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열두제자연구. 12 - 구원 받지 못한 제자 : 가롯 유다

문성식 2013. 12. 18. 10:36

열두제자연구. 12 - 구원 받지 못한 제자 : 가롯 유다

 

들어가는 말


  1.유다에 얼킨 그림이야기

  1)화가 엘 그레코(El Greco)는 교회로부터 사도 개개인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유다는 비열한 인간이라고 생각했기에 따로 그리지 않았다. 배신 직전의 순간을 묘사하는 「겟세마네의 그리스도」라는 그림ㄴ에서 오른쪽 구석에 간신히 보일만큼 그려 넣었다.


  2)한 화가가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하여 시실리 성당의 벽화를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을 그리기 위한 모델로 아주 적격인 순진무구한 열 두살 짜리 아이를 발견하였다. 몇년 후 그 화가는 고난주간 까지 유다를 제외하고 모든 인물들을 완성했다. 어느 날 오후 화가가 앉아 있는 술집에 만취된 얼굴로 비틀거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화가는 아직 그리지 않은 유다의 모델로 이 알콜 중독자를 선태가히기로 작정했다. 화가는 그 사람을 성당으로 데리고 가서 비어 있는 벽을 가리키며 유다의 포즈를 취하여 달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 부랑자는 흐느껴 울면서 “당신은 나를 기억 하지 못합니까?” 하며 버럭 화를 냈다. 그는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그림을 가리키면서 “오래 전에 나는 저 아이의 모델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2.유다에 대한 표현들

  1)웝스터 新 學生辭典//“배신자, 특히 우정을 가장하여 배신하는 사람”

  2)유다색갈//붉은 머리카락.  유다나무//유다가 목 매여 자살한 나무

  3)유다염소//도살장으로 가는 가축을 앞에서 인도하는 동물

  4)유다의 키스//비열하게 남의 등을 찌르는 가면을 쓴 친절한 행위

  5)유다사제//예수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세속적인 이단자

  6)유다 구멍//감방 안에서는 볼 수 없고 밖에서만 들여다 볼 수있는 구멍


  3.유다의 저주 받은 이름

  저주하는 뜻에서 사도들의 이름 중에 맨 끝 자리에 있다. (마10:4/막 3:19)

    주님은 왜 이런 인물을 택하셨을까?  처음부터 배신의 위험을 알고 계셨을까?

    운명적으로 배신자로 태어난 사람인가, 배신행위를 하지 않을수 없었던가?


본    론


Ⅰ.타락되기 이전의 유다


 1.존경받는 사람

  귀족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찬양받는다”는 뜻을 지닌 자랑스런 이름을 가진 유다의 출발을 훌륭했다. 헤브론 남쪽 조그만 성읍 유다 이쉬 케리옷(Judas Ish Kerio -th) 출신으로 갈릴리 출신이 아니면서 유일하게 제자가 되었다. 유대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성실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2.잠재능력이 있었다.

  주님이 택하셨을 때에는 배신자가 아니었다. 암살할 의도를 가지고 기회만 노리는 흉악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 같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주님은 12제자를 택하시기 전날 밤, 철야기도를 하시고 신중히 사도들을 선택하셨다.(눈 6:12-12) 유다는 높은 이상을 가졌으며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적임자였다.


 3. 특권을 누렸다.

  다른 사도들 처럼 유다도 예수님을 다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다니면서 이야기도 하고 밤 하늘 아래서 함께 앉아 떡을 떼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유다는 산상수훈을 들었으며, 소경이 다시 보게 되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폭풍을 잠재우며 귀신을 쫓고 성전에서 강도들을 몰아내고 어린 아이를 안고 축복해 줄 때 유다는 예수님의 앞에 있었다. 유다는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전도하러 다니기도 했으며 귀신을 내쫓기도 하였다.(눅 10:17-20)


 4.유다는 제자들 가운데서 회계를 보는 직책을 가졌다.

   유다를 열 두 제자의 회계로 택한 것은 동료들이 그를 상당히 신임하였음을 말해 준다(요 12:6). 마태가 세리였기 때문에 돈을 다루는 데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다의 재정적인 전문지식도 다른 사도들보다 돋보였다.  또 그는 믿을 수 있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으로서 동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동료들 전원의 동의를 받아서 그는 돈을 가방에 챙기고 지불하는 책임을 맡았다.  제자로 출발할 때에 그는 신중하고 정직했으며 유능하고 실질적인 사람이었다.


