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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 아늑한 산사에 석불과 둘러앉기

문성식 2012. 11. 15. 12:53

여행하는 순간만큼은 일상과 다르게 세상이 느껴진다. 보도블럭 사이 잡초가 거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것 같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은 자연의 순리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산 계곡 사찰엔 내면 깊숙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조용함이 있다. 운주사에는 조용함과 더불어 기기묘묘한 무언가가 더 있는데… 가보면 안다. 가보자.

 

운주사 초입, 일주문

 

천년사찰보다 천불천탑으로 유명

 

광주방면에서 도시를 벗어나 지석천이라는 작은 강을 건너면 아늑한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기자기한 굴곡의 산세가 이어지고 넓은 들판에 작은 마을이 띄엄띄엄 박혔다. 가파름이 없는, 넓적 둥글한 들판을 지나 운주사에 도착했다.

 

운주사는 유명한 사찰이다. 하지만 불국사처럼 불교 역사를 대표하는 사찰로, 단박에 떠오르는 사찰은 아니다. 그 이유는, 운주사에 관한 유래ᆞ역사가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지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여행자 발목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에 찾고 다시 찾는 이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1940년대에는 석불 213기와 석탑 30기가 운주사 내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헌데, 현재 운주사 내에는 석불과 석탑을 합쳐도 100개가 채 되지 못한다. 본격적인 조사와 발굴이 실시되기 시작한 1980년대까지 보호나 관리를 받지 못해 생긴 결과다. 역사 속에서 천불천탑이라는 수식어로 통했던 운주사지만, 덕분에 오랜 세월 수탈과 유실의 목표물이 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현재는 9층 석탑, 석조불감, 원형다층석탑, 와불 등이 문화재로 지정, 관리 받고 있으며 운주사는 자체는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뼈아픈 세월을 겪어 온 운주사의 오늘은 어떨지 궁금하다.

 

타 사찰에서 흔히 접하던 '천년사찰' 현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운주사의 특징이다. 운주사 일주문 뒤편 현판에는 '천불천탑(千佛千塔)'이 적혔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관련 기록으로,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선 운주사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라고 운주사에 대해 짧게 묘사했다. 또, 인조 10년(1632)에 발간된 [능주읍지]에서도 천불산 좌우 협곡에 석불 석탑이 천 개씩 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천개로 딱 떨어지는 개수의 석불과 석탑이 있었는 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그 규모가 대단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전설 속 운주사는 왜 여기에 세워졌나

 

계곡을 따라 좀 더 들어가면 넓던 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그 끝, 운주사에 가까워진다. 산사의 특징은 입구와 출구가 같다는 점이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입구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출구가 된다. 여정이 짧을 것 같지만, 운주사는 구석구석 순환하는 코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둘러보는데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대웅전 앞 석탑

 

한 모퉁이를 지나면서, 기다리던 석탑과 불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깊지도 않은 골에 아늑하기만 한 이곳이 절터로 정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도선국사 전설이 유력하다.

 

때는 바야흐로 통일신라 말기 효소왕이 즉위에 오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시대의 말기가 그렇듯 당시는 매우 혼란스러운 정국이었다. 이때 백성을 구원하려 나타난 인물이 도선국사다. 국토지형을 배의 형상으로 이해한 도선국사는 호남에 산이 드물어 배가 기울어질 수 있음을 염려해 천불천탑으로 배의 균형을 잡아 태평성대를 이루려 했다. 이에 도선국사는 천태산에서 바위를 몰고 와 하룻밤 새 석불과 석탑을 만들었으며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우는 바람에 와불은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고 전해진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지만, 이야기의 규모와 배경이 상당히 극적이다. 사실 운주사를 거닐어보면,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또 다른 상상이 쉽게 펼쳐진다. 누군가가 정과 망치만을 들고 이곳을 찾아온다. 불심, 그 하나만의 동력으로 태평성대를 바라며 바위에 석가모니를 새기기 시작해 수많은 불상을 만들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 후 수많은 불상은 자연과 같이 세월 보내게 됐다는 그럴싸한 줄거리의 상상이 절로 떠오른다.

 

괜히 친근하고 편안한 석불 석탑

 

운주사 석탑은 각기 다른 모양, 분위기, 매력을 가졌다. 어느 하나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 굳이 하나 찾으라면, 비례와 대칭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균형이 잘 잡힌 다보탑과 비교해 운주사 석탑은 비례와 대칭이 어정쩡하며, 정교하지 못하다. 하지만 매력 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양식이기에 독특하고 기발하다.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이유 없이 좋고, 재미있는 것처럼, 운주사를 가득 메운 천불천탑도 비슷한 맥락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불규칙하게 곳곳에서 발견되는 석불은 보물찾기처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절터 마당에 바위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보면 불상이고, 바위에 기댄 널따란 판석이 가까이 가보면 불상이다.

