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민속자료 제77호 양동두곡고택(良洞 杜谷 古宅)
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7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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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35 |
소재지 | 강동면 |
지정일 | 1979.01.23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이희태 |
관리자 | 이희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양동 마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평야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집은 이언적 선생의 6대손 이제중 선생이 세운 집으로 훗날 이희태의 조부인 두곡 이조원이 사들여 지금은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조선 영조 9년(1733) 경에 지었고 이조원의 호를 따 두곡고택이라고도 한다. 남촌의 대표적 대가(大家)로 안채, 사랑채, 아래채가 튼 ㅁ자 기본 평면을 갖추고 있고 앞뒤로 딸린 건물들을 나누어 배치하였다.
집의 구성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 외에 대문채, 행랑채, 마구간, 방앗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대문채는 4칸 크기로 오른쪽 2칸은 광이고, 왼쪽 1칸은 문칸방이다. 대문을 들어서 왼쪽(서쪽)으로 마구간이 있는데 이는 지형상 서쪽이 낮고 허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터를 골라 지은 것이라고 한다.
남촌(南村)의 대표적 대가(大家)이며 가장 넓은 평지가대(平地家垈)에 자리잡고 있다. 북촌(北村)은 대개가 산지가대(山地家垈)여서 이렇게 평활(平闊)한 대지는 없다. 남산(南山)줄기 바로 곁에 대산향남(對山向南)한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이루는 튼ㅁ자형 중축부(中軸部)를 가운데에 두고 그 뒤안에는 한채의 행랑채, 방앗간채, 잿간을 두고 전면 노변(路邊)에는 대문채를 멀찍이 배치하고 대문 안에는 서변(西邊)에 마구간을 안배하는 배열을 보이고 있다.
ㅁ자형 기본구조외에 一자형 집들을 전후에 비교적 넓게 산개시킨 것은 특색이라 하겠으며 북촌에서 ㄱ자형이나 一자형 집들을 널리 산개한 예는 이향정(二香亭)이나 이동기씨(李東琦氏) 가옥등이 있다. 대문채는 4간이며 대문의 서쪽 1간이 문간방이고 동쪽 2간은 간막이 없는 광이다. 마구간은 대문안 마당의 서변에 있어 지형적으로 동고(東高)한 이 넓은 마당의 서쪽 허한 점을 보완한 셈이다. 동고한 사랑마당의 동산(東山)은 산 경사지를 그대로 살린 것이며 여러주의 감나무와 과목이 심어져 있어 소원림(小園林)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온돌이 3간이고 대청(大廳) 2간이 서출(西出)하여 그 끝에서 아래채 대청과의 사이에 1간의 중문(中門)을 두었는데 사랑채와 아래채의 지붕이 1간 사이를 두고 끝나는 튼부분에 해당된다. 사랑채의 2간 온돌방 머리에는 부엌과 접한 작은 온돌방이 부설되어 있는데 이것은 청지기 방이다. 아래채는 길이 7간의 一자집이며 안채만이 ㄱ자집이다. 안마당에는 안대청 앞에 장독대가 마련되었으며 부엌 아래쪽에는 우물이 마련되어 있다. 서향한 2간의 안대청을 가운데로 하여 안쪽으로 안방(간반)과 부엌 2간이 연해 있고 그 반대편에는 건넌방 1간이 있는데 건넌방은 사랑방 뒤편에 근접해 있다. 대청에는 후면에 간마다 여닫이 판문(板門)이 있을 뿐이다. 안방 윗머리에는 1간의 찬방이 마련되어 있고 안방 뒤편에는 달아낸 벽장과 쪽마루가 있어 안방 이용 기능이 잘 갖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채는 안채보다 한단 낮은 터에 세웠으며 한가운데에 부엌 1간을 두고 안쪽에 광, 온돌, 마루방을 1간씩 두었고 바깥쪽에는 2간의 온돌방과 1간의 마루를 두었다. 부엌머리에는 온돌방에서 출입하는 작은 골방이 있는데 여기 2간의 온돌은 안사람으로서 대가족 동거의 기능에는 적합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겠다. 후원 행랑채는 안방 뒤에 있으며 고방 2간과 1간 온돌로 이루어진 一자집이다. 그 서편에 방앗간이 있으며 1간의 디딜방앗간과 2간의 고방으로 이루어진 一자집이다.
가전(家傳)에 이 집은 원래 회재 6대손(晦齋 六代孫)인 이식중(李湜中)의 분문가(分門家)로 세워졌으나(1733년경) 중년에 희태씨(熙太氏)의 조부(祖父)인 이조원(李祖源)이 매입, 이거(移居)한 것이라 한다.
ㅁ자형 기본구조외에 一자형 집들을 전후에 비교적 넓게 산개시킨 것은 특색이라 하겠으며 북촌에서 ㄱ자형이나 一자형 집들을 널리 산개한 예는 이향정(二香亭)이나 이동기씨(李東琦氏) 가옥등이 있다. 대문채는 4간이며 대문의 서쪽 1간이 문간방이고 동쪽 2간은 간막이 없는 광이다. 마구간은 대문안 마당의 서변에 있어 지형적으로 동고(東高)한 이 넓은 마당의 서쪽 허한 점을 보완한 셈이다. 동고한 사랑마당의 동산(東山)은 산 경사지를 그대로 살린 것이며 여러주의 감나무와 과목이 심어져 있어 소원림(小園林)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온돌이 3간이고 대청(大廳) 2간이 서출(西出)하여 그 끝에서 아래채 대청과의 사이에 1간의 중문(中門)을 두었는데 사랑채와 아래채의 지붕이 1간 사이를 두고 끝나는 튼부분에 해당된다. 사랑채의 2간 온돌방 머리에는 부엌과 접한 작은 온돌방이 부설되어 있는데 이것은 청지기 방이다. 아래채는 길이 7간의 一자집이며 안채만이 ㄱ자집이다. 안마당에는 안대청 앞에 장독대가 마련되었으며 부엌 아래쪽에는 우물이 마련되어 있다. 서향한 2간의 안대청을 가운데로 하여 안쪽으로 안방(간반)과 부엌 2간이 연해 있고 그 반대편에는 건넌방 1간이 있는데 건넌방은 사랑방 뒤편에 근접해 있다. 대청에는 후면에 간마다 여닫이 판문(板門)이 있을 뿐이다. 안방 윗머리에는 1간의 찬방이 마련되어 있고 안방 뒤편에는 달아낸 벽장과 쪽마루가 있어 안방 이용 기능이 잘 갖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채는 안채보다 한단 낮은 터에 세웠으며 한가운데에 부엌 1간을 두고 안쪽에 광, 온돌, 마루방을 1간씩 두었고 바깥쪽에는 2간의 온돌방과 1간의 마루를 두었다. 부엌머리에는 온돌방에서 출입하는 작은 골방이 있는데 여기 2간의 온돌은 안사람으로서 대가족 동거의 기능에는 적합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겠다. 후원 행랑채는 안방 뒤에 있으며 고방 2간과 1간 온돌로 이루어진 一자집이다. 그 서편에 방앗간이 있으며 1간의 디딜방앗간과 2간의 고방으로 이루어진 一자집이다.
가전(家傳)에 이 집은 원래 회재 6대손(晦齋 六代孫)인 이식중(李湜中)의 분문가(分門家)로 세워졌으나(1733년경) 중년에 희태씨(熙太氏)의 조부(祖父)인 이조원(李祖源)이 매입, 이거(移居)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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