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 - 차훈목사
(히브리서10장24-25절)
서로 돌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러하자.
[1] 코이노니아의 본질4가지?
1)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다 걸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한다 2)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완전히 순복해야만 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을 실질적이고 개인적으로 경험해야만 한다 4) 우리는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해야한다.
코이노니아(사랑의 관계)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구원의 본질입니다.(요한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가 단절된 상태가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절된 것을 회복 시키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회복시키는 코이노니아는 구원의 핵심입니다.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활발한 교제입니다. 하나님은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 성령님을 내안에 두십니다.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는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고 계시지만, 그분의 임재를 충만하게 경험하려면, 내가 하나님께 반응을 보여야합니다. (요한복음 15장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이말씀은 행복한 크리스천 삶의 핵심이 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활발한 교류가 있는 질적 횡적교류를 말합니다. (마태복음22장37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 . 하나님의 주도하심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나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행해야만 한다. 나는 하나님께로 향한 중대한 조정을 해야만한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해야한다. 내가 하나님의 주도하심에 응할때, 나는 하나님을 경험으로 친밀하게 알게 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나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준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입니다.
[2] 이루어 가는 구원?
구원에는 3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1) 이루어진 구원은 에수님을 믿는자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단계이고, 2) 그다음단계는 이루어 가는 구원이 있고 3) 완성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루어가는 구원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교제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횡적으로는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과 코이노니아를 확대해 가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의 몸안에서, 그분의 주권하에 완전히 항복하기 원하는 개인들이 모인 교회에서만 코이노니아는 가능합니다. 우리는 존재를 다걸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이것이 크고 첫째 계명입니다(마22;37)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나는 나의 형제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요한일서4;21,5;3) 나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면(나의 존재를 다 걸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의 사명은 사랑회복과 선교입니다. 선교도 코이노니아의 확대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코이노니아는 왜 소그룹에서 가능한가?
(P362) 제구실을 하고 있는 신약성서적 교회를 떠나서 온전한 신앙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야한는 것은 옛날로 단순히 돌아가는게 아니라 초대교회의 교회 본질을 유지할때 코이노니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특이하게 다가오는 것이 소그룹입니다.. 사람들은 10명만 넘으면 피가 통하는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군중속에 숨는 사람이 있습니다.. 10명 이하이면 숨을 수 없습니다. 소그룹이 커지면 분활해서 구조를 바꾸어 가야합니다... 우리교회에서 구조를 소그룹으로 변경해 개혁하는 것을 나이 많은 사람은 싫어하지만 잘따라 줍니다. 소그룹을 목장으로 명명했습니다. 소그룹은 남녀 혼성반일때 내놓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남녀 동질 그룹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세렌티시피, 주제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자기 내적인 문제가 다 들어납니다. 예수이름으로 모인 소그룹 공동체는 반드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누가 신유은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합심기도하면 내적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야고보서 5장16절)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 되灸?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미국교회에서는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 대중들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라는 곳도 있습니다. 굉장히 내놓기 어려운 내용(성적인 것, 정신 적인 것)을 대그룹에서 내놓으면 서로 부담을 주고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서로 비밀이 보장되고 사랑의 신뢰가 구축된 소그룹공동체에서는 치유가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가정교회로 소그룹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신약중 제일 먼저 쓰여 진것으로 공동체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코이노니아로 발전되는 소그룹이 되어야 합니다. 남녀혼성반이 아닌 비슷한 연령과 고민을 안고 있는 동질 그룹을 형성해 소그룹(Cell교회)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그룹 리더가 고치는게 아니라 같이 그 문제를 가지고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한 고민을 다 갖고 있으므로 그문제에 대해서 금방 감이 오므로) 아파하면서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혼적 수준입니다. 코이오니아는 교제란 말을 안쓰는 것은 영적인 영역이므로 이말을 씁니다. 부흥회가 끝나면 서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서로 문제를 갖고 기도했기때문입니다.(? 꼭?자신을 위해 내문제를 갖고 눈물로 기도해주는 것을 느낄때 감동을 받??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소그룹은 동질그룹으로 문제를 내놓고 같이 아파하고 신뢰가 형성된다는 자체가 동질감이 생깁니다. 서로 기도해주는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해서 실질적인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오늘날 교회가 상실한것?
