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화

고야(Francisco Goya)

문성식 2012. 8. 23. 13:23

고야(Francisco Goya)

 

 

작가명 : 고야(Francisco Goya)
활동년도 : 1746~1828
작가소개 : 1746년 3월 30일 스페인 동북부 사라고사주에서 출생. 부친, 호세 고야는 도금사, 모친은 15세기 기사의 후예
1754년(8세) 이때부터 56년까지 신부가 경영하는 국민학교에 다님 이 학교에서 평생의 벗, 마르틴 사파데르와 알게됨
1757년(11세) 모친의 가계가 귀족임을 재확인
1760년(14세) 고야 일가, 사라고사 시로 이사. 이때 베네치아파에게서 배운 사라고사의 화가, 호세 르산 아틀리아에 들어가 원화를 복제, 데상의 기본을 배우는 등 4년 동안 수업
1763년(17세) 왕립 미술 학교 장학생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연말께 마드리드에 도착
1764년(18세) 연초 장학생 시험 작품 심사에서 고야는 한표도 얻지 못함
1766년(20세) 재차, 장학생 시험에 응시했으나 또 한 표도 얻지 못함
1769년(23세) 프랑스 경유 이탈리아 여행
1770년(24세) 이탈리아의 파르마 왕립 미술 학교 콩쿨레 응모했으나 여기서도 낙방
1771년(25세) 이탈라아에서 고향 사라고사로 귀환. 10월, 사라고사의 교회에서 천정화 주문을 받음
1773년(27세) 7월, 마드리드에서 화가 프란시스코 파이유의 여동생, 포세화 파이유와 결혼
1774년(28세) 고야, 사라고사 시 화가 가운데서 고소득자가 됨
1775년(29세) 독일 화가 멩크스의 주선으로 마드리드 시에 있는 왕립 직물 공장에서 직물의 초벌 그림을 주문받음 이후 10여년 동안 직물의 초벌 그림을 계속. 12월 장남 출생했으나 요절
1778년(32세) 중병을 앓음. 이즈음 궁전 안에 비장되었던 스페인의 천재화가, 벨라스케즈의 작품이 발견되었는데, 고야는 이후 방대한 궁전 수장품을 감상한 것으로 추측되며, 벨라스케즈 작품 18점을 에칭으로 모사함
1779년(33세) 처음으로 카를로스 3세에게 4점의 그림을 보여, 왕의 손등에 입맞춤을 하는 영광을 얻음. 7월 궁중화가가 되고자 원서를 제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뒤에 장녀도 태어나자마자 요절함
1780년(34세) 5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제출하고 아카데미 회원으로 뽑히기를 원했는데, 전원일치의 추천을 받음
1781년(35세) 마드리드 그랑데 교회 제단화 1점을 맡음 부친 사망
1783년(37세) 당시의 재상 플로리다 블랑카 백작의 초상화를 그림. 귀족 사회와의 접촉을 처음으로 시작. 카를로스 3세의 동생 루이스 왕가의 초상화를 그림
1784년(38세) 보벨라노스의 중개로 기사 수도회를 위한 종교서를 그림 12월 요절하지 않은 유일한 아들인 3남 출생
1785년(39세) 6월, 왕립 페르나드 미술 아카데미 회화부장 대리로 임명됨. 오스나 공작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는데 오스나 공작 부인은 왕가 다음가는 고야의 최대 후원자가 됨
1786년(40세)라몽 파이유와 함께 궁중화가가 임명된. 2륜마차를 최초로 구입. 알바공작과도 접촉을 시작함
1787년(41세) 말 두필이 끄는 4륜마차를 구입. 이무렵 마드리드의 금융계 주요인물들과 접촉을 깊게 함
1788년(42세) 6월, 아카데미 회화 부장 선거에 입후보했으나 한 표도 얻지 못함. 카를로스 3세 사망
1789년(43세) 1월 카를로스 4세 즉위 4월 고야 궁중화가로 임명됨. 이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그 신사조의 파도가 점차로 스페인에도 침투됨.
1791년(45세) 궁중화가로서의 다망을 이유로 직물 초벌 그림을 오랜만에 사양함
