀리 휘도는 곳이므로 마을에서는 더욱 길이 멀고 지금도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사의 위치로는 알맞은 곳이라 하겠다. 배산(背山)이 절박(切迫)하여 터가 좁은 것은 절애(絶崖)의 지형 때문이라 하겠으나 그만큼 절속(絶俗) 기굴(奇屈)한 고풍이 수림(樹林)과 함께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겸암정사는 학문의 고구(考究)와 도제(徒弟)의 양성을 목적으로 지어진 집이어서 지금까지 정사로 불리어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건축안배는 옥연정사(玉淵精舍)와 유사한 것으로 안채와 정사를 갖추고 있으나 옥연정사는 대문채도 크고 규모큰 사랑채가 한채 더 있어 훨씬 규모가 크다고 하겠다. 안채는 동단(東端)에서 꺾인 ㄱ자형집이며 길이가 6간이고 너비가 4간 크기이다. 부엌은 서단(西端)에 2간을 두었는데 주외(柱外)로 축담을 쌓아 돌려서 내부를 넓게 확장하였다. 안방은 2간에 전퇴(前退)를 두었고 대청은 전퇴없는 4간 마루이며 대청 건너는 2간의 찬광 마루방이다. 찬광 아래에는 간반의 온돌방인 아랫방이 있고 아랫방 끝에는 반간여의 마루가 놓였다. 내정(內庭)의 서편에는 축담에 짚을 이은 헛간채가 간막이 없이 가로 세워져 있다.
정사는 중층누각식(重層樓閣式)의 누마루를 둔 5량집이며 장대(長臺)로 마감한 높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一자형 평면이며 길이가 4간에 너비가 2간이고 큰방은 2간으로 서편에 있다. 건넌방은 1간반이며 중대청(中大廳)은 4간이고 건넌방 앞에는 반간의 퇴청(退廳)을 두어 대청을 보다 넓히고 있다. 여기 걸린 편액(偏額)은 강습재(講習齋)와 각수재(閣修齋)이다.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이고 창방과 장혀 사이에 접시 받침을 고이고 있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누마루의 후면 대청 2간은 모두 벽을 치고 각기 쌍여닫이, 외여닫이를 달아 출입문으로 하였으므로 이 문들을 닫으면 내정(內廷)과는 공간차단이 된다. 또 후면 양끝 기둥에는 담장이 연결되어 있어 양단(兩端) 난간 마루에서도 내정은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담장은 동에서 내정으로 출입하는 사주대문(四柱大門)과 연결되고 서정(西庭)에서는 누정(樓庭)으로만 출입하게 되는 일각문과 연결된다. 외인(外人)의 누사(樓舍) 출입전용문은 이 서정의 일각문이고 동문은 내외겸용을 위한 문이라 하겠다. 이 담장은 안채의 아랫방 마루끝 기둥에서 다시 시작되어 배산(背山) 등성이를 둥글게 반월형(半月形)으로 돌아 서정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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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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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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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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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
이 정사는 높은 절애(絶崖) 위에 있고 강촌과 송림, 사주(砂州)가 안하(眼下)에 부감(俯瞰)되며 강류가 마을에서 가장 멀리 휘도는 곳이므로 마을에서는 더욱 길이 멀고 지금도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사의 위치로는 알맞은 곳이라 하겠다. 배산(背山)이 절박(切迫)하여 터가 좁은 것은 절애(絶崖)의 지형 때문이라 하겠으나 그만큼 절속(絶俗) 기굴(奇屈)한 고풍이 수림(樹林)과 함께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겸암정사는 학문의 고구(考究)와 도제(徒弟)의 양성을 목적으로 지어진 집이어서 지금까지 정사로 불리어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건축안배는 옥연정사(玉淵精舍)와 유사한 것으로 안채와 정사를 갖추고 있으나 옥연정사는 대문채도 크고 규모큰 사랑채가 한채 더 있어 훨씬 규모가 크다고 하겠다. 안채는 동단(東端)에서 꺾인 ㄱ자형집이며 길이가 6간이고 너비가 4간 크기이다. 부엌은 서단(西端)에 2간을 두었는데 주외(柱外)로 축담을 쌓아 돌려서 내부를 넓게 확장하였다. 안방은 2간에 전퇴(前退)를 두었고 대청은 전퇴없는 4간 마루이며 대청 건너는 2간의 찬광 마루방이다. 찬광 아래에는 간반의 온돌방인 아랫방이 있고 아랫방 끝에는 반간여의 마루가 놓였다. 내정(內庭)의 서편에는 축담에 짚을 이은 헛간채가 간막이 없이 가로 세워져 있다.
정사는 중층누각식(重層樓閣式)의 누마루를 둔 5량집이며 장대(長臺)로 마감한 높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一자형 평면이며 길이가 4간에 너비가 2간이고 큰방은 2간으로 서편에 있다. 건넌방은 1간반이며 중대청(中大廳)은 4간이고 건넌방 앞에는 반간의 퇴청(退廳)을 두어 대청을 보다 넓히고 있다. 여기 걸린 편액(偏額)은 강습재(講習齋)와 각수재(閣修齋)이다.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이고 창방과 장혀 사이에 접시 받침을 고이고 있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누마루의 후면 대청 2간은 모두 벽을 치고 각기 쌍여닫이, 외여닫이를 달아 출입문으로 하였으므로 이 문들을 닫으면 내정(內廷)과는 공간차단이 된다. 또 후면 양끝 기둥에는 담장이 연결되어 있어 양단(兩端) 난간 마루에서도 내정은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담장은 동에서 내정으로 출입하는 사주대문(四柱大門)과 연결되고 서정(西庭)에서는 누정(樓庭)으로만 출입하게 되는 일각문과 연결된다. 외인(外人)의 누사(樓舍) 출입전용문은 이 서정의 일각문이고 동문은 내외겸용을 위한 문이라 하겠다. 이 담장은 안채의 아랫방 마루끝 기둥에서 다시 시작되어 배산(背山) 등성이를 둥글게 반월형(半月形)으로 돌아 서정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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