오늘날 교회는 이것을 상실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하고도 실패하는 원인은 삶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중들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신앙공동체 속에서 성도가 서로 기도하면서 서로 교제가 이루어질때가 코이노니아입니다. 생체적으로 말하면 성도는 몸(CELL)의 세포입니다. 세포는 상하면 내부적으로 같은 cell끼리 연합해서 같이 먹으면서 건강하면 다시 분열합니다. 하나와 하나가 더해지면 같이 살아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분열됩니다. 공동체의 치유는 마디를 통해 연합하고 상합하는 관게를 통해서 치유가 이루어 집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1;1로 해도 변화되나 완전한 변화는 Cell속에서 말씀을 나눌때 이루어집니다. 시너지효과가 있습니다. 서로 건강하게 키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소그룹 공부가 많아져야합니다.. 소그룹을 결성해서 인도할때 다시 읽고 묵상하면 효과가 증가하고 3번정도하면 블랙가비의 영성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블랙가비목사는 한국사람보다 더뜨거운 목사이며 영적인 것을 날마다 체험하는 분입니다.. 성경공부도 2-3번 반복해서 내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말씀! 이 머리- 가슴-습관으로 갈때 생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틀이 잡히고 한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질서 했지만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5시새벽기도-6시 QT하는 식으로 세팅된 시간을 갖는다면 영적 발전이 생깁니다. 리더가 되 책임감이 있으면 영성생활이 세팅되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느 방법을 뮬러는 습관적으로 쓴것을 내것으로 가져와야합니다, 블랙가비가 하나님을 만나는 간증을 내것으로 가져와야합니다.. 시간을 많이갖고 하루종일 묵상해야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말씀대로 보고 듣는 눈과 귀가 필요합니다. (아직 내가 영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은 너무 작습니다.) 두란노서원에서 나온 <부부의 삶>이란 교제를 가지고 소그룹에서 같이 읽기만 하면 치유가 됩니다. 그힘이 1년은 갑니다. 1월16일-19일까지 (낮4;30에는 상담세미나가 있고) 대학로 동숭교회에서 가정부흥회가 있습니다, 1월27-29 안성 사랑의 집에서 가정사역연구소 주체로 가정부흥회가 있습니다, 이것은 짧은 시간에 부부의 영적 생활에 큰 효과를 보는 특식과 같습니다.
[5] 성경은 “어떻게”에 대한 대답인가?
창세기 10장에 보면 방주에서 나온 아들이라고 했는데 모든 인류는 노아의 후손이냐? 혈육으로 맺어진 것이냐? 아담과 하와에서 노아로 이어지고, 노아에서 햄, 셈, 야곱의 족속이 나와 여러인종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햄은 흑인 아프리카인의 조상이 되며, 샘은 아랍, 황인종의 조상이 되며, 야곱은 유럽인의 조상이 됩니다.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도 셋으로 나누어 집니다. 셈족은 히브리말과 같은 발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조과학회는 이러한 과학적 질문에 모두 대답합니다. 또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족보가 표로 나와 있습니다. 여호수와가 전쟁할때 해가 하루종일 멈추었다고 했는데 천문학자들이 그런 일이 역사적으로 있었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왜에 대한 대답입니다. 성경에는 역사적 장르와 문학적 장르가 있습니다. 시편에는 과장이 많이 있습니다. 300척이란 말이 나오면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면 안됩니다. 성경의 문학적 장르와 역사적 내용을 모르니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학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TV에서 얘기하는 김용욱씨는 한신대 신? 隙?공부한 사람인데 지적인 걸식증에 걸린 사람일 뿐입니다. 육은 정신세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정신세계는 영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차원이 다르므로 혼으로 영을 알 수 없습니다.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안사람은 비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천지차이입니다.
[6] 풍부한 말씀을 받으려면 ?
