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9.
하나님이 말씀하신다2 - 차훈목사
[1]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일곱 가지의 실체?
1)하나님의 일→2)관계→3)초청→4)말씀하심→5)믿음의 갈등→6)조정→7)순종+경험
1)하나님은 항상 내 주위에서 일하신다. 여기서 주위란 가정, 교회, 학원, 친분관계를 가진 사람들일 수 있다.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한다.
2)하나님은 나와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신다.
여기서 1)과2)는 시간적으로 거의 시차가 없다.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가지면서 관계를 도모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하나님이 일하는 것이다.
3)과4)번도 겹친다. 초청하는 것은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보는 사람이 있고 못 보는 사람이 있다. 영적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보는 사람은 초청 받은 사람이다. 못본 사람은 초청 받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과 길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 기도, 환경, 교회를 통해 보여주신다.
성령님에 의해서 기도하는 눈으로 성경을 볼 때 보는 것이다. 성령에 이끌림으로 환경을 볼 때 보는 것이다.
성령님에 의해서 기도하면서 성경, 환경, 예배공동체에 참여할 때 들리고 봅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았을 때 그것을 통해(매개체로 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에 뜻과 목적을 보았다.
신약에서 제자들은 몸에 입고 오신 하나님인 예수님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랍비, 목수(요셉)에 아들로 보았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인데 무엇을 보여달라고 하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떨기나무 사건이나 예수님은 상징적인 것이다.
[2] 오늘 우리에게 매개가 무엇이 있는가?
성경과 성령 그리고 기도이다. 성령은 안경에 렌즈와 같이 하나님이 관점을 주는 렌즈와 같다. 기도는 보는 행위이다. 성령이란 렌즈를 통해 기도함으로써 성경, 교회, 환경을 볼 때 메시지와 함께 하나님을 보게된다.구약시대보다 더 높은 차원의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신약시대에 제자들도 성령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성령 받고 예수님은 재조명하고 소급해서 예수님을 다시 발견하여 AD40년에 신약성경에 쓰여졌다.
예수님과 교제할 때 일기를 쓴 게 아니다. 객관적인 기사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서 성령을 받아 다시 은혜 받고 쓴 것이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해석한 것이다. 성령에 인도함을 받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건을 다시 재조명한 것이다. 성경과 교제를 하나님 관점에서 다시 보아야 한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성령에 인도함이 없이 감동함이 없이 보면 한 말씀도 들을 수 없다.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성령 충만하다라는 말은 기도하는 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시간적 개념으로 계속적으로 성령에 지배를 받는 상태이다. 계속적? 막?성령과 교제하는 시간을 말한다. 무시로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간 구와 도고 와 감사가 있다. 기도할 때 깨어있어라. 깨어있어 기도해라. 즉 깨어있다. 와 기도하다 는 같이 간다. 깨어있다는 것은 의식이 있는 것이다. 의식이 깨어있으면 도둑이 내 것을 가져가지 못하는 것처럼 기도하면 영이 지각과 의식을 가지고 분별하고 알게 된다. 깨어있는 눈은 기도하는 이다. 깨어있는 눈으로 성경과 환경을 볼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3] 하나님을 만난 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건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다는 것은 하나님에 메시지를 들었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못 받았다면 하나님을 못 만난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말씀이 들렸다는 것은 성령을 받은 것이며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보여졌다는 것 자체가 초청된 것이다. 오라는 메시지를 듣지 않았어도 보여진 것은 하나님이 부른 것이다. 3)하나님의 초청과 4)하나님의 말씀하심은 하나로 매치되어있다.
1)하나님의 일과 2)하나님이 사랑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추구하시는 것은 매치되어있다. 관계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다. 관계의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이 교회, 성경, 환경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실 때 부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 나를 믿음의 갈등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왜 이걸 받았나? 고심이 되고 마음이 찔린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선한 사마리안 인은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본 것이다. 그러나 성경학자와 래위는 단지 한 사람을 보았을 뿐이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이 헐벗고 굶주릴 때 도와 준 것이 나를 도와준 것이다. 라고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 이 말씀하신다. 사건을 통해 주님을 보고 어떤 사람은 주님을 못 봅니다.