Ⅱ.타락하는 유다


 1.유다의 타락의 실례


  유다가 산헤드린에 돌아온 것은 예수님의 육신을 가혹하게 처형하기 전에 예수님의 무죄함을 탄원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유다가 산헤드린에 돌아 온 것은 예수님의 무죄함보다는 자신의 조에 더욱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유다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한 가지 사건 속에 뒤섞일 수 있을까에 대한 표본이다.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막 14:21)고 말씀하셨다.  유다의 배신은 인간을 대속하기 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의 하나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또 우다가 행한 일은 너무도 극악하기 때문에 유다는 차라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낫다고 라르치셨다.  그러나 배신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다에게는 배신자의 길을 스스로 택한 책임이 있다.  어떤 사람이든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을 팔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로 이 어떤 사람이 되글 선택한 사람이 유다이다.  유다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했다.


 2.타락의 단계

  만일 유다가 자신이 저지른 무서운 죄에 대한 책임을 알았다면 그는 왜 그렇게 악하게 타락했을까?  유다를 타락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슬까?


  1)유다는 예수님에 대한 환상에서 점차 깨어났다.

  유다의 사악한 행동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몇 단계를 거쳤다.  예수를 따르겠다고 모든 것을 버렸을 때 유다는 자신이 배신자가 되리라고는 꿈엗 생각하지 않았다.  서서히 악의 길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뮤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여러 차례 경고하신 일이 있으셨다. 유다는 세속의 왕국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는 메시야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고 통치할 것을 기대했다.  유다는 새로운 왕국에서 영광과 권세를 누릴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예수님의 사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너무도 거리가 먼 것임을 깨달았다.  왼편 빰도 갖다대라는 교훈과 내일을 염려하지 말하는 충고, 이 땅에서 재물을 쌓아 두지 말라는 충고와 적을 사랑하라는 충고 등은 유다의 생리와는 상반되는 말씀이었다.  오천 명을 먹인 후 예수께서는 가까운 제자가 아니면 모두 자기로부터 떠나라도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요 6:68)라고 예수님의 말씀에 대답하였다.  이 때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ㅑ 너희 가룟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직접 경고를 하셨다.  요한은 이에 덧붙여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킴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 6:70-71)고 썼다.


  2)유다는 탐욕스러웠다.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께 바르는 것을 본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에 대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어찌하여 주지 않느냐?고 비난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오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고 유다에 대하여 고발했다.  유다의 말에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두둔하여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요12:7)고 말씀 하셨다.  인간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유다의 그 동기는 악이며 마리아의 동기는 숭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것이다.

  탐욕은 죄로 인도하기 때문에 십계명의 “탐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주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웃의 명예를 탐하면 거짓이나 중상을 하게 된다.  이웃의 재산을 탐하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  유다의 탐욕은 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돈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를 유다는 여러 번 들었다. 우리가 신랄하게 유다를 질책하기에 앞서 시간과 재능과 재주와 기회, 혹은 돈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원숭이의 욕심)


  예수님의 진실한 마음에 대한 유다의 환멸이 이 늘어나고 탐욕이 커지면서 배신의 무대는 설치되었다.  주님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절박한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방법을 유다는 찾았다.  배신 행위는 너무도 사악한 일이기 때문에 누가는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다.“(눅22:3)고 했다.  요한은 이 끔찍한 짓을 설명하기 위하여 배신 행위에 두 번 사단이 들어갔으며(요 13:2,27) 유다는 사단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고 말하였다.


 3.유다에 대한 주님의 경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첫번째 경고를 하셨다.  예수님의 눈이 유다의 발에서부터 굳어진 얼굴로 더듬어 올라갈 때 유다가 ㅈㅎ금은 회개하는 낌새를 느끼셨다.  아무도 유다가 회개하는 것을 알아차라지 못했을 때 분명히 유다는 긴장하고 불안한 가운데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더욱 강퍅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예수님의 두번째 경고는 유월절 식사 때였다.  사복음서는 제자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팔 것이라고 선언하심으로 제자들에게 폭탄이 떨어졌다고 기록한다. 충격을 받아 깜짝 놀라 조용해진 제자들은 제각기 ”주여, 내니이까?“라고 여쭈었다. 유다를 가리키면서 ”주여, 이 사람입니까?“하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의심 속에서 유다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의 무서운 반사적인 행동 때문에 유다가 스스로 자신의 흉악한 죄를 깨닫기를 예수께서는 원하셨다.  그런데 유다는 위선자답게 ”랍니여 내니이까?라고 물으니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대답하셨다(마 26:25). 예수님을 노리는 유다의 시한폭탄의 시계소리는 다른 제자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세번째 경고는 베드로가 요한에게 누가 배신자냐고 손짓을 할 때였다.  요한은 예수님의 옆 자리에 앉았으며 유다는 그 맞은 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3:23-26). 제자들은 귀한 사람에게 첫번째로 찍어주는 것으로 생각했을 뿐 찍어주는 의미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귀한 대우를 받으면서 유다의 얼어 붙었던 양심이 녹았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호소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두려움과 회개의 기미를 함께 나타내 보이면서 유다는 마귀의 충동을 받아 그 즉시로 자리를 떴다.  유다가 제사장들과의 약속이행을 결심한 것을 아시는 예수께서는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 13:27)고 말씀하셨다.  밖은 칠흑 같은 밤이었으므로 유다의 마음도 깊은 절망의 늪을 헤메고 있었을 것이다.


