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7

문성식 2013. 12. 18. 11:28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7. 

 하나님께로 조정하라 - 차훈목사

 


“수고하고 무거운 집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1장28-2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니 하시니라.” (마태복음28;19~20)

[1] 가정교회( Cell Church)의 리더 란 ?
Cell Church(가정교회)란? 성도들은 목회를 해야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가라- 모든 족속을 제자 만들고- 성부 성자 성령이름으로 세례주고 - 가르치고- 가르친대로 살도록하게 하라>입니다. <너는 가서 제자 삼아라!> 이것은 모든 교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사역을 하도록 여건을 구비시켜 주는게 필요하다. 동질그룹으로 그룹핑한후 집에서 모여 가정교회를 운영해야합니다. 구리스킬라와 아쿨라는 바울과 같이 따라 다니며 텐트메이커를 하며 사역의 동역자로 일했습니다, 나중에 일은 그만두고 가정을 오픈해 교회를 열었습니다. 가정교회를 섬기는 법은 이론으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리더가 치부를 오픈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오픈해서 나누어야 합니다. 리더가 되게 공부도 다양하게 해야합니다. 기초교리과정도 5과정으로 나누어 언제나 할수 있게 공부되어야 합니다, 신구약 개관도 공부해야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성이 더 중요합니다, 기도가 되지 않으면 영적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실력과 영적 실력이 같이 가야 합니다, 영성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입니다, 몸으로서 실천으로 !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교제가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려고 하는 일들을 하기위해 이교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도 좋습니다. 2001년 부터 리더는 자기그룹을 이끌고 목사는 리더들만 미팅합니다, 심방도 리더가 합니다. 사랑의 공동체훈련에도 참여하길 바랍니다. 일산의 유영근목사의 교회가 주축이 되 <사랑의 동산>에서 3박4일간 훈련을 합니다. 섬김이가 극진히 섬겨 사랑의 공동체를 느끼게 합니다. 내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원숙하게 됩니다. 학교선교를 위해서 이책을 배운후 가르쳐야합니다. 성경공부그룹을 양산하는게 아닙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교회가 생명입니다. 교회성이 있어야 에수님의 피가 통해야 생명이 있습니다. 그룹멤버들이 서로 솔직히 자기 문제를 내놓고 고민할때 은혜가 됩니다. 남녀가 따로 구성되야 내놓을 수 있습니다. 대학을 교회로 보고 우리자신을 셀(cell)로 보고 시작해 퍼저나가면 목자로서 확신시켜 나가야 영적인 파워가 나타납니다. 행적력이나 기관이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낳으려면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내말이 곧 생명? 甄? 생명의 말씀이 이뤄지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납니다. 연약한 것 두개가 합쳐져 건강을 회복합니다. Cell Church의 매력은 그것입니다. 셀처치는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건강한 교회로서의 회복이 요구됩니다. 뉴텍스트먼처치(신약교회)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명력이 흐르는 교회,셀처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cell Church의 리더는 교사가 아니라 영적 아비의 개념입니다, 영적으로 증손자까지 낳아야 합니다.

[2] 공부하면서 성경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조정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결단과 순종은 왜 힘들까요? 결단은 순종과 의미가 같습니다. 믿음과 맹목적으로 믿는 이단과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거기에 맞추는 영성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2>하나님 뜻을 어떻게 아나요? 같은 선교마인드를 가지고도 A교회와 B교회중 어느곳에서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일까?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어느분은 <기도하다 제일 처음 느낌이 오는데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성적 판단, 지성적 자유의지를 주었다.> 물건을 살때 어떤 것을 살까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로버트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성적 판단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성적 분별과 영적분별이 동시에 되어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 닥친 사건을 하나님이 도전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영성훈련은 감훈련입니다. 쓰다보면 통로가 명료해 집니다. 순간적으로 감이 옵니다. 하나님의 도전이 오면 그 수준으로 키워 줄실것 인가? 혹은 내가 그만하니 시키는 것일까요? 이것이 분별될때 몸을 던져야 합니다. 분별이 안올때는 할때가 아닙니다. 할만하시고 영적으로 프로모트(Promote)하는 것을 느꼈으므로 결정해야합니다.

<3> (Kim; 교회일을 결정할때 교회가 이방향으로 나가라고 영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분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이 그방향으로 나가라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기도해봐야 합니다. 기도하고 기다려야합니다.) 상식에 어긋나도 강력하게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불러 갔으나 더욱 사역에 어려움이 많자 하나님에게 원망하며 기도합니다. 홍해가 막혔을때 사람과 논쟁하며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무릎굻고 기도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사건후에 모세의 믿음은 성장했습니다.