하나님의 도전 앞에 나는 여전히 준비가 안됐다. 하는 게 많아 바쁘다. 라고 내 문제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갈등이 왔을 때 내가 이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그 감동을 소멸시키면 하나님은 떠나십니다. 하나님이 떠나게 되면 기도안하는데도 전혀 고통이 없게 됩니다. 죽은 것과 진배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믿음의 갈등 속에서 조정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따라갈 때 놀라운 여러 가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4]하나님께 속한자는?
요한 복음 8장 47절(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한 복음 5장 19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주님은 듣고 보고 그 일에 동참하셨습니다. 당신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을 향해 배를 타고 갈 때, 저쪽으로 건너가서 피곤해서 자야하는데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를 회복시켜주시는 것을 보았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여주었음으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또한 배에서 풍랑이 일어날 때 예수님은 주무셨습니다. 무슨 배짱인가? 거라사 지방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았음으로 예수님에게 풍랑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너머의 시간을 봄으로 두렵고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고치시는 사건을 봄으로 중간과정에 어떤 일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사건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움직임에 따라 센시티브 하게 일하십니다.
간음한 여인을 앞에 두고 땅 바닥에 글을 쓰시는 일련의 시간에 하나님과 잠깐 시간을 갖고 교제하며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그게 습관화되면 누구나 됩니다. 일상생활을 거의 내가 하고있으나 사건이다 판단될 때는 즉각 기도체제로 가야 합니다. 24시간 무시로 기도해야되나 그게 잘 안됩니다. 갑자기 심방을 왔을 때 말씀이 요청될 때,! 누가 와서 예고 없이 상담할 때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무슨 말씀하시기를 하시기를 원하는데 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카운슬링 기술에 빠지면 하나님의 음성보다 그 기술에 얽매이게 됩니다. 목회자로서 성령께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겸손한 자세가 영성입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는 것이 영성훈련입니다.
[5]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 5 과 6과: 복습 123페이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먼저 지적으로 알고 몸에 베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환상을 통해서, 꿈들을 통해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해서, 비유를 통해서, 세미한 소리를 통해서, 기사와 표적들을 통해서, 그리고 기타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환상과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주관적인 신앙체험을 객관화하면 이단이 됩니다. P124,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에게 독특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개인적으로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떨기나무 본 것을 객관화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자신이 떨기나무입니다. 오늘날 교회, 환경, 사람이 떨기나무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확실함이 옵니다. 이게 없으면 무시하십시오. 헷갈리는 꿈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은 클리어 합니다. 두루뭉실해서 긴가민가하지 않습니다.
[6] 천사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천사는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크리스천들이 천사의 도움을 최대한 받는 것이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영적 존재를 쓰시고 보내셨습니다. 천사가 우리보다 높으냐? 낮으냐? 우리보다 높고 낮은 차원이 아닙니다. 천사의 역할과 우리의 역할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천사를 위해 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우리를 위해 실제로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시켜서 한일이니 천사가 일했다. 라고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을 천사가 지배합니까? 예수님은 천군 천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천군 천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카톨릭은 천사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나 개신교는 하나님과 직통대화를 강조함으로 특히 무시되어왔습니다.
성령을 통해 직접 은사를 받는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적 종들을 통해 역사 하시고 사탄이 잡귀 신을 통해 역사 하는 것처럼 천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수태고지와 같은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 ?때 가브리엘 천사가 일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아이덴티티가 있습니까? 천사도 자유의지가 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거부할 수있습니다. 루시퍼 천사는 찬양대장인데 세상의 것을 하나님께 올리는 천사였는데 타락해 사탄이 된 것입니다.
[7] 하나님과의 만남?
예수님까지도 현상입니다. 눈(육안)에 보이는 것은 현상입니다. 현상 넘어 실상을 보는 것이 믿음이요, 영적인 눈입니다. 영성이 흐리므로 못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틀림없는 사건을 못 봅니다. 예수님은 천군 천사를 보는데 제자들은 못 봅니다. 못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8] 성령으로 말씀하신다(129P)?