1792년(46세) 갑자기 병에 걸려 이후 전혀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됨
1793년(47세) 판화집 -Los Carprichos- 착수 이와 연관성있는 작품 11점을 제작
1795년(49세) 프란세스코 파이유 사망. 고야, 파이유의 후임으로 왕립 페르나드 미술 아카데미 회화 부장이 됨. 알바 공작 부처와 가까와지고 그들의 초상화를 그림
1796년(50세) 6월, 알바 공작, 세빌랴에서 사망, 알바 공작 부인은 안달루시아로 은둔. 고야 종교화를 제작
1797년(51세) 알바 공작 부인 방문. 그의 초상화를 그림. 청각장애를 이유로 아카데미 회화 부장직 사임.
1798년(52세) 알바 공작 부인의 라이벌, 오스나 공작부인에게서 재차 많은 주문을 받아, 마녀를 테마로 한 작품 6점을 그림. 플로리다 교회 천정화를 제작
1799년(53세) -Los Carprichos-판화집 발간. 10월 카를로스 4세의 수석 궁중화가로 임명됨
1800년(54세) 아란포에스 궁에서 -카를로스 4세 가족-를 제작
1802년(56세) 알바 공작 부인 사망
1803년(57세) 로스 레이어스 가에 3층 벽돌집을 구입 -Los Carprichos-의 동판 30점을 왕에게 헌납. 댓가로 아들의 여행을 위한 장학금 지급을 요청
1804년(58세) 왕립 페르난드 미술 아카데미 원장에 입후보했으나 낙선
1805년(59세) 아들, 마드리드 상인의 딸과 결혼
1806년(60세) 손자 출생, 아들 분가
1807년(61세) 카를로스 4세, 나폴레옹과 조약 체결
1808년(62세) 3월, 카를로스 4세 퇴위, 아들인 페르난드 7세 즉위. 아카데미에서 페르난드 4세 초상화 제작을 고야에게 위촉. 4월 페르난드 7세 스페인을 떠남. 5월 마드리드 시민, 나폴레옹에 대항해서 봉기, 독립전쟁이 일어남. 7월 호세 1세, 스페인 왕이 되어 마드리드 입성. 10월 고야는 사라고사 방문. 12월 호세 1세에 대한 충성의 서약
1810년(64세) 마드리드 시청 의뢰로 호세 1세를 찬양하는 그림 제작.
1811년(65세) 호세 1세에의 충성 서약에 또 서명. 부부공동으로 유언장 작성. 이 해부터 다음해까지는 마드리드는 기아의 참상을 빚었고, 고야는 이 정경을 판화로 남김
1812년(66세) 3월, 스페인의 자유주의파, 새 헌법 발표. 6월 부인 사망. 7월 호세 1세 마드리드에서 도망, 8월, 영국의 웰링턴 경에 의해 마드리드 일시 개방. 고야 웰링턴 경의 초상화를 그림. 고야와 아들, 공동으로 재산목록 작성
1813년(67세) 페르난드 7세, 스페인에 귀환
1814년(68세) 페르난드 7세에 대해, 나폴레옹군에 대한 스페인 민중의 가장 영웅적인 투쟁 장면을 그릴 것을 희망-마드리드,
1802년 5월 2일--마드리드,1802년 5월 3일-을 제작 12월 옷을 입은 마하, 나체의 마하가 종교 제판소에 제소됨
1816년(70세) 페르난드 7세의 집권체제 확립. 오스나 공작과 접촉을 재개.
1817년(71세) 또다시 종교화를 그림 약 3년간
1819년(73세) 스페인에서는 최초로 리도그래픽 수법을 써서 직물을 짜는 노인을 완성
1821년(75세) 다음 해까지 이른바 귀머거리의 집 1층 식당과 2층 살롱의 벽면에 총 33평방미터에 달하는 벽화를 그렸는데, 옷칠을 해 번쩍번쩍하는 벽면에 직접 유채로 그려넣었기 때문에 검은 그림으로 통칭되고 있다.
1823년(77세) 페르나드 7세 복권, 전제 정치 부활됨. 손자에게 -귀머거리의 집-을 상속
1824년(78세) 페르난드 7세로부터 6개월간의 휴가를 얻어 프랑스의 보르도에 감, 6월 부터 9월 까지 파리 관광. 이후 내연의 관계인 솔리야와 함께 보르도에 체재
1825년(79세) 국왕에게 휴가 연장원을 제출 늦봄에 병에 걸려 병상에 누웠으나 곧 회복
1826년(80세) 일시 마드리드로 돌아와 궁중 화가직 사퇴서를 제출. 6월에 수리됨. 그동안 수석 궁중 화가인 로페스, 왕명에 의해 고야의 초상화를 그림. 7월, 보르도로 귀한
1828년(82세) 4월, 보르도에서 노환으로 사망