풍부한 말씀을 받으려면 신구약 개관을 알아야 합니다. 4-5주간 신구약 개관을 공부하고 Cross way, 베델 성경공부에 들어가면 좋습니다. <신구약 성경 피노라마>책을 통해 전체 성경을 조망하는 공부를 하는게 필요 합니다. 언어적, 역사적, 지리학적 내용을 알면 풍부하게 성경이 이해가 됩니다. 배경을 알고 있는게 필요합니다. 지지학(기후, 풍토, 관습, 성경지리 언어), 다양한 문학쟝르(시 묵시. 소설(픽션) 역사기술서)를 통한 다양한 역사적인 배경을 알면 말씀을 풍부하게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신이 여러명있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은 절대적인 신인 하나님에 대해서 복수를 썼습니다. 역대기는 왕조실록으로 삼국사기같은 정사이며, 열왕기상은 삼국유사같은 야사입니다. 정사도 왕중심으로 쓰여져 왜곡이 있습니다, 욥기는 소설입니다. 진짜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욥기는 고대문서로서 성경에서 제일 오래된 책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인생을 이길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성경을 평면적으로 보는 것은 평면 영화와 입체영화를 보는 것같이 차원?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과 먹고 마셨다> 그당시 관습으로 돌맞아 죽는 일은 담대한 일입니다.. 오른빰을 때리면 왼빰도 대라는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교수한데 들은 이야기인데 히브리인들은 오른손 등으로 오른쪽 빰을 때리므로 왼빰을 대면 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때린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라는 뜻입니다. 적극적인 비폭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리를 가라하면 10리를 가라는 것도 무언의 저항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수님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를 보면 예수님 얼굴을 놋으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불의에 대해서 당당하게 맛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드럽고 자상할때는 한없이 자상했습니다.
[7] 마음과 영의 차이?
(잠언4;23-24절)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궤휼(험담, 비웃는 것) 을 네입에서 버리며 사곡(비딱한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생명(生命)의 근원이 여기서 나옵니다.. 명(命)은 영(靈)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생명은 우리가 가진 생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은 나면서 부터 한정적이고 죽어가는 생명입니다. 영생의 개념인 천상의 생명을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뿌리가 있는 생명으로 천상의 기쁨과 복락을 느끼는 것이 생명이 있는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것의 그림자입니다. 성경의 생명은 영생과 같은 말입니다.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옵니다. 마음은 영의 자리이며 지정의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은 머리에 있습니다. 그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위인데 마음이 인격의 중심이며 영의 자리 혼의 자리입니다, 성경은 영(靈 프쉬게)과 혼(魂소마) 혹은 영혼(靈 魂)이란 단어를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마음(心)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흙인 인간의 몸에 루아흐(영)이 들어가게해 생령이 된 것처럼, ! 마음에 성령 (聖 靈)이 들어오셔서 마음(心)이 영(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통하면 마음이 영입니다. 우리마음과 영을 나누는게 아니라 성령이 우리마음을 사로잡으면 마음이 영이됩니다. 마음이 사람과 통하면 마음은 혼입니다. 개인의 인격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게 영혼이며 심령입니다. 성령과의 교제 (성령의 역사)는 영과 하는 것이며 인간의 교제는 혼으로 하는 것입니다. 영성수련은 마음의 수련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8] 성령체험이란?
(요한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내말이 곧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며 성령입니다, (요한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입니다. 말씀과 예수님의 공통분모는 생명입니다. 성령을 받는다,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믿는다라는 것은 예수님,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이 곧 예수이며, 영이며, 생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말씀 체험입니다. 하나님 체험을 어디로 합니까?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게 되면 마음의 질(영적인 질)이 바뀝니다. 심령의 담대함과 기쁨, 평안이 옵니다. 마음의 변화입니다. 영을 마음으로 찾아야지 딴데서 찾으면 안됩니다. 영혼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영이요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으면 기쁨, 감사, 평안이 흘러 넘쳐납니다.
[9] 영감이 생기려면?