성령은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지식의 영과 지혜의 영을 주십니다. 성령의 인격성과 사역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면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그 안에 있는 메시지를 보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실상을 볼 수 있는 렌즈를 주십니다. 마이크로 렌즈로 보면 안보이던 세균이 보이고, 망원 렌즈로 보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것이 클리어 하게 보입니다. (P130) 성령을 통해 기도할 때, 교회 설교를 들을 때, 환경에서 사건이나 사람을 볼 때 올바르게 해석하는 눈을 줍니다. 인간적인 패러다임에서 하나님의 시각과 하나님의 눈을 갖게 합니다. 그 결과 영적인 패러다임을 갖게 됩니다.
[9] 계시란?(134P)
계시란? 주관적인 말입니다. 몰몬교는 교주가 계시를 받았다고 몰몬경을 썼습니다. 말씀 주시는 것이 지금도 있는가? 잘못된 계시로 본다. 성경을 통해 주신 글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에게 주신 것처럼 다시 쓰는 게 아니다. 있는 성경을 재해석하고 나에게 준 메시지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과 길을 나에게 보여 주는 것이 계시이다.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을 보이게 벗기는 것이다. 이게 없는 사람은 영적인 소경이다. 묵시가 없는 자는 망한다. 하나님이 주신 그 때 그 때마다 가르쳐 주신 것을 보지 못하는 자는 영적 소경이다. 하나님이 목적과 길을 보여 주는데 성경을 통해서 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기도이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다. 메시지가 오니까 너무 exciting하다! 말씀을 통해 깨달음이 온다. 청년 때 순수하게 성령께 사로잡히면 말씀을 열기만 하면 너무 너무 메시지가 막 나온다. 순수할 때 신앙이 좋다. 그러나 순수에는 미숙이 따라온다. 성숙으로 가면 순수성을 잃기는 하지만 또 다른 차원의 하나님과 교제하며 갖는 게 있다.
[10] 분노(화)를 소화하는 방법?
마태 복음 7장 1절-4절<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는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분을 내어도 화를 내지 말고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 욕을 하면 상대방과 나에게 동시에 상처가 온다. 운전하다가 욕이 나오는 것은 육적인 자아이다. 사탄이 아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것은 육적인 자아이다. 사탄은 속삭이고 넘어뜨리고 거짓말해서 속아 넘어 가게 한다. 영으로 육을 죽이면 살리니!
(CHO;어둠은 빛이 들어오면 자연적으로 사라진다. 분노함, 무서움, 음란함, 두려움, 육적 고통, 이러한 것들을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기는 것이다. 십자가에 보혈의 피와 성령의 불을 생각할 때 영적인 것으로 육적인 것을 이기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 음란함이나 두려움이 염려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빠져서는 안 된다.
TV의 채널을 돌리듯이 십자가와 성령에게 채널을 맞춰야 한다. 성령은 나를 쓰실 때 과거의 모습대로가 아니라 완전히 나를 재창조하신다. 우리는 화낼까? 참을까? 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예수님이 직접 일하신다.
장애물보다 내가 영적으로 높아지면 더 이상 그것은 장애물이 될 수 없다. 그 장애물이 제거되지 않더라도 나에겐 분노 대신에 평안이 찾아온다. 미움을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의 불쌍함을 보게 된다.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은 비판이나 화냄은 나의 영적 교만일 뿐이다. 6,25 직후에 한 아이가 성당을 짓는 공사장에서 못을 훔치다 신부에게 잡혔는데 그 신부는 야단치기는커녕 오죽하면 그런 일을 했겠냐 며 필요한 만큼 못을 더 가져 가라고 했다! . 그 소년은 그 신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는 그 일로 결국 신부가 되었다. )
[11] 육적 자아를 어떻게 죽이나?