<4> (Kim;신학을 공부하면 무엇이 도움이 되나?) 박사보다 사역이 우선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영적인 성장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바꾸면 안됩니다, 그게 목적이면 신학교에 갈 목적이 적어집니다, 그러나 신학공부을 선택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신학교 1년은 부흥사 2년은 목사 나올때는 평신도가 되어 나온다고 합니다, 신학교는 학문하는 곳이지 영적도장 (수도원)이 아닙니다, 은사와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해야 합니다, 교수직이 더 필요한 사람이 있고 사역자가 되는 경우가 찾아옵니다, 목사가 안되려면 신학대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교회를 통해 훈련을 받는 게 필요합니다, 신학교는 훈련하는 곳이 아니라 학문성이 너무 강합니다, 학생들에게 전도하는데 이곳처럼 자유로운 학교는 없습니다,(하나님의 음성이 떨어지면 국내대학이든 외국대학이든 어디든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의 어떤 직책을 그만둘때 저는 걱정했지만 그목사님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너 없어도 돼! 너가면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을 믿어! 이말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영역까지 붙들고 ? ?湛?지려고 합니다. (Cho;영국으로 박사공부를 하러 가려고 했을때 학교로 부터 그 계획을 거부 당했을때 절망했지만, 오히려 직장을 지키면서 방학때만 가서 공부 한 것도 더 좋은 결과였습니다.좋은 지도교수를 만났고 E-mail을 통해서 작품을 주고 받으며 공부하고 있고, 1차 과정은 잘통과 했습니다.)

[3]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11장28-29절)<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멍애란 무엇입니까? 유대인의 농사법은 밭을 갈기위해서 소두마리를 십자가 같은 횡목으로 끌고 갑니다. 어미소가 새끼를 낳아 중소가 되어 달구지를 끄는 것을 배울때 어미소 옆에서 배우게 됩니다, 어미를 따라가며 배우게 됩니다, 어미소가 키가 크고 새끼소는 작고, 그러므로 하중이 어미소에게 갑니다. 내멍애를 메고 내게 배우라. 키큰사람과 작은 사람이 봉체조를 할때 키큰 사람만 죽습니다. <이사야 53장5절><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일라 그가 징게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책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찔렸고 십자가를 졌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큰 십자가를 지고 가는게 아니라 매달려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 발만 마추어 따라가! 면 힘이들지 않습니다, 내가 해보려고 하면 인생의 무게가 나에게 옵니다. 내욕심이 아닌데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람은 왜 그럴까요? 주님의 뜻과 주님과 보조를 마추지 않았으므로 힘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질고를 지는데 내가 떠맡으려고 하니 힘만 드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는 일을 따라가면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나는 흉내만 내면 됩니다, 나 자신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도 않고 예수님이 드러나지도 않을 일을 Over를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곧 Burn out됩니다. 하나님께 열납되는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본질적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합니다.)

[4] 하나님께 덕이 되는 신앙은?
하나님은 인간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일을 거부합니다. 이 세상안에 내 가정도 있습니다. 타협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닙니다.. 이교회에 제가 처음 왔을때 기도하면서 울분이 생겼습니다. 달래주고 닦아주고 그것만이 잘하는 것이냐? 교회가 이모야인데! 기본적인 교회성을 안가진 교회이다. 좋은 것만이 좋은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인 요한에게 <죽은자는 죽은자에게 맡기고 나를 따르라> 요한은 12제자중에 유일하게 순교를 당하지 않은 자이며,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요한에게 <네 어머니이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섬기는 효심을 보여 주었지만 요한이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려고 할때 죽은자는 죽은자에게 맡기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는 상대적인 길을 제시했습니다. 예수님이 볼때 나머지 사람도 영적으로 죽은자였습니다. <너는 살아있고 그들을 구원할 사람인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볼때 옳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적 도움까지도 끊어야 합니다. 성화중? ?어깨에 양을 메고 가시는 예수님 그림이 있습니다. 다리몽둥이가 부러진 양입니다. 불러도 안오는 양은 독립심이 강한 양이며 고집이 강한 양입니다. 크기전에 다리를 부러뜨리고 보목을 대고 업고 다니시는 것입니다. 다리가 낮기까지 그양은 목자의 발밑에서만 왔다 갔다 합니다. 진짜 징계는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