영성훈련은 마음수련이며 지정의 수련입니다. 불교에서 마음을 화두로 삼습니다. (잠언 23장7절) <대자 그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 사도바울의 속사람은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기분 마쁘다, 좋다,, 한국사람은 마음이 발달하여 마음이 풍부합니다. 마음이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훈련할때 내마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분나쁘다, 좋다와 같은 느낌은 혼적인 교류를 많이하면 생기는 것입니다. 타인의 혼과 교류를 많이 한 사람은 여기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 채우고 만족감, 기쁨, 행복감을 느낍니다. 또 사람은 주면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인간끼리 교류하면서 감이 풍부해 집니다. 에술가는 자연과 사람과 풍부한 교류를 합니다.. 그래서 예술적 감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교류하는 사람은 영감이 풍부해 집니다. 사람과 혼적 교류를 많이 하느냐? 하나님과 영적교류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 감이 달라 집니다.. 마음(心)은 감(感)입니다. 영성(靈 性)은 영감(靈 感)입니다.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마음! 은 잠자지 않습니다. 자도 마음은 깨어 있어 꿈을 꿉니다. 뇌는 쉬나 마음은 계속 움직입니다. 마음은 죽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속성이 같은 것입니다. 마음은 늙지 않지만 교류하면 풍부해집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10] 축복을 얻으려면?
마음관리가 중요합니다.. 마음관리가 혼적으로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영적 차원으로 갈 수 없습니다. 성령에 접촉되면 구름 아래 위가 차원이 다른 것처럼 차원이 달라집니다. 성령과의 교제는 말씀을 내의식안에 넣은 것으로 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되어 뿌리를 내리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은 축보과 저주를 선택사항으로 주었습니다. (신명기 28장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축복을 받는 조건은 내말을 듣고 지키면 축복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소유하면 축복이 들어옵니다, 말씀을 통과 시키면 저주가 일어납니다, 축복받을 사람이 축복을 받지 못하고 사는게 저주입니다. (창세기 1장27-28절)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처음으로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축복은 발란스 입니다. 저주는 발란스가 깨지는 것입니다. 정? ÷括犬?돈 많은 사람은 건강을 잃거나 지식이 깨지면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록팰러가 암에 걸려 죽게 되자 사람들은 그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의 재산이 누구에게 유산되는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화가난 그가 자신의 전재산을 가난한 사람과 사회를 위해 희사했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그는 암에서 완치 되었습니다) 세상의 복을 다누려도 심령의 천국이 없으면 복이 아닙니다. 조용기 목사는 삼박자 구원을 말합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협력해 선을 이루고 육신도 강건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마가복음4장은 천국비유를 하면서 제일 처음한 비유가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중요한 것은 씨를 받는 심령밭이 어떠하냐? 입니다. 말씀이 들어가 뿌리를 내리면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주야로 묵상했다고 했습니다. 그위치에서 범죄하지 않고 죄에 민감하고 즉시 즉시 영적으로 번민한이유는 말씀으로 주야로 채우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11] 영감이란?
의식은 마음의 생각입니다. 영은 마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져 깨닫음이 오고 기쁨과 평안이 체험되고 감(확실하지 않은 느낌)을 잡다가 축척되면 실감(확실해 지는 것)이 됩니다. 영감은 심령에 영이 채워져 교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지헤주시는지 하나님을 실감하는 것,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이 성경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공부를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단계에서 올려서 하나님과 1;1관계에서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성경공부가 중요하다. 밤에 취침 기도하다가 주시는 말씀을 써놓고 해야할정도로 저에게는 말씀이 넘칩니다. 생각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은 생각하고 느끼고 지정의와 같은 통합적 개념이 나오는 곳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마음을 인격화해서 속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은 비춥니다. <물이 얼굴을 비침같이 사람의 마음은 거울같아 마음과 마음을 비추느니라 > 학생도 선생의 마음을 압니다..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압니다. 선생님이 때려도 사랑과 애정이 전달되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체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선생의 마음에 자유함이 있어! 아버지의 마음으로 때리면 문제가 안됩니다.