육을 제거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고, 찬물에 들어가고, 산에 들어가 나무도 하고, 겁이 없이 밤에 산을 돌아 다녔을 정도로 육적 자아가 나를 도전했다. 육적 자아를 어떻게 죽이나? 네거티브(NEGATIVE)한 방법과 포지티브(POSITIVE)한 방법이 있다. 네거티브한 방법은 금식을 통해 육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국사람은 고행의 방법을 많이 쓰나 그 때 뿐이다. 주님이 가르쳐준 것은 포지티브한 방법이다. 로마서 8장에 영역으로서 육을 다스 리라 고 했다. 영역을 키우면 육이 와도 분별되고 분별되니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게 된다. 사도바울이 평생을 마음은 원이로되 육에 약하 도다. 마음속에서는 선을 행하나 육은 행치 않는다. 로마서 7장 18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성령으로 처치해 주시옵소서! 분노는 피해라! 그리고 기다려라! (GIM:주변 사람 때문에 화가 났으나 참았다. 토요일 날 기도원에서 그 분냄을 주제로 기도하자 이런 음성을 들었다. “너 내가 그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을 아느냐? 너의 분냄과 화냄을 절제하라고 내가 역사 했다. “ 그 다음 월요일 날 그 사람과 관계가 아무 일 없이 진행됐다.! 그 사람이 더 사랑스러워졌다.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면 해결해 주신다.)
[12] 정의도 무조건 참고 기도만 해야 하는지?
돌을 들 때가 있고 놓을 때가 있다. 지식이 지혜보다 아래이다. 지식만 있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혜로운 자는 적은 능력으로 큰 일을 한다. 적시적소에 일한다. 예수님은 때가 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았다. 다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드려라 라고 말했을 뿐이다. 성령은 지식의 말씀 은사와 지혜의 말씀 은사로 나타난다. 둘 다 구해야 한다. 알지 못하고 지혜로울 수 없다. 알지만 포크레인으로 아무 데나 파면 안 된다.
이 시대에 우리가 예수이다.
우리는 예수 적 존재이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성령의 지배를 받았고 하나님이 쓰신 분이다. 분노할까? 기도할까? 를 결정하기 전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를 생각해 봐라! 나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의 불쌍함을 느낄 때까지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남의 잘못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영적 지식은 되나 지혜롭지 못할 때가 있다. 잘못한 다고 말하면 대부분 자기 방어를 한다.
독립문에 있는 해태 상 때문에 영적으로 자존심이 상해 올라갔다. 그것엔 아무 의미가 ? 愎募?말을 들었으나 기도할 때마다 본문이 나온다. 결정적인 것은 내린다는 선포를 들은 것이다. 결국 토요일 날(11월 20일) 내려 왔다. 싣고 가버렸다. 지혜가 필요했다. 저분이 실수를 했지만 본의는 사탄이 아니다. 결국 사탄에게 이용당한 듯 하다. 내가 회개했다. 내가 기도 안한 게 문제이다. 강하면서 완곡하게 말씀(안 내리면 몸에 이상이 옵니다.=협박)을 하니 알아들으셨다. 결국 내리셨다. 만약 부딪혔다면 내가 이겨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중학생인 아들이 금식을 했다. 새벽 3시 반에 운동을 한다고 나가더니 교실마다 방을 붙였다. 해태와 기린상의 뜻과 유래 선지자의 글을 실어서 방을 붙였다. 아비인 내가 부끄러웠다.
[13] 하나님이 내 기도와 다른 방향으로 역사 하실 때 ?p154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구하는 것을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 구하는 것 이상으로 예비하신다. 우리가 기도했던 시간보다 연장 될 수 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있는 곳에서 이틀을 더 계셨다. 사흘 되면 부패가 완전히 이루어진다. 냄새가 나나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히 죽었다고 판결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시점에서 하나님은 시작하신다.