 4.유다의 입맞춤

  유다는 제자들이 은밀하게 기도하는 곳을 알고 있었다.  그 곳은 유다도 예수님과 함께 자주 갔던 곳이다(요 18:2). 유다는 제사장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은전 30냥을 받으려고 갔다.

 그 후, 겟세마네에서 고뇌의 기도를 하고 자고 있는 제자들을 깨우셨다.(마26:46)

제자들이 선생을 만나면 어깨에 손을 얹고 입을 맞추는 것이 그 당시의 관습이었다.  이것은 뚯이 통한다는 신호였다.  원래 입맞춤은 마음에서 우러난 친절한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입맞춤으로 배신하는 것은 가까운 친구의 찻잔에 독약을 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5.유다의 비극적 종말

  유다도 베드로처럼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회개했으나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  유다는 양심의 가책은 느꼈으나 회개의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예수께서 체포된 유다는 그 밤을 캄캄한 곳에서 숨어 지냈다.  이튼날 아침 예수께 선고가 내려진 사실을 알고 유다의 마음은 슬펐다.  은전 30냥이 그의 손에서 화근거리기 시작했다.

  유다가 발걸음을 재촉하여 회당으로 돌아와 안으로 들어가서 비탄에 잠겨 가지고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말하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게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고 조롱했다.

  예수님과 교제하고 가르침을 받아 감동했던 죄인 유다는 죄책감음 느끼지 않을 수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회개가 아니었다.

  유다는 큰 나무가 서 있는 근처의 벼랑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뭇가지 너머로 뱟줄을 던져 단단하게 잡아매고 밧줄의 한 쪽 끝은 목에 감아 매듭을 지은 후 낭떠러지로 껑충 뛰었다.  다락방에서 베드로가 말한 유다의 죽음은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왔다”(행 1:18)고 설명하고 있다.


  유다의 상징은 은전을 떨어뜨리는 지갑과 교수형 집행인이 갖는 올가미이다.  그의 상징은 완전히 비어 있어서 선을 행하는 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함을 가리키기도 한다. 유다의 비극에서 얻는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은 인간의 타락과 인간의 더러움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싹이트고 자라나기 때문에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숨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죄는 공개되기 전에 오랫동안 보이지 않고 가리워질수 있다.


Ⅲ.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 유다의 삶은 우리에게 얼마나 엄숙한 교훈을 남깁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각자가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십시다.


  1.“가면을 벗고 자신에게 솔직하라”

   가룟 유다는 가면을 벗지 못하고 이중인격적인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노릇을 하다가 그만 죄악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속으로는 도적질하고 훔치는 일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가장 정의의 투사인양 행동하는 그런 게임을 하지 마시고 우리는 가면을 벗으십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솔직하십시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님 앞에 보여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발견하십시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2.“자기의 의를 버리라”

  본문에서 우리는 가룟 유다가 퍽이나 잘난 척을 하던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얼마나 좋겠소”라고 고함을 치는 이 가룟 유다의 모습에서 얼마나 자기의 의를,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를 쓰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참 신앙을 소유하기 제일 어려운 사람, 구원받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자기의 의를 고집하는 사람, 굉자한 자기의 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구원받기 가장 어려운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솔직하십니다. 내 의를 버리십시다.  내가 주장할 의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읍시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요, 주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고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나의 의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할 때,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의 주님으로 믿을 때, 우리는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생의 체험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가 다시 태어날 때, 그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중생의 씻음, 이것이 바로 성령의 새롭게 하심입니다.


  결     론


  당신과 나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책임을 알고 있다.  우리를 변하게 해주십사고 그리스도께 간구할까? 혹은 직접 그리스도를 찾아 “주여, 주여”하며 부르짖을까?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길을 우리가 성공적으로 행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가룟 유다와 함께 기억되도록 할 것이냐 또는 우리만이 기억되도록 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유다의 일생이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을 때 열 한명의 제자들이 남았다. 맛디아가 유다의 자리를 이어 받았지만 어느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신을 열 두번째의 사도로 생각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와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