[12] 기독교 교육이란 ?
영은 가르치는게 아니라 세어링(나누는 것)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교육에서 일반 교육이 나온 것인데 지금은 기독교교육이 일반교육에서 배워옵니다. 기독교 교육은 지식전달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너와 나사이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감을 나누는 것입니다, 히브리인 교육은 가정교육인데 추상명사를 가르키는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줍니다. 6월절(초막절)이 되면 매년 집집마다 특이한 행사를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집앞에 별이 보이게 텐트를 치고 가족이 들어가 잠을 잡니다. 별을보며 아버지에게 자식이 물어 봅니다. “우리는 왜 서서 밥을 먹습니까?” 하고 작년에 물어 본것을 매년 묻습니다. 아버지는 대답해줍니다. “ 그것은 우리 조상이 종살이 하던 에굽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 하나님이 준 10가지 재앙을 있었는데 마지막 재앙으로 물살구에 피를 바르고 벋어났단다” 폭탄의 연기가 가시기 전에 6.25기념일을 매년 맞이한 우리세대들은 가슴으로 전쟁을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게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것이며, 분단의 아픔은 역사의 뒤안길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도망가는 처지의 사람들인 ! 이스라엘인들은 양을 잡아서 피를 받아 뿌립니다. 제사장이 손에 묻혀 뿌리고 묻을 닫아 걸고 누룩섞인 빵(딱딱한 빵/ 순수한 빵)을 구어서 먹고 쓴나물을 소금도 넣지 않고 입에 넣어 씹고 있으면서 지금도 그 의식을 행합니다. 2000년동안 나라가 없으면서도 민족의 얼을 기억하는 것은 절기를 통해서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드라마를 해서 인상적으로 남게 해줍니다. 1주일간 초막에서 자면서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이 예굽에서 떠나 광야에서 40년간 살았으니 그것을 잃지말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서는 <세마 이스라엘>이라고 말합니다.. 이뜻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잃지 말찌니>입니다. 기독교 교육은 바뀌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명기 10장의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인 여호와니>말을 문에 써서 터치하고 머리 미간에 말씀이 담긴 조그마한 박스를 두르고 다녔습니다, 일하는 손목에 옷깃에 말씀을 넣고 다녔습니다. 이것이 말씀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식언치 아니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13] 하나님을 인식하려면?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인식하는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인식은 절대적인 인식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느끼는 것을 인간적 경험으로 알려는 것은 영적 신앙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상대적인 인간이 체험한다는 것은 있을 수 가 없는 일입니다. 마음의 바퀴 즉 중심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격과 라이프스타일과 패턴이 바뀌어야 합니다. 외부사람에게 영적 영향력을 미쳐야합니다, 종교개혁당시의 의미는 1) 잃어버린 말씀을 다시 찾았다. 2) 평민이 소유할 수 없는 언문을 활자 발명에 힘입어 평신도에게 말씀을 돌려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차원인 하나님 말씀을 혼적 차원으로 상대화 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루터가 말씀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루터는 성경학자이므로 로마서를 많이 읽었지만 어느날 서문을 읽고 뒤집어 졌습니다, 로마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성령에 감동해 읽으니 충격으로 와서 그 사람의 마음의 패러다임이 달라집니다. 한귀절의 성경이 그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 인생을 뒤집어 놨습니다. 본질을 붙드는게 중요합니다.. 아무 의식없이 저항없이 젖여 내려온 전통과 관습을! 말씀으로 다시 재평가 할때 우리 삶은 개혁할 수 있게 됩니다. 전통적 의식으로 성경을 보면 그것 밖에 안보입니다. 색안경을 벋고 성령을 통해서 보면 본질을 찾게 되고, 우리 삶이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졌나를 알게 되고 우리삶을 개혁할 수 있게 됩니다. 관념에 젖어 내려온 자기를 불편하게 느껴 견딜 수 없어 토해내는 것이 회개입니다. 평신도 사역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최선의 삶>이란 교재를 통해서 변화되는 삶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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