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는 중국과도 가깝다. 435km 떨어져 있다. 새벽이면 중국에서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는 옛말도 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중국 배가 무시로 드나들고, 가거도 주민들도 중국어 한두 마디쯤은 했다고 한다. 지금도 폭풍이 불면 중국 어선의 피항지 노릇을 하고 있다. 가거도는 작은 섬이다. 길이 7km, 폭 1.7km밖에 되지 않는다. 섬 가운데에 독실산(639m)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산을 중심으로 22km에 달하는 해안선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독실산은 신안군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자리한 산들 가운데 가장 높다. 그러니까 가거도는 하나의 섬이라기보다는 바다에 솟은 산이라고 보면 된다. 섬 전체를 통틀어 봐도 평지가 거의 없고 온통 가파른 산지뿐이다. 가거도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배를 정박하기 힘들 만큼 험한 지형이다.
그럼에도 이 섬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가거도 등대 옆 선사 유적지에서는 패총(조개무지)과 함께 돌도끼, 돌바늘, 토기 파편 등 신석기 유물이 발굴됐다. 신라시대에는 당나라를 오가던 무역선들이 중국 땅과 가까운 이 섬을 중간 기항지로 삼았다. 가거도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살게 된 것은 1800년 무렵, 나주 임씨가 건너오면서부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가도(可佳島)로, [여지도서]에는 가가도(佳嘉島)로, 해동지도와 제주삼현도에는 가가도(家假島)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라고 부른 것은 1896년부터라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소흑산도(小黑山島)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흑산도와 비교해 작은 섬이라 하여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저항시인 조태일은 그의 시 가거도에서 너무 멀고 험해서 / 오히려 바다 같지 않은 / 거기 / 있는지조차 /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 쓸 만한 인물들을 역정 내며 / 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때 높으신 분들도 / 이곳까지는 / 차마 생각 못했던, // 그러나 우리 한민족 무지렁이들은 /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 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 파도로 성 쌓아 / 대대로 지켜오며 /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 당할아버지까지 한데 어우러져 /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이라고 가거도를 노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