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민속자료 제76호 양동근암고택(良洞 謹庵 古宅)
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7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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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214-1 |
소재지 | 강동면 |
지정일 | 1979.01.23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이동기 |
관리자 | 이동기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양동 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평야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집은 이정수 선생이 세웠다고 하는데 5대손 이희구가 홍릉참봉을 지냈기 때문에 참봉댁 또는 근암고택이라고도 한다.
조선 정조 4년(1780)경에 지었다고 하며 일반적인 ㅁ자 평면을 따르지 않고 주거 공간의 기능에 따라 배치를 다르게 꾸미고 있다.
집의 구성은 크게 대문채, 안채, 사랑채로 구분할 수 있다. 대문채는 ㅡ자형 평면으로 가운데 대문을 두고 왼쪽에 광, 오른쪽에 방을 두었다. 안채는 ㄱ자형 평면이고 면이 꺾이는 부분에 부엌을 두었다. 부엌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안방과 대청, 건넌방, 마루방을 놓았으며 부엌 밑으로 2칸짜리 방과 1칸 방을 만들었다. 안채 옆에는 앞면 4칸·옆면 1칸 크기의 헛간을 지었는데 지금은 외양간으로 쓰고 있다.
일반적인 ㅁ자 또는 튼ㅁ자형에 따르지 않고 주거공간의 기능에 따라 집들을 분산·산개(散開)한 별격(別格)의 변화를 보이는 예이다. 안채를 ㄱ자형 평면으로 끝낸점과 사랑채를 안채의 담밖에 완전 격리시킨 점은 가장 특색있는 변화라 하겠다. 특히 사랑채를 담장 밖으로 격리해서 차단한 것은 중부지방이나 호남의 대가에서도 좀체로 보기 어려운 배치방식이며 그 차단방식은 별당의 차단방식과 통한다는 점에서 사랑방에 대한 인식도가 매우 엄격한데 연유해서 채택된 방식으로 짐작된다. 사랑방이 외정(外庭)으로 돌출되는 배치는 이 마을의 낙선당(藥善堂)이다. 이원봉씨(李源鳳氏) 가옥에서도 예를 볼 수가 있으나 그 경우에는 모두 안채와 구조 자체가 직접 연결되어 있을뿐 아니라 사랑방이 직접 안마당으로 면해 있거나 사랑 부엌을 통해 안채와 통로가 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랑채의 격리배치(隔離配置) 방식은 아마도 창건 당시 가주(家主)의 전통적 내외관(內外觀)이나 생활관에 따른 사상적 배경이 작용한 결과로도 짐작된다.
ㅁ자형이나 튼ㅁ자형의 폐쇄적 양식이 일반화된 지역에서는 매우 특이한 배치계획인 것이다. 사랑채는 전·후퇴를 가진 3간집이므로 매우 소규모, 간소한 형식이라 하겠으며 따라서 넓은 대청(大廳)이나 작은 사랑방은 생략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사랑방을 격리한 특색 외에 또 다른 특색이라 하겠으며 아래 ·위 2간의 방과 1간통(間通)의 마루, 툇마루의 평면구성은 소규모 서당이나 소박한 정자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으며 또한 그 가주(家主)의 사상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음을 생각케 한다.
안방과 부엌과의 고패 관계는 이지역 일반적인 분할방식 그대로이나 부엌은 길이가 3간이나 된다. 건넌방은 1간이 대청으로 당겨져 그 옆간을 마루방으로 꾸몄으므로 전면의 툇마루, 대청과 연결되는 3면이 마루로 둘러싸이는 방이 되었다. 이 마루방은 안대청 한편에 소위 고방을 두는 영남 대가들의 종종 있는 예에 불과하지만 ㄱ자로 끝내고 있는 평면에서는 더욱 특이한 형식이라 하겠다.
이 집에서는 또 안채와 사랑채에 전혀 두리기둥을 쓰지 않고 있어 일면 검소한 주거관(住居觀)도 엿볼 수 있게 한다. 대문채는 3간에 그쳤고 대문의 양편은 문간방과 고방이다. 아랫방 뒤편에 길이 4간의 간막이 없는 헛간이 있어 지금 외양간으로 쓰이고 있으나 원래는 그 일부가 광으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랑방은 대문을 통하지 않고 담장을 오른편으로 돌면 이르게 된다. 사랑마당을 둘러싼 담장은 넓은 후원 언덕을 감돌아 이웃집 담장과 연결된다. 이 집의 가대(家垈)는 이 마을에서 가장 넓은 것으로 짐작되며 가승(家乘)에 그 창건은 1780년이라 전한다.
ㅁ자형이나 튼ㅁ자형의 폐쇄적 양식이 일반화된 지역에서는 매우 특이한 배치계획인 것이다. 사랑채는 전·후퇴를 가진 3간집이므로 매우 소규모, 간소한 형식이라 하겠으며 따라서 넓은 대청(大廳)이나 작은 사랑방은 생략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사랑방을 격리한 특색 외에 또 다른 특색이라 하겠으며 아래 ·위 2간의 방과 1간통(間通)의 마루, 툇마루의 평면구성은 소규모 서당이나 소박한 정자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으며 또한 그 가주(家主)의 사상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음을 생각케 한다.
안방과 부엌과의 고패 관계는 이지역 일반적인 분할방식 그대로이나 부엌은 길이가 3간이나 된다. 건넌방은 1간이 대청으로 당겨져 그 옆간을 마루방으로 꾸몄으므로 전면의 툇마루, 대청과 연결되는 3면이 마루로 둘러싸이는 방이 되었다. 이 마루방은 안대청 한편에 소위 고방을 두는 영남 대가들의 종종 있는 예에 불과하지만 ㄱ자로 끝내고 있는 평면에서는 더욱 특이한 형식이라 하겠다.
이 집에서는 또 안채와 사랑채에 전혀 두리기둥을 쓰지 않고 있어 일면 검소한 주거관(住居觀)도 엿볼 수 있게 한다. 대문채는 3간에 그쳤고 대문의 양편은 문간방과 고방이다. 아랫방 뒤편에 길이 4간의 간막이 없는 헛간이 있어 지금 외양간으로 쓰이고 있으나 원래는 그 일부가 광으로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랑방은 대문을 통하지 않고 담장을 오른편으로 돌면 이르게 된다. 사랑마당을 둘러싼 담장은 넓은 후원 언덕을 감돌아 이웃집 담장과 연결된다. 이 집의 가대(家垈)는 이 마을에서 가장 넓은 것으로 짐작되며 가승(家乘)에 그 창건은 1780년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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