 

소박하달까. 서민적이랄까. 강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는 찾을 수 없는 불상들이다. 얼굴의 비례는 불상 대부분이 비슷하다. 사람들은 '못난이 불상'이라고 부른단다. 세로로 길쭉한 얼굴형, 길게 묘사된 코, 좁은 이마 정말 못생겼다. 평면적으로 조각돼 입체감이 떨어지지만 이곳 석질의 영향으로 이목구비가 더욱 불분명하다. 우아한 자태에 손가락 모양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묘사된 석불만 석불이겠는가. 섬세하지 않아도, 우아하지 않아도 단순함 안에서 느껴지는 불심이 깊고 진하다.

 

운주사 주위 산은 나무가 적은 편이다. 흙이 적고, 암석이 대부분인 산이기 때문이다. 채석하기에 좋은 곳 같지만, 석질은 그렇지 않다. 일단 화강암처럼 단단한 재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암석으로 만든 석불은 풍화로 인한 마모가 쉽게 드러난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는 풍화작용이 더욱 빠르니, 석불의 표정이 온전히 남기 어렵다. 이렇게 수백 년의 세월을 어딘가에 기댄 체 이끼가 끼면 낀 데로, 눈이 쌓이면 쌓인 대로 운주사 한켠을 지켜온 것이다. 지금의 밋밋한 석불은 조각가와 자연이 함께 만든 것이라 불러도 좋고, 천불천탑 영광의 흔적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석불들을 하나하나씩 감상하며 운주사 내를 거닐고 있으면,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이웃과 인사하듯 석불을 대하게 된다. 마음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도 잘 들어줄 테니 한번 꺼내보라며 말을 건네기도 듯해서, 같은 그늘에 자리를 잡고 함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오르막 싫어도 산자락 타야하는 3가지 이유 '불사바위·와불·칠성바위'

 

운주사 대웅전 뒤편으로 작은 산이 있다. 천천히 올라도 10분도 채 안걸리는 곳에 불사바위가 있다. 운주사 전경을 살필 수 있는 명당되겠다. 경내 길게 뻗은 길과 석탑의 불규칙한 배열이 한눈에 들어온다. 좀 더 멀리 시선을 뻗으면 전라도 특유의 유하게 흐르는 산세도 보인다. 흙이 적고 암석이 대부분이라서 인지, 조금은 썰렁해 보이는 산이 운주사의 석불과 많이 닮았다.

 

나지막한 산이지만 주위를 두루 살피기엔 이만한 자리가 없다

 

내려가는 길은 서쪽 산등성이를 타보자. 운주사의 백미 '와불'과 '칠성바위'를 볼 수 있다. 산길 따라 오르면서도 석불과 석탑을 볼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기록의 천불천탑이 제자리에 있었던 당시의 운주사는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아마도 걸음마다 탑과 석불이 하나씩 드러나지 않았을까. 오르막길을 약 15분 정도 오르면 와불을 볼 수 있다. 전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미완의 석불로, 새벽닭이 울어 도선국사가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는 바로 그 와불이다. 한 사찰을 대표하는 불상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 풍경이 그 사찰의 특징으로 자리 잡기도 하는데, 운주사의 대표적인 석불인 이 와불은 하늘을 보고 있다.

 

약 20미터 길이, 폭 7m의 규모임에도 와불에서 위엄이나 단박에 남는 인상이 없다. 온화한 표정으로 편하게 누워있는 석가모니, 곤히 잠든 부부 같기도 하다. 이 석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변하고 태평성대 한다고 전해지니, 언젠가 일어나시라고 한마디 읊조려본다.

 

와불에서 가까운 곳에 칠성바위가 있다. 이것도 운주사의 불가사의를 증폭시키는 하나의 유물이다. 놓인 자리가 북두칠성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각 위치에 해당하는 별의 크기, 밝기까지 닮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든 수준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운주사에서 나오는 길, “깡~ 깡~” 불심 가득한 정 때리는 망치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마주쳤던 불상의 표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단순하면서 투박하고 소박한 운주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울적하거나 답답할 때, 가고 싶은 곳이 됐다. 다음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서 불상과 둘러앉아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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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IC(제2순환도로)→소태I.C(22번 국도)→너릿재터널→화순읍(29번 국도)→화림 교 앞 삼거리(우회전, 818번 지방도)→운주사

 

※ 위 정보는 2012년 6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글·사진 안정수 취재기자 / 한국관광공사 

발행일  2012.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