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민속자료 제78호 양동수졸당(良洞守拙堂)
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7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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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212 |
소재지 | 강동면 |
지정일 | 1979.01.23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이종환 |
관리자 | 이종환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평야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집은 이언적 선생의 넷째손자 수졸당 이의잠 선생이 세운 것으로 그의 호를 따서 집 이름을 수졸당이라 하였다.
조선 광해군 8년(1616)에 지었으며 영조 20년(1744)경 6대손 대사헌 양문당 이정규 선생이 사랑채를 늘려 지었다고 한다. 서백당과 낙선당 건너편 산줄기 중턱에 있으며 일반적인 튼 ㅁ자형 평면을 가진 집이다. 크게 대문채, 안채, 사랑채, 아래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 아래채, 사랑채, 대문채가 서로 인접하여 기본 평면을 갖추고 있다.
서백당(書百堂)과 낙선당(樂善堂)의 건너편 산줄기의 중턱 동향대지에 위치하고, 후원 언덕 위에 일곽의 가묘(家廟)가 설치되어 있다.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아래채, 사랑채, 대문채 등이 튼ㅁ자형을 이루었다.
남향한 사랑채와 대문채가 붙다시피 연접되어 있어 동향인 안채로 보면 동향집 남대문을 이룬셈이다. 그러나 안채는 안채대로 아래채의 어간(御間)에 안대문을 따로두고 있어 동문과 남문의 두 대문을 둔 격이 되었다. 대개 남향집의 경우와는 달리 사랑채와 안방의 위치가 반대로 배치되어 있는 것은 이 집의 진입로가 남쪽에서 북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사랑채나 대문채에서 보면 안방은 가장 안쪽에 위치하게 되는 원칙이 무리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실제로 4간에 그쳤고 그 동단(東端)에 분리해서 지붕을 조금 낮추어서 2간의 대문채를 둔 것은 사랑방의 격식과 문간방이 달린 대문채의 격식과의 차이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으며 긴 사랑채의 1간을 그대로 대문이나 중문간으로 하는 경우보다는 적격으로 보인다. 이 대문채와 사랑채와의 관계 처리는 이 집만의 독특한 방식이라 하겠으며 그 계획에서 묘(妙)를 얻은 것이라 하겠다. 사랑채의 다섯 전열주(前列柱)에는 두리기둥을 쓰고 대문채에는 내·외 중심주에만 원주(圓柱)를 썼는데 이집에서는 이 대문채의 단간방을 작은 사랑이라고 부른다.
안방과 안대청의 전면에는 퇴주(退柱)와 툇마루가 없으나 대청(大廳)의 후면에는 퇴주와 툇마루가 있고 안방 후면의 퇴는 골방으로 꾸며져 있다. 안채의 기둥은 예외 없이 방주(方柱)이다. 부엌은 2간이고 그 밑에 부엌방과 찬광(마루방), 1간의 광, 반간의 안변소가 一자로 연이어져 있다. 이 부엌방과 찬광 바로 전면 내정(內庭)에 장독대와 화단이 마련되어 있다. 아래채는 一자 5간중 어간(御間)이 안대문이고 북쪽 2간은 간막이 없는 광이며 남쪽 2간은 외양간과 방앗간이다. 방앗간에는 디딜방아 1기가 설치되어 있다. 사랑방 안마당에는 한 그루의 매수(梅樹)가 있으며 마당 끝에는 오래묵은 회화나무와 향나무도 있다. 또 동쪽 언덕배기와 사당에 이르는 서쪽 언덕에는 시누대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집의 당호는 수졸당(守拙堂)이며, 수졸당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넷째손자 되는 의잠(宜潛)(동호(東湖), 사마(司馬) 현감(縣監))의 호(號)를 따서 지은 것이다.
남향한 사랑채와 대문채가 붙다시피 연접되어 있어 동향인 안채로 보면 동향집 남대문을 이룬셈이다. 그러나 안채는 안채대로 아래채의 어간(御間)에 안대문을 따로두고 있어 동문과 남문의 두 대문을 둔 격이 되었다. 대개 남향집의 경우와는 달리 사랑채와 안방의 위치가 반대로 배치되어 있는 것은 이 집의 진입로가 남쪽에서 북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사랑채나 대문채에서 보면 안방은 가장 안쪽에 위치하게 되는 원칙이 무리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채는 실제로 4간에 그쳤고 그 동단(東端)에 분리해서 지붕을 조금 낮추어서 2간의 대문채를 둔 것은 사랑방의 격식과 문간방이 달린 대문채의 격식과의 차이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으며 긴 사랑채의 1간을 그대로 대문이나 중문간으로 하는 경우보다는 적격으로 보인다. 이 대문채와 사랑채와의 관계 처리는 이 집만의 독특한 방식이라 하겠으며 그 계획에서 묘(妙)를 얻은 것이라 하겠다. 사랑채의 다섯 전열주(前列柱)에는 두리기둥을 쓰고 대문채에는 내·외 중심주에만 원주(圓柱)를 썼는데 이집에서는 이 대문채의 단간방을 작은 사랑이라고 부른다.
안방과 안대청의 전면에는 퇴주(退柱)와 툇마루가 없으나 대청(大廳)의 후면에는 퇴주와 툇마루가 있고 안방 후면의 퇴는 골방으로 꾸며져 있다. 안채의 기둥은 예외 없이 방주(方柱)이다. 부엌은 2간이고 그 밑에 부엌방과 찬광(마루방), 1간의 광, 반간의 안변소가 一자로 연이어져 있다. 이 부엌방과 찬광 바로 전면 내정(內庭)에 장독대와 화단이 마련되어 있다. 아래채는 一자 5간중 어간(御間)이 안대문이고 북쪽 2간은 간막이 없는 광이며 남쪽 2간은 외양간과 방앗간이다. 방앗간에는 디딜방아 1기가 설치되어 있다. 사랑방 안마당에는 한 그루의 매수(梅樹)가 있으며 마당 끝에는 오래묵은 회화나무와 향나무도 있다. 또 동쪽 언덕배기와 사당에 이르는 서쪽 언덕에는 시누대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집의 당호는 수졸당(守拙堂)이며, 수졸당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넷째손자 되는 의잠(宜潛)(동호(東湖), 사마(司馬) 현감(縣監))의 호(號)를 따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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