내가 노력하다 한계에서 멈추었을 때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홀로 영광 받으시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때에 역사 하는지를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적절한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신다. 기도가 됐다 하면 받은 줄로 믿으십시오. 집 달라 하면 그 모양을 구체적으로 익도록 기도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꼭 집어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 안 되는 사람이 문제이지 기도되는 사람은 문제가 아니며 시간 문제입니다. 기도에는 하는 기도와 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는 기도는 5분하면 5시간 한 것 같고 되는 기도는 5시간 걸렸는데 5분 같다. 되는 기도는 받은 것과 같습니다.
기도가 안 되는 사람 뒤에 가서 목회자가 옆에서 도와! 줍니다. 기도 안 되는 사람을 위해 손을 얹어주며 중보기도 해야 됩니다. 기도 중에서 환경을 보아야 합니다.
[14] 환경이 혼동될 때? (p165)
응답하시는 하나님 내가 기도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전제로 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환경을 보면, 파도를 보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문제에 집착하면 문제에 빠집니다. 문제가 커지고 자기는 작아져 문제에 빠집니다. 다 털고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십시오.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주님이 하십시오. 며칠 고민했는데 내 마음대로 하면 실수할 것 같아서 주님께 맡깁니다.
술, 여자문제가 있는 남편을 둔 여자가 하소연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받아 전했습니다. ‘가만 안 놔두겠다’ 라는 말씀인데 그 여자도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 문제가 해결되면 자기 문제도 다 해결될 줄 믿으나 남편의 문제 해결 전에 자신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자기의 못된 습관 버릇을 고치는 것보다 자기 건강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자기 상태는 안 고치고 문제만 고치려고 합니다. 상처받아 죽을 라고 약도 갖고 있다고 하니 잘 되었다. 10년 해도 안되니 약봉지 놓고 죽을 용기를 갖고 기도해 봐라!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죽는 게 낫다. 하나님은 꼭 계신 데, 하나님께 걸어봐라! 남편 문제 보다 자매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자매의 심령의 문제가 치! 유 되야 합니다. 기도가 되면 소망이 있습니다. 남편이 불쌍해질 때까지 기도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쉬운 게 아닙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 기도도 못합니다.
첫날은 5분도 못 있고 가더라고요...둘 째날 손 얹어 주고 기도하니 오래 기도 하더라고요. 기도가 하나님 앞에 우는 거야. 울면 되는 것입니다. 환경에 빠져 있으면 나와 하나님 보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 문제조차도 객관화 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주면 하나님이 그 원인을 보여주며 실마리가 풀립니다. 영적으로 해석하고 응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15] 영적인 표징들? (p171)
구약시대 노아가 물이 다 빠진 후 돌단을 쌓고, 여호수아가 요단을 가르고 돌을 쌓았듯이 우리들은 그런 표징이 있는지? 영적 명세서? (p175)김춘근 교수의 영적 표징은 콧수염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신 것에 대한 기념비 즉, 외적 증거, 확증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기념비를 마음속에 쌓으면 그것이 쌓여 신앙이 커갑니다. 독립문 사건도 영적 싸움이었고 하나님이 역사 하셔서 작은 사건을 통해 학원에 어떤 바람이 일어날지 좋은 사인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할지 내다볼 수있습니다. 기념비적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교회 빼놓고 다 홍 장로님이 다 직접 지었습니다. 목사가 중심이 되어 교회를 지으니 다른 사람이 놀랐습니다. 영적 표징이 있는데 기념비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6] 믿음의 갈등? (p189, p178)
에베소서 4장 15절-16절 교회는 마디가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간의 관계입니다. 몸에도 어깨가 있고 혈관도 심장으로부터 마디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어떻게 영적 지도자와 연결되어 있느냐가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의 관건이 됩니다. 줄 서기를 잘해야 합니다. p
[17] 믿음의 갈등을 푸는 네 가지 원리?
1)하나님과의 만남은 믿음을 요구한다. 2)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크기이다. 3) 하나님의 계시<초청>
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4) 진정한 믿음은 행동을 요구한다. 떠오르는 기도 제목들을 써놓으시고 교회 문제에 있어서 갈등을 갖고 있는 사람은 기도 제목으로만 갖고 다른 사람과는 얘기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어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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