작품명 : 성가족 The Holy Family
제작년도 : 1774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제작 연도는 명확지 않다. 성 요셉과 마리아, 어린 예수와 요한의 4인을 그린 것이며 하나의 집단체로서 표현 한 것이다. 네 사람의 얼굴 표현이나 색감은 리얼하게 표현했으며, 제각기 다른 표현에서 그 인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요셉의 깊이 있는 표정, 마리아의 자애로우며 사랑에 넘치는 듯한 표정, 두 어린이의 청순한 표정과 부드러운 살결의 표현도 놀랍다. 요셉과 마리아가 입은 늘어진 옷과 마리아의 청색 옷의 대비적인 효과도 촉각적이며, 부드러운 질감 표현도 뛰어난 작품 이다. 고아는 이후 종교화를 순연(純然)한 상징화로서만 이 아닌 인간 드라마의 표현 형식으로 승화시켰다.



작품명 : 마하와 얼굴을 가린 사나이들
제작년도 : 177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고야는 1775년, 의형(義兄) 파이유의 주선으로 왕립 산타 바루바라 디피스리 공장에 취직이 되어 벽걸이의 밑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자기 개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기 시작한 제2기(1776~80) 시대의 유명한 작품인 <파라솔>과 이 작품은 같은 무렵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송림이 이어진 안달루시아 산책길을 집시 남녀의 커플이 산책하고 있다. 바위에 걸터앉은 불량배가 여인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 집시 여자가 손으로 가리키며 무어라 타이르고 있는 장면이라고 고야는 해설을 달고 있다. 마호.마하라는 서민의 생활상을 생생한 풍속화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고야의 풍속화의 출발 점이었다. 묘사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작품명 : 파라솔 The Parasol
제작년도 : 177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작품명 : 눈보라 Winter (The Snowstorm)
제작년도 : 1786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4계절의 4부작 중의 하나인 겨울 작품이다.



작품명 : 투우 The Bullfight
제작년도 : 0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작품설명 :



작품명 : 불 The Fire
제작년도 : 1793
작품재료 : oil on tin plate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collection of Jose Barez
작품설명 :



작품명 : 마녀의 집회 Witches Sabbath
제작년도 : 1798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Lazaro, Madrid
작품설명 :
왕가(王家)를 제외한 고야 최대의 후원자였던 오스나 공 부처 소유의 작품이며, 아라예다 저택의 부인 거실을 위하여 그린 마녀를 테마로 한 6점의 그림 중 한 작품이다.
병을 앓은 후의 고야의 내적인 심리 변화는 여실히 화면에 반영되어 갔다.
현실미 있는 인간상과 비현실적인 분 위기가 혼합 표현되어 가는 환상적 작품 세계는 만년의 <검은그림>과 연결성이 농후하다.
인가와 떨어져 있는 산 위, 스산한 달밤에 마녀들이 마녀의 상징인 수산양을 둘러싸고 일 주일 동안의 전과(戰果)를 보고하고 있 는 장면이다.
고야가 마녀 신앙에 인간적으로나, 화가로서도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녀를 테마로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작품명 : 누드의 마하Nude Maja
제작년도 : 1800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작품명 : 옷입은 마하 Clothed Maja
제작년도 : 1803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작품명 : 이사벨 코보스 데 포르셀
제작년도 : 1806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The National Gallery at London
작품설명 :
녹회색조(錄灰色調)의 단순화된 배경, 밤색머리에 엷고 긴 숄을 몸에 감아 늘어뜨린멋, 터질 듯한 관능미 넘치는 앞 가슴, 두툼한 입술, 강한 의지의 상징인 듯한 눈, 풍만한 육체 등 고야가 남긴 가장 정열적인 여인상이라 하겠다.
생동감 넘치는 개성적인 여인상은 하나의 민족적 특성 즉, 스페인 여인의 상징이라 하겠다. 고야의 초상화에서 항용 얼굴에 중점을 두며, 의상이나 장식물 배경 등은 간략하게 표현하는 예가많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몸매나 복장이나 모든 면에 정성을 기울였으며, 감각적인 효과나 회화적인 효과도 빈틈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작품명 : 발코니의 마하들 Majas on a Balcony
제작년도 : 0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작품설명 :



작품명 : 거인 El Coloso
제작년도 : 1812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1812년 고야 재산 목록에 기재되어 있는 작품. 폭풍 직전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 구름 위에 거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두려움에 떠는 듯 역마차 떼들은 공포에 싸여 사방으로 도망치는 듯하며, 전면에 노새 한필이 무심히 서 있다.
고야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모르나, 노새를 스페인어로 바보 또는 얼간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페르난도 7세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라고도 하고, 거인을 나폴레옹 또는 전쟁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하며,그 반대로 거인이 군중을 뒤로 방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거인을 스페인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보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고야의 상상력의 비약을 말해주는 작품이리라.



작품명 : 연애 편지 Young Majas (The Love Letter)
제작년도 : 1811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e des Beaux-Arts at Lille
작품설명 :



작품명 : 마드리드 1808년 5월 2일
제작년도 : 1814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작품명 :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제작년도 : 1814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작품명 : 자화상 Self-Portrait
제작년도 : 1815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Academy of San Fernando, Madrid
작품설명 :
고야의 약 20점의 자화상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고야가 69세 때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노쇠기에 이른 연령이지만, 이 그림에 나타 난 것을 보면 그의 위엄있는 표정과 불굴의 의지력과 왕성한 정열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 큼직한 얼굴, 깊이 꿰뚫는 듯한 예리한 눈, 굵은 목둘레 와 딱 벌어진 가슴 등에서 강인한 의지력 등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색조는 흑색. 백색, 그리고 황토색을 주조로 비교적 단조로운 작품이지만,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고 고야의 깊이 있는 정신적 내면 세계를 뿜어 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작품명 : 사투르노 Saturno
제작년도 : 1823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Museo del Prado, Madrid
작품설명 :
앞서 소개된 자화상을 그린 4년 후 고야는 빈사의 중병에 빠졌었다. 다행히 회복은 되었으나 그 후 '귀머거리 집'에서 유폐 생활을 보냈다. 이 집에서 생활하면서 14 점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이 시기의 그림은 '검은 그림'이라고 불린다. 고야는 대단히 음침하여 공포와 억압을 괴물로서 상징하는 표현주의적 작품을 2층 건물 벽면에 가득차게 그렸다. 이 그림도 그 집 식당 벽면에 그린 작품의 하나이다.
<사투르노>는 하늘의 지배권을 자식들에게 빼앗기게 될 두려움으로 5인의 어린 자식들을 차례차례 먹어서 죽여 버렸는데, 이 고대 신화의 신은 토요일에 마녀들의 집회를 연다는 신이기도 하다. 공포, 절망, 분노 등을 상징하는 듯한 처절한 화면 구성은 놀랍다. 고야의 정신적.내면적 파동이 이러한 표현주의적 작품을 표출